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안 적용 해보니
지난해 서울고법이 900억원대 회사돈을 빼돌리고 계열사에 2100억원대 손실을 끼친 국내 모재벌 회장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을 때 ‘유전무죄’라는 비판이 일었다.하지만 이번에 마련된 양형기준안을 적용하면 이 총수는 실형을 면할 수 없다. 횡령·배임액이 500억원 이상이어서 가장 죄질이 나쁜 제5유형에 속하고, 감경을 해도 징역 4~7년으로 집행유예 선고가 불가능하다.
오히려 계획적·조직적으로 거액을 빼돌린 범행수법 등이 가중요소로 작용해 7~11년의 최고형이 선고될 수도 있다.
재벌 총수들의 판결문에 단골메뉴처럼 등장하던 ‘경제·사회적 기여도’ 역시 앞으로는 형량을 정하는 데 고려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당시에는 재판부가 사회공헌 활동 약속 등을 참작해 형을 줄여줬지만, 앞으로는 이 역시 안 된다.
지난해 청주지법은 친손녀가 9살이었을 때부터 여러 해 동안 성폭행한 할아버지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하면서 “정신지체 등으로 부모를 대신해 피해자를 양육한 점, 피고인 역시 앞으로 정신적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점, 고령이라는 점 등을 감안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양형기준안에서는 이런 요소를 참작하지 못하도록 다 뺐다. 13세 미만 아동을 성폭행한 할아버지에게는 기본형으로 징역 5~7년, 이에 수차례 범행을 저질렀고 인적 신뢰관계를 이용한 가중요소가 있기 때문에 최고 9년형까지 선고된다.
양형위는 뇌물죄의 형량도 높이면서 ▲신분 상실 및 사회적 명예 실추 ▲뇌물 반납 ▲관련 징계처분 이미 집행 등을 이유로 집행유예를 선고하지 못하도록 못박았다.
반면 ‘내부 고발자’의 경우 형을 감경하도록 명시했다.
강도죄는 기본형을 징역 2~4년으로 놓고 피해자가 상해를 입었을 때는 10년형까지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감경요소와 가중요소가 다 있을 경우에는 숫자가 더 많은 쪽으로 판단한다.
또 뇌물죄나 배임·횡령죄를 수차례 저지른 동종 경합범의 경우 뇌물액 및 피해액의 합계에 해당하는 형을 선택하도록 했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2009-04-25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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