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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운동선수 학습권 보장 1년… 득과 실은

정부의 운동선수 학습권 보장 1년… 득과 실은

입력 2010-01-05 00:00
업데이트 2010-01-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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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들 경기력·성적 좋아져” “제2의 김연아 나올수 없어”

“박찬호나 박지성, 김연아는 앞으로 기대할 수 없다.”

정부가 운동선수의 학습권 보장을 지난해 축구에 이어 올해부터 농구, 야구 등으로 확대하겠다고 밝히자, 현장 지도자들은 대뜸 이렇게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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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지난해 초·중·고 축구 선수들의 학습권을 보장하기 위해 학기 중에 경기를 전면 금지하고, 수업이 끝난 뒤 연습을 하도록 제도를 바꾸었다.

올해부터는 대학농구에도 홈앤드어웨이 방식의 리그제를 도입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나아가 정부는 현재 초등학교 6학년이 대학을 가는 2016년부터 운동선수들에 한해 ‘최저학력제’를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갑자기 하라는건 난센스” 현장선 비판

문화체육관광부는 4일 “시행 초기에 ‘현장이 어떤지 아느냐.’는 항의 전화도 많이 받았고 욕도 많이 먹었지만 1년 만에 잘 정착됐다.”면서 “지도자들은 상대팀의 성적을 분석할 수 있기 때문에 어린 선수들의 경기력이 좋아지고, 성적도 좋아졌다고 한다.”고 전했다. 물론 지난해 말 조사한 운동선수들의 성적 향상은 과거와 큰 차이를 보이지는 않았다.

대한축구협회 한 관계자도 “운동선수라고 해서 공부를 게을리 해도 괜찮다고 여기던 시절을 벗어난 지 한참 지났다는 점에서 운동선수의 학습권 보장에 찬성한다.”며 정부 정책에 공감을 표시했다.

그러나 현장 지도자들의 반응은 여전히 부정적이다.

김상준 중앙대 농구 감독은 “학습권 보장이 좋은 취지이긴 하지만 당장 시행하는 건 너무 성급하다.”면서 “지금 세대는 운동을 특기로 계발해 운동만 한 선수들인데 갑자기 공부하라고 하는 건 난센스며, 희생양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농구 중·고연맹 박안준 사무국장도 “2016년에 일반학생들도 없는 최저학력제를 운동선수에게 도입하는 건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면서 “클럽제나 유소년 제도가 잘 되어 있는 선진국의 탄탄한 기반시설을 보지 않고, 선진국의 운동선수는 공부도 하니 우리도 따라가자는 것은 문제”라고 말했다.

●“일반 학생도 최저학력제 없는데…”

88서울올림픽을 준비하면서 크게 성장한 엘리트 체육과 달리 우리나라의 학교체육 수준은 형편없는 상황이다. 현재 여자 중·고 농구팀은 고작 40개. 이중 10명의 선수를 거느린 팀조차 드물 정도로 열악하다. 초·중·고는 물론 대학 야구까지 모두 합쳐서 500여팀밖에 안 된다.

반면 일본의 청소년 농구는 중·고등학교 농구팀들이 남녀 각각 6000개나 된다. 야구의 경우도 고등학교 야구 등록팀이 5000개다. 일본의 중·고등학교는 1개 클럽 가입을 원칙으로 하고 수십년 동안 주말에만 경기하는 시스템이 정착됐다.

최건용 동국대 야구코치는 “일본에서는 초등학생들이 야구를 편하게 접하고, 성장하면서 체격조건이 나빠지면 그만둔다. 반면 운동신경이 좋은 친구들은 어릴 때부터 야구를 했기 때문에 나중에 야구팀에 합류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국내는 좋은 선수를 뽑아서 운동을 하도록 하는 게 아니라, 한번 뽑은 학생들을 중심으로 선수를 만들어 나가는 시스템이라 완전히 다르다.”고 지적했다.

학부모들도 여전히 불안해하고 있다. 축구선수인 13세, 15세 두 아들을 둔 경남 마산시 김영수(41·여)씨는 “공부하는 운동선수란 말은 좋지만, 현재 교육 정책·제도와 여건상 책만 파헤쳐도 대학 근처에 갈까 말까 하는 현실에서 어떻게 아이들의 장래에 대해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홈앤드어웨이 방식으로 경기가 진행되면 경기 수가 줄어들 수 있다는 점도 현장 지도자들의 걱정거리다. 현재 각 대학의 축구, 농구, 야구, 배구 등 운동부의 존재는 대학 홍보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 경기 수가 줄어들어 대학 홍보가 어려워지면 운동부 운영에 대해 대학이 회의적으로 바뀌고, 결국 대학 운동부가 없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엘리트→생활체육으로 전환 선행돼야

운동선수들의 학습권을 보장할 수 있는 미래지향적 모델도 제시되고 있다. ‘차범근 축구교실’과 같은 유소년 축구클럽이 늘어나고, 각 구청이나 시청 등을 중심으로 초등학생들을 위한 ‘리틀야구단’들이 형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운동선수의 95%가 선수가 아닌 일반인으로 사회에 나가야 하는 현실을 감안할 때 이 같은 모델은 운동선수의 학습권을 어느 정도 충족시킬 수 있어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다만 운동선수의 학습권 저변을 확보하기 위해선 각종 경기에서 메달권에 들지 않아도 좋다는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다. 88서울올림픽을 개최하기에 앞서 ‘88꿈나무’를 키우는 방식은 지양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재민 문화부 차관은 “일본이 인구수나 체육인 수에 비해 메달 개수가 적은 것은 엘리트 체육이 아니라 생활체육으로 전환하기 위해 수십년간 노력했기 때문”이라며 “운동선수의 학습권은 이런 사회적 풍토에서 나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송한수 문소영 조은지기자 symun@seoul.co.kr
2010-01-05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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