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밝히는 사람들] ‘시각장애’ 마흔셋 김태연씨 새달 중학교 영어교사 첫 출근

[세상을 밝히는 사람들] ‘시각장애’ 마흔셋 김태연씨 새달 중학교 영어교사 첫 출근

입력 2016-02-21 23:08
수정 2016-02-22 0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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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발 짚고 축구하듯… 두 배, 세 배 노력했죠”

5살 이후 시력 악화… 장애 1급 판정
어렵게 간 수의학과 1년 만에 중퇴
장애 대학생과 영어 공부하며 새 도전
음성으로 듣고 외워 이대·임용시험 합격
“엄마 같은 선생님이 되자는 생각뿐”

“미국 영화 ‘포레스트 검프’의 주인공처럼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그저 열심히 살았다는 것만으로도 장애가 있는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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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연씨
김태연씨
김태연(43)씨는 오는 26일 자신보다 스무 살 정도 어린 동기들과 나란히 학사모를 쓴다. 2012년 이화여대 영어교육과에 입학해 남들보다 고된 공부를 이어 온 끝에 얻은 귀한 결실이다. 시각장애 1급인 김씨는 지난 2일 서울시교육청 공립중등교사 임용시험 합격 통지를 받았다. 다음달 2일부터 서울 구로구 경인중학교에 영어교사로 출근한다.

“마흔 살에 대학에 입학했어요. 학과 공부를 할 때는 과연 내가 해낼 수 있을까 싶었는데 이제는 ‘엄마 같은 선생님이 되자’는 생각뿐이네요.”

김씨는 어려서부터 시력이 극도로 나빴다. 초등학교에 들어가 맨 앞줄에 앉았는데도 칠판 글씨가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런 속에서도 성적은 꽤 좋았다. 1992년 건국대 수의학과에 합격했는데, 입학식 직전에 오른쪽 눈에 ‘황반변성’이 생겼다. 황반변성은 물체의 상이 맺히는 망막 중심부의 황반(시세포가 모여 있는 조직)에 이상이 생겨 시력 장애를 일으키는 병이다. 1년 후엔 왼쪽 눈에도 황반변성이 나타났다.

결국 1년 만에 학교를 중퇴했다. 한동안 학습지 영어 교사로 일했다. 2006년에는 백내장이 찾아왔다. 눈은 갈수록 더 나빠져 2000년 3급이던 시각장애 등급이 2009년에는 1급으로 바뀌었다.

“집에서 형광등 불빛이 물이나 수저에 비치면 눈이 부셔서 뜰 수가 없어요. 창문마다 선팅 처리를 하고 커튼을 달았죠. 지금도 외출할 때면 언제나 선글라스를 끼고 다닙니다.”

김씨는 2009년 인천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점자와 컴퓨터를 배우면서 희망을 찾기 시작했다. 복지관 직원이 소개해 준 시각장애인 대학생 2명과 영어 공부를 하면서 영어 교사의 꿈도 생겼다. “건국대를 그만두고 ‘굿모닝 팝스’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에 재미를 붙였는데, 나중에는 미국 영화를 자막 없이 보게 됐죠. 즐겁게 공부하고 다른 사람도 가르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어요.”

대학수학능력시험 준비는 쉽지 않았다. 점자를 늦게 배운 터라 실력이 모자라 라디오 등 음성으로만 공부했다. 2010년 입시에서 고배를 마시고 2011년 치른 수능을 통해 이화여대 영어교육과 신입생이 됐다. 김씨는 “대학 때 모든 강의를 녹음한 후 주말마다 녹취 내용을 타이핑해서 컴퓨터에 한글 파일로 요약해 두었다”며 “이후 컴퓨터 한글 파일을 음성으로 들려주는 프로그램을 이용해 수도 없이 반복해 들으며 공부했다”고 말했다. 또 그는 “시험 때는 3시간만 잤고 학창시절 4년간 대학 밖의 친구들은 다섯 번밖에 만나지 못했다”고 했다.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장애가 없는 사람들과 같은 조건에서 경쟁하는 건 목발을 짚고 축구 경기를 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해요. 일반인보다 2~3배는 더 노력해야죠. 하지만 주변의 지원이 있다면 거기에 자신의 노력을 얹어 충분히 극복해낼 수 있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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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2016-02-22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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