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페이지

“내가 안죽였는데 죽였다고 하네요”…장애인·미성년자 눈물

“내가 안죽였는데 죽였다고 하네요”…장애인·미성년자 눈물

입력 2016-07-12 10:59
업데이트 2016-07-12 10:59
  • 글씨 크기 조절
  • 프린트
  • 공유하기
  • 댓글
    14

살인사건 재심속출…경찰·검찰·법원 신뢰 하락

이미지 확대
’진범 나타났다, 검찰은 항고 포기하라’
’진범 나타났다, 검찰은 항고 포기하라’ 사건 발생 17년 만에 진범을 가리고자 다시 재판에 부쳐진 ’삼례 나라슈퍼 3인조 강도치사’ 사건의 피해자 유가족 및 관계자가 11일 오전 서초동 대검찰청 정문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검찰의 항고포기를 촉구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피해자 유가족 일동은 기자회견을 마친 후 대검찰청에 이러한 내용의 진정서를 제출했다.
연합뉴스
삼례 3인조 강도치사, 익산 택시기사 살인, 친부 살인 김신혜씨 사건

“열 명의 범인을 놓쳐도 한 명의 무고한 범인을 만들지 마라.”

“부디 당신이 심판받기를 원하는 그 방법으로 나를 심판해 주시기를”(영화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 중)

십수 년 전 발생한 이른바 ‘삼례 나라슈퍼 3인조 강도치사사건’과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 ‘무기수 김신혜 사건’ 등 형사사건이 법원에서 잇따라 재심 개시 결정이 내려졌지만 사법 폭력의 당사자인 공권력은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잇단 재심 개시 결정에도 반성 대신에 기계적인 항고를 한 ‘사과할 줄 모르는 공권력’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 ‘삼례 3인조 강도치사’ 17년 만에 누명 벗나…검찰 ‘항고 포기’

경찰과 검찰의 부실 수사와 진범 논란을 빚었던 ‘삼례 나라슈퍼 3인조 강도치사사건’의 진실이 17년 만에 다시 가려지게 됐다.

전주지법 제1형사부는 지난 8일 최대열(38)씨 등 ‘삼례 3인조’의 재심 청구를 받아들여 재심 개시를 결정했다.

삼례 나라슈퍼 진범 재수사 요구. KBS 제공
삼례 나라슈퍼 진범 재수사 요구. KBS 제공
재판부는 사건을 다시 심리해 이들의 유·무죄를 판단한다.

재판부는 “재심 대상 판결이 확정된 이후 부산지검이 이 사건의 진범이 피고인들이 아니라 다른 3명이라는 첩보를 입수하고 내사했는데 이들이 범행을 모두 자백했다”라며 “이들의 자백을 뒷받침하는 참고인 진술 등은 재심 대상 판결이 확정된 이후에 발견된 새로운 증거로서 피고인들의 무죄를 인정할 만한 명백한 증거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형사소송법 제420조 제5호는 ‘무죄를 인정할 명백한 증거가 새로 발견될 때’를 재심 사유로 규정하고 있다.

삼례 나라슈퍼 3인조 강도사건은 17년 전 1999년 2월 6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날 오전 4시께 전북 완주군 삼례읍 나라슈퍼에 3인조 강도가 침입했다. 범인들은 잠자던 유모(당시 76) 할머니의 입을 테이프로 막아 숨지게 하고 현금과 패물 등 254만원 어치를 털어 달아났다.

경찰은 사건 발생 9일 후 19∼20살의 동네 선후배 3명을 구속했다. 이른바 ‘삼례 3인조’다.

최씨 등 ‘삼례 3인조’는 가정환경이 불우해 중학교만 졸업한 뒤 동네에 남아 있던 청년들이었다. 최씨의 부모도 모두 장애인이었다.

피해자인 슈퍼 주인의 가족은 당시 “범인은 경상도 말투를 쓰는 20대”라고 진술했지만 무시됐다.

