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유명 사립 S대 중어중문학과 2학년생 홍모(21·여)씨. 어문학부 08학번인 그녀는 올해 초 전공선택 당시를 돌이켜 생각하면 아찔하다. 중국에서 3년간 생활해 중국어에는 자신이 있었지만 같은 학과 친구 상당수가 학원수업 등을 통해 원어민 수준의 회화를 구사하고 있어 적잖이 놀랐다. 홍씨는 특히 “동기들이 입학 전은 물론 방학 때마다 학원에서 전공 선행학습을 하고 있다.”면서 “불안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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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취업문이 좁아지면서 상아탑(象牙塔)의 상징인 대학에도 사교육 열풍이 불고 있다. 상당수 대학생들이 입학 전부터 전공을 미리 배워 취업공부 시간을 벌거나, 높은 학점의 ‘스펙’을 얻기 위해 방학 동안 학원을 전전하고 있다. 대학생만을 위한 ‘전공 전문 강의’가 우후죽순 생겨나는 실정이다.
29일 대학가에 따르면 학과마다 많게는 90% 이상의 학생이 학원에서 전공을 미리 배우는 등 선행학습이 붐을 타고 있다. 어문계열 학생들의 전공 선행학습은 5~6년 전부터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서울신문이 서울 사립 S대 문과대 학부생 가운데 내년 독어독문학과 전공을 결정한 전체 11명 중 10명을 면접조사한 결과 모두 학기 중 또는 방학 기간 동안 학원에서 전공과목을 선행학습할 예정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 학교 중어중문학과 전공 결정자 8명 가운데 2명, 러시아어문학과 12명 가운데 7명, 프랑스어문학과 12명 가운데 4명이 전공 선행학습을 했거나 할 예정인 것으로 조사됐다. 전공 선행학습을 하는 한 학생은 “종로에 위치한 유명 어학원에서 한 달에 10~20만원, 3개월에 50만원 정도 내고 전공을 미리 배운다.”면서 “40~50만원을 내고 현지 유학생에게 과외를 받는 사례도 있다.”고 귀띔했다. 다른 학생은 “전공을 미리 배워 높은 학점을 따 놓으면 취업 서류 전형에 도움이 된다. 전공 선행학습은 안 하면 오히려 이상할 정도”라고 말했다.
유명 사립 K대 법대 1학년 250명 가운데 약 70%는 신림동의 고시학원이나 인터넷 강의를 통해 선행학습을 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 학생은 “90만원 정도를 내고 형법·민법·헌법으로 구성된 기본강의를 3개월 정도 미리 배웠다.”면서 “사법고시 마지막 세대이기 때문에 불안감이 크다.”고 말했다. 대학생 이모(21)씨는 “일찍부터 사법고시를 준비한다고 생각하고 학원을 다니고 있다.”면서 “동기들도 불안한 나머지 다 다닌다.”고 말했다.
대학의 이런 교육 현실에 전문가들은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 어문계열 교수는 “학원에서는 점수따기식, 겉핥기식 표피적인 공부만 가능하다.”면서 “어학은 문학과 문화 전반을 같이 공부해야 하는데 학점이 괜찮다고 학교 수업에 태만하면 창의적인 인재 양성이 불가능하게 된다.”고 말했다.
정현용기자 junghy77@seoul.co.kr
2009-11-30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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