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봇대보다 뽑기 힘든 신호등

전봇대보다 뽑기 힘든 신호등

입력 2009-09-29 12:00
수정 2009-09-29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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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선 시·군·구 기초자치단체들이 주민 안전을 위해 사고가 잦은 지역의 교통신호체계를 개선하려 해도 거쳐야 하는 행정기관과 절차가 너무 많아 골머리를 앓고 있다. 심지어 신호등 하나 옮기는 데도 몇 년이 걸려 해당 공무원들은 “전봇대 뽑기보다 신호등 옮기기가 더 힘들다.”는 말을 한다. 중앙정부와 광역자치단체에 지나치게 권한이 집중돼 행정적 비효율을 낳는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심의·설계·용역 등 절차 복잡

28일 서울시 등에 따르면 지난 2월 서울 공덕동 만리재길의 횡단보도에서 한 초등학생이 차에 치여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횡단보도가 초등학교 정문과 맞닿아 있어 어린이들이 학교 안에서 뛰어나와 횡단보도를 건너는 게 문제라고 판단한 마포구는 신호등을 교문에서 4m가량 옮겨 설치해줄 것을 경찰에 요청했다. 하지만 구청장의 간곡한 부탁에도 실제 횡단보도를 이전하는 데는 4개월이나 걸렸다. 관할 마포경찰서와 서울경찰청의 심의, 서울시와 서부도로교통사업소 등의 설계를 거친 뒤에야 업체에 사업용역을 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신영섭 마포구청장은 “인명과 직결된 시급한 사안인데도 여러 행정기관을 거치다 보니 시간이 너무 많이 소요돼 어려움이 크다.”고 토로했다.

지하철 석수역 인근 교차로의 경우 불공평한 신호 체계로 주민 불만이 크지만 신호등이 다른 자치구에 속해 있어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현재 이곳 교차로에서 안양→서울 방향으로 가는 차량은 U턴이 가능하지만 반대의 경우 오직 좌회전만 할 수 있다.

지난 6월 이곳에 중앙버스전용차로가 생기면서 신호 체계가 잘못 적용된 탓이다. 주민들은 안양 방향으로 2㎞ 정도 더 직진해 삼막 삼거리에서 되돌아오는 불편을 겪고 있다. 불법 U턴도 일상화돼 주민과 경찰 간 ‘함정단속’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금천구 관계자는 “좌회전 신호에 U턴 신호만 추가하면 되는 간단한 것인데도 신호등이 불과 몇십m 차이로 경기 안양시에 있다 보니 경기도 및 경기경찰청의 협조까지 구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어려움을 호소했다.

●주민위한 행정효율화 시급

전문가들은 “기초자치단체가 그 지역의 사정을 잘 아는데, 도로의 신호등조차 스스로 옮길 수 없을 만큼 기본적인 권한조차 갖지 못한 현재의 행정 구조가 문제”라고 지적한다. 특히 금천구의 사례처럼 신호등이 다른 자치단체와 연계돼 있을 경우 그 일정조차 가늠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이를 개선하려면 지방자치법, 도로교통법 등 여러 법률에 대한 전반적인 손질이 필요한 상황이다.

한양대 강경우 교통시스템공학부 교수는 “도로교통체계 개편은 안전과 직결돼 있어 보수적으로 운용해야 하지만, 중앙정부가 너무 많은 권한을 쥐고 있는 게 사실”이라며 “각 지자체가 신분이 보장된 도로교통 전문가를 육성한다는 전제 아래 도로체계 운영 권한 정도는 기초 자치단체에 이양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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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지영기자 superryu@seoul.co.kr
2009-09-29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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