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공개한 긴급조치위반 판결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1976년 11월 서울지법 영등포지원(재판장 이영구 부장판사·현 변호사)은 수업 중 “우리나라 정권은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해먹는다.”고 말해 긴급조치 9호, 반공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고교 교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영구 당시재판장 전보 뒤 재야로
재판부는 “1인집권도 자유당 시절 경험했던 역사적 사실이어서 그 자체가 날조된 사실이거나 왜곡한 것이라 하기 어렵다.”면서 “박정희 정권이 장기집권임은 부인할 수 없는 것이어서 장기집권에서 오는 지루한 안정에 대해 자유 국민이 갖는 염증 감상을 표현한 것이므로 무죄”라고 밝혔다. 박정희 정권을 장기 집권으로 표현하는 것 자체가 금기였던 당시 분위기를 떠올리면 ‘파격’적인 판결이다. 이 재판에는 조홍은 판사(현 변호사)와 민형기 판사(현 헌법재판관)가 배석 판사로 참여했다.
이영구 부장판사는 이 판결 뒤 전주지법으로 발령을 받았지만 한달만에 법복을 벗었다. 두 배석판사는 서울형사지법으로 옮겨 법관 생활을 계속했다. 이 사건은 항소심에서 장기간 계류돼 있다 긴급조치가 해제된 1980년 3월 면소 판결로 마무리됐다.
●민형기 헌법재판관 배석판사 눈길
또 광주고법(재판장 노병인 부장판사·별세)에서는 1976년 5월 “박정희 대통령이 무력으로 집권했다.”는 등의 발언을 해 긴급조치 9호 등 위반 혐의로 기소된 뒤 1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던 농민에게 원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한 판결이 있었다.
피고인이 부인하는데다 마을 사람들의 증언도 일관되지 못하다는 게 무죄 이유였다. 이 사건은 1976년 대법원에서 검찰의 상고가 기각돼 확정됐다. 노병인 부장판사는 1979년 변호사 개업을 했다. 주심을 맡은 양영태 판사(현 변호사)는 인사에서 불이익을 받다가 1984년 법복을 벗었다고 한다.
임광욱기자 limi@seoul.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