삼례 3인조는 당시 완주경찰서 직원들로부터 발로 ‘조인트 까이고’ 손으로 맞았다. 이 경찰들은 아직 현직에 있다.

경찰은 경찰봉으로 발바닥을 때렸고 잠까지 안 재웠다고 한다.

사건은 반전의 반전을 거듭했다.

‘삼례 3인조’의 형이 확정된 뒤인 1999년 11월 부산지검은 ‘진범이 따로 있다’는 제보를 받고 이모(48·경남)씨 등 ‘부산 3인조’를 체포하고서 사건을 전주지검으로 넘겼다.

하지만 ‘부산 3인조’는 검찰 조사에서 자백을 번복했고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부산 3인조’를 무혐의 처분한 수사검사는 앞서 ‘삼례 3인조’를 구속한 동일 검사였다.

이 사건은 발생한 지 17년이 지나 공소시효(10년)는 지났고 사건 기록도 모두 폐기됐다.

최씨 등은 지난해 3월 유족이 보관 중인 현장검증 동영상과 진범으로 지목됐던 인물들의 사건 기록을 근거로 전주지법에 재심을 청구했다.

사건은 검찰이 풀어줬던 이씨가 올해 초 자신이 진범이라고 ‘양심선언’하면서 이슈가 됐다.

이씨는 재심 청구사건의 증인으로 출석해 “나와 지인 2명 등 3명이 진범”이라며 “당시 익산까지 왔다가 지인들과 함께 익산에서 가까운 삼례에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자백했다.

이씨와 함께 ‘부산 3인조’로 지목된 배모 씨는 지난해 4월 숨졌고 조모 씨는 사건에 대해 함구하고 있다.

이씨는 재판에 앞서 지난 1월 피해자의 충남 부여군 묘소를 찾아 무릎을 꿇고 사죄했다.

검찰은 재심 결정 후 항고를 포기했다.

◇ “내가 안 죽였어요. 단지 목격자일 뿐”…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

2000년 8월 전북 익산에서 발생한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 재심 첫 공판이 지난달 16일 광주고법 형사 1부 심리로 열렸다.

그것이 알고싶다 약촌 살인사건, 익산경찰서
그것이 알고싶다 약촌 살인사건, 익산경찰서
지난해 12월 대법원이 이 사건의 진범으로 지목돼 옥살이한 최모(32)씨의 재심 청구를 받아들인 지 6개월 만이다.

최씨는 16살이던 2000년 8월 10일 오전 2시 7분 전북 익산시 약촌오거리에서 오토바이를 몰고 가다가 택시기사 유모(당시 42)씨와 시비 끝에 유씨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혐의로 기소됐다.

최씨는 항소심에서 징역 10년이 확정됐고 2010년 만기출소했다.

판결 확정 이후에도 유씨를 살해한 진범과 관련한 첩보가 경찰에 입수되는 등 초동 수사가 부실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2003년에는 당시 용의자로 지목된 김모씨가 경찰에서 범행을 자백하기도 했다. 그러나 구체적인 물증이 발견되지 않은 데다, 김씨와 그의 친구가 진술을 번복하면서 수사는 흐지부지됐다. 직접 증거가 없어 검찰은 기소조차 못 했다.

최씨는 2013년 재심을 청구했으며 광주고법에서는 최씨가 불법 체포·감금 등 가혹행위를 당한 점, 새로운 증거가 확보된 점 등을 들어 재심을 결정했다.

검찰은 이에 항고했지만 대법원은 지난해 12월 검찰의 항고를 기각했다.

이 사건의 공소시효는 애초 올해 8월 9일 만료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8월 살인죄의 공소시효를 폐지한 형사소송법 개정안(일명 ‘태완이법’) 시행으로 공소시효 적용에서 배제돼 진범을 검거할 여지가 남아있다.

