[테마스토리 서울] (15) 뚝섬 경마장

입력 : ㅣ 수정 : 2009-10-09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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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박 쫓던 함성·탄식 사라지고… 생태공원으로
한국전쟁 직후 어렵게 하루를 살던 서울시민들이 ‘대박’을 꿈꾸며 주말마다 경마장을 가득 메웠다. ‘뚜~뚜~뚜~’ 대지를 울리는 말발굽 소리와 ‘와~’ 대박을 알리는 함성, 그리고 ‘아~’ 휴지조각이 된 마권을 찢어 날리며 뱉었던 탄식이 어우러졌던 ‘뚝섬경마장’을 아십니까.

화창한 가을날씨를 보인 8일 성수동 서울숲에 자리한 경마동상에 한 인부가 물을 뿌리고 있다. 기마상은 옛 뚝섬경마장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졌다. 20년 전 경마장이 과천으로 옮겨가면서 현재는 부지 일부만 승마장으로 쓰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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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창한 가을날씨를 보인 8일 성수동 서울숲에 자리한 경마동상에 한 인부가 물을 뿌리고 있다. 기마상은 옛 뚝섬경마장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졌다. 20년 전 경마장이 과천으로 옮겨가면서 현재는 부지 일부만 승마장으로 쓰이고 있다.



●조선초엔 왕실 사냥터로 쓰여

성수동 서울숲. 조선시대 왕실사냥터로 쓰이던 이곳은 2005년 생태공원으로 탈바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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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수동 서울숲. 조선시대 왕실사냥터로 쓰이던 이곳은 2005년 생태공원으로 탈바꿈했다.

지금 경마장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하지만 서울숲공원의 달리는 말에 탄 기수 조각상 10여점이 그때의 추억을 대신하고 있다. 1922년에 조선경마구락부가 발족됐고 1945년 광복과 더불어 한국마사회로 이름을 바꿨다. 한국마사회는 신설동에 경마장을 개장했지만 전쟁을 겪으며 1951년 주한 미공군 비행장으로 징발되고 만다.

따라서 한국마사회는 1930년대 조선경마구락부가 경마장 이전 목적으로 매입했던 뚝섬에 경마장 공사를 시작했다. 그 날이 바로 휴전협정이 맺어진 다음날인 1953년 7월28일. 뚝섬은 옛날부터 말과 인연이 깊었다. 조선시대 초부터 말을 먹이는 목장이 있었고 왕실의 사냥터로 쓰이기도 했다.

마사회는 보유한 모든 자산을 팔아, 천신만고 끝에 이듬해인 1954년 5월8일 뚝섬경마장의 문을 열었다. 비록 채소밭 속의 보잘것 없는 경마장이었지만 전쟁으로 중단된 경마가 3년 11개월만에 명맥을 잇게 된 것이다.

하지만 어렵게 시작한 경마는 그야말로 초보 수준. 말(馬)도 지금처럼 미끈하게 생긴 경주마가 아니고 조랑말이었다. 충분한 마필 자원을 확보하지 못했던 마사회는 광주, 목포 등에서 몽골계 재래종마를 겨우 모아 명맥을 이었다. 경주로는 모래와 초지가 섞였고 경주로 가운데 채소밭도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터지는 풍경이다.

●한국전쟁 이후 급조… 경주로에 채소밭도

또 관람대는 미제 맥주깡통을 이어 붙인 허름한 모습이었다. 토털리제이터(배당률 계산기)가 없어 경주 20분전에 베팅을 마감하고 수십명의 직원들이 주판으로 배당률을 산출하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1968년에는 경마장 가운데 골프장이 들어선다. 고 박정희 대통령의 채소밭으로 쓰이던 경주로 가운데를 골프장으로 개발하라고 한마디하자 전혀 연관이 없는 골프와 경마가 한 솥밥을 먹게 된 셈이다.

●1989년 과천경마장 생기며 역사속으로

35년 간 서울시민의 애환을 간직하던 뚝섬경마장의 시대는 1989년 과천경마장 개장과 더불어 막을 내린다. 골프장도 1994년 문을 닫고 뚝섬 가족공원으로 변신한다. 이후 서울시가 2005년 대규모 생태공원인 뚝섬 서울숲으로 조성했다.

비록 조각상 몇 개가 그때의 추억을 대신하고 있지만 뚝섬경마장에 서려있는 서울시민들의 추억은 영원할 것이다.

글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사진 손형준기자 boltagoo@seoul.co.kr
2009-10-09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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