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 역사적 심판 이어져야”

“가해자 역사적 심판 이어져야”

김기용 기자
입력 2007-01-25 00:00
수정 2007-01-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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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4월9일,8명의 생명이 스러져간 그날 그곳에 ‘빨갱이’는 없었습니다.‘조작’이라는 단 하나의 진실이 이제서야 겨우 밝혀졌습니다.”

법원이 ‘인혁당 재건위 사건’ 재심에서 고인이 된 피고인들에게 32년만에 무죄를 선고한 다음날인 24일 서울 군자동 메리놀성당 사제관에서 제임스 시노트(78) 신부를 만났다. 조금 발갛게 상기된 그의 얼굴에는 채 가시지 않은 선고 당시의 감동이 역력했다.“도예종·서도원·하재완·송상진·우홍선·김용원·이수병·여정남…. 이제 시작입니다. 이들을 올바르게 기억하면서 추악한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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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노트 신부가 ‘인혁당 사건’재심 무죄 판결후 유가족으로부터 선물 받은 희생자를 추모하는 시와 그림이 담긴 족자 옆에 서 있다.
시노트 신부가 ‘인혁당 사건’재심 무죄 판결후 유가족으로부터 선물 받은 희생자를 추모하는 시와 그림이 담긴 족자 옆에 서 있다.


구명운동 펼치다 75년 4월 강제추방 당해

미국인인 시노트 신부는 인혁당 재건위 사건 조작 사실을 가장 먼저 제기한 인물로, 해외 언론들에 관련 내용을 알리면서 인혁당 재건위 사건으로 구속된 8명의 구명 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그는 이 때문에 당시 중앙정보부 요원으로부터 집안까지 감시당해야 했고 결국 1975년 4월말 강제 추방당했다. 하지만 추방된 후에도 미국 정부나 언론사에 한국의 실상을 알리는 데 많은 노력을 해 왔으며,2002년 다시 한국에 영구 귀국했다.

시노트 신부는 32년만의 무죄 선고를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뒤, 감동과 울분·기쁨과 슬픔·웃음과 눈물이 한꺼번에 밀려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거기 그대로 있다가는 심장이 터질 것 같더라고요. 일찍 집으로 돌아와서 하루종일 지난 30여년을 조용히 되새겼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할 일에 대해서도 생각해 봤죠.”

“박정희 칭송 얘기 들을때마다 분노 치솟아”

그는 “결코 이번 무죄 판결이 ‘끝맺음’이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젊은 사람들에게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간 8명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그들을 그렇게 죽음으로 내몰았던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시노트 신부는 정확한 발음으로 박정희(당시 대통령), 민복기(당시 대법원장), 신직수(당시 중앙정보부장) 등의 이름을 거론하며,“이들에 대한 역사의 심판도 반드시 이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요즘 한국의 젊은 사람들이 박정희를 그리워하거나 칭송한다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분노가 치솟는다.”면서 “젊은이들이 정치·사회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고 편안함만을 추구하다가는 암울한 역사가 재연될 수 있다.”고 걱정했다.

“대통령 자리 꿈꾼다면 가족에 사과해야”

시노트 신부는 때마침 TV를 통해 생중계되고 있던 부시 미국 대통령의 새해 연두 기자회견을 보면서 “미국도 부시와 같은 사람이 대통령으로 뽑힐 정도로 정치·사회의식이 많이 퇴색했다.”고 지적하면서 “지금의 부시와 과거의 박정희는 ‘악(evil)’ 그 자체”라고 주장했다.

또 “인혁당 재건위 사건이 법원에 의해 무죄 판결이 난 만큼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인 박근혜 전 대표가 모른 척해서는 안 된다.”면서 “대통령 자리를 꿈꾼다면 적어도 인혁당 재건위 사건 가족들에게 사과하고, 그들의 가슴과 삶에 새겨진 ‘빨갱이’란 말을 지워낼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글 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2007-01-25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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