과거사가 아닌 일반 형사사건의 재심 결정은 극히 이례적인 데다 ‘태완이법’ 시행으로 공소시효가 사라진 사건이어서 진범을 잡을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 친아버지 살해 혐의 ‘무기수 김신혜 사건’

친부 살해 혐의로 16년째 복역 중인 무기수 김신혜(39·여)씨에 대한 법원의 재심이 지난해 11월 결정됐다. 복역 중인 무기수로서 첫 재심 결정이다.

친부살해 혐의 무기수 김신혜 재심
친부살해 혐의 무기수 김신혜 재심
법원은 경찰의 당시 수사가 잘못된 절차에 의해 진행됐다며 수사의 잘못을 인정했다. 그러나 김씨가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 제출한 증거들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당시 경찰이 압수·수색영장에 의해 압수수색을 하지 않았고, 압수수색 과정에서 경찰관이 참여하지 않았는데도 압수조서를 허위로 작성했다며 경찰 수사의 잘못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경찰이 김씨가 현장검증을 거부했는데도 영장도 없이 범행을 재연하게 했다며 강압 수사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당시 경찰 수사의 잘못을 일부 인정했지만, 김씨가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 제출한 증거는 모두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당시 경찰의 수사보고서 등의 증거가 허위로 작성됐다는 김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또 “아버지의 성추행이 없었다” “보험금 수령 목적이 없었다” 등 김씨의 주장이나 새롭게 제출한 증거들은 ‘새로운’ ‘명백한’ 증거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무죄를 선고할만한 증거로 인정하지 않았다.

수사 과정에서 일부 경찰관의 가혹행위가 있었고 구속 영장실질심사를 받을 수 있는 권리를 알려주지 않았다는 김씨의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재심 개시 이유를 당시 수사 경찰이 직무에 관한 죄를 저질렀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무죄를 선고할 명백한 증거가 발견되지 않아 형 집행을 정지하지는 않았다.

김씨는 2000년 3월 자신을 성추행한 아버지에게 수면제가 든 술을 마시게 하고 살해한 뒤 시신을 유기한 혐의로 기소돼 2001년 3월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이 확정됐다.

김씨는 당시 범행을 자백했지만 수사와 재판이 진행되면서 “동생이 아버지를 죽인 것 같다”는 고모부의 말에 자신이 동생을 대신해 감옥에 가겠다고 거짓 자백을 했다며 무죄를 호소했다.

대한변호사협회는 재판기록과 증거 등을 검토, 지난해 1월 “반인권적 수사가 이뤄졌고 당시 재판에서 채택된 증거는 현재 판례에 따르면 위법 수집 증거로 판단된다”며 재심을 청구했다.

◇ 재심 돕는 박준영 변호사 “공권력이 사과해야”

이처럼 ‘돈 안 되는 사건들’의 중심에는 고졸 학력의 ‘끗발 없는’ 박준영(42) 변호사가 늘 있었다.

박 변호사는 세 사건의 공통점으로 열악한 환경에 있는 지적 장애인이나 미성년자 등이 진범으로 몰려 누명을 쓴 것과 이런 사회적 약자들을 보호해야 할 수사기관이 가혹한 수사를 했다는 점을 꼽았다.

박 변호사는 “삼례 3인조 강도치사사건이나 익산 택시기사 살인사건은 피고인들의 형이 확정돼 복역 중인 상황에서 진범들이 나타났지만 검찰은 진범으로 지목된 사람들을 다 풀어줬다”라며 “당시 가짜 살인범을 만들었던 공권력인 경찰과 검사, 판사, 국선변호인, 그들의 잘못을 낱낱이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공권력은 더는 침묵하지 말고 잘못을 인정하고서 사죄해야 법치가 바로 선다”고 힘줘 말했다.

연합뉴스
많이 본 뉴스
내가 바라는 국무총리는?
차기 국무총리에 대한 국민 관심이 뜨겁습니다. 차기 국무총리는 어떤 인물이 돼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대통령에게 쓴 소리 할 수 있는 인물
정치적 소통 능력이 뛰어난 인물
행정적으로 가장 유능한 인물
국가 혁신을 이끌 젊은 인물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