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추석 못쇠도 벌초땐 와라?

제주도 추석 못쇠도 벌초땐 와라?

입력 2009-09-18 00:00
수정 2009-09-18 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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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중 세 과시 토착문화 발달 8촌까지 모여 4대조묘 손질

“벌초 해수꽈(벌초했습니까)?”

직장인 양모(36·서울시 중계동)씨는 요즘 회사일이 바쁘지만 직장 상사의 눈치를 보면서 18일 하루 어렵사리 휴가를 냈다. 고향인 제주도로 내려가 벌초행사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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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끔하게 벌초가 된 제주 중산지역의 가족묘 풍경. 묘지를 반듯하게 정리하고 동물이 훼손하지 못하도록 묘 주변에 산담(돌담)을 쌓아 놓았다.
깔끔하게 벌초가 된 제주 중산지역의 가족묘 풍경. 묘지를 반듯하게 정리하고 동물이 훼손하지 못하도록 묘 주변에 산담(돌담)을 쌓아 놓았다.
양씨는 “추석 당일 차례에는 참석하지 못해도 벌초는 반드시 가야 하는 게 제주의 오랜 풍습”이라고 말했다.

토박이는 물론 출향인도 음력 8월 초하루(19일)가 되면 고향 제주를 찾아 조상묘에 벌초한다. 일본 교포들도 벌초를 위해 고향 제주를 찾는다. 여름 휴가철이 지나 관광철이 제주행 항공권의 예약은 오래전에 끝났다.

제주에선 단정하게 정성껏 벌초를 안 하고 방치된 묘를 ‘골총’이라 한다. 이는 제주에서 곧 자손의 몰락을 의미하며 손가락질 대상이 된다.

제주에는 ‘가족 벌초’가 있다. 8촌까지 모여 고조부 등 4대조 묘까지 깨끗하게 손질을 한다. 그 다음엔 ‘모둠 벌초’가 이어진다. 문중 대표들이 모여 처음 제주에 정착한 입도조의 묘까지 정리한다.

‘식께 안 헌건 놈이 모르고(제사 안 지낸 것은 남이 모르고), 소분 안 헌 건 놈이 안다(벌초 안 한 것은 남이 안다).’는 제주 속담은 벌초를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지 단적으로 보여 준다.

양씨는 “제주에서 벌초는 계나 품앗이 성격이 강해 객지에 산다는 핑계로 한 두해 불참했다가는 시쳇말로 고향 친척들에게 찍힌다.”며 “객지에 나가 살더라도 조상묘 벌초는 제때 꼭 해야 한다는 소리를 귀에 못이 박일 정도로 듣고 자랐다.”고 말했다.

장흥 마(馬)씨 강진파 입도조의 묘는 한라산 정상(1950m) 턱밑인 해발 1600m 부근에 있다. 후손들의 벌초길은 어리목을 거쳐 한라산 윗세오름 등산로를 따라 무려 왕복 7~8시간이 걸린다.

마원국(70·제주시)씨는 “예전에는 한라산에 등산로가 제대로 없는 데다 갑자가 폭우가 쏟아지는 등 날씨가 변화무쌍한 고산지대를 헤매며 50여년간 벌초를 다녔다.”면서 “지금 벌초길은 고속도로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벌초시기에 제주기상청은 여름 태풍 예보 못지않게 날씨 예보에 각별한 신경을 쓴다. 벌초날 예보가 어긋나면 기상청에 비난이 빗발친다.

일부 학교는 후손의 정성과 효의 의미를 일깨운다는 취지에서 하루 벌초 방학을 한다.

진성기 제주민속박물관 관장은 “대규모 벌초 행사를 통해 가족이나 문중의 세도 과시한다.”면서 “섬이라는 지리적 특수성에 기인한 친·인척 중심의 ‘괸당(혈족을 일컫는 제주 사투리)문화’가 벌초 문화를 유별나게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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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제주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2009-09-18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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