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남자’ 외줄타기 비밀은 부채

‘왕의 남자’ 외줄타기 비밀은 부채

입력 2006-01-27 00:00
수정 2006-01-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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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순전히 남자배우가 얼마나 예쁜지 보고 싶어 선택한 영화였다. 하지만 영화 `왕의 남자´를 보는 동안 배우들의 명연기가 돋보였다. 특히 광대들이 보여주었던 그 많은 광대짓들이 정말 흥미진진했다.

장터에서 기계체조 선수들도 놀랄 만한 재주를 넘는다든가, 탈을 쓰고 하는 극들도 훌륭하지만 외줄타기의 묘기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닌 것 같다.

줄타기 묘기를 했던 장생역의 감우성이나 공길역의 이준기는 줄을 매고 했다고 한다. 그 장면을 보는 사람들은 얼마나 조마조마했을까.

우리는 맨몸으로 평균대 위를 걷는 것 만으로도 몸 전체가 긴장되는데 줄타기를 하는 광대들은 항상 손에 무언가를 들고 한다. 서양의 서커스도 그런 면에서는 비슷하다. 우리가 부채를 들고 두 손을 휘젓는 대신 그들은 너무 거추장스럽고 무거워 보이는 긴 장대를 들고 한다. 오히려 이런 ‘소품’들이 그들을 더 힘들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손에 든 부채나 장대 모두 안전하게 줄타기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도구라는 것이다. 우리들이 평균대를 걷게 되면 무의식적이든, 의식적이든 팔을 최대한 벌리고 걷는 것과 같은 이치다.

과학 용어로 설명하면 긴 물체를 들고 있으면 회전관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줄 끝에 작은 물체 하나를 매달고 돌릴 때 줄이 짧으면 잘 돌아가지만 줄이 길어질수록 빨리 돌리는 것은 쉽지 않다. 피겨스케이팅 선수가 빨리 돌려면 손을 모으고, 서고 싶을 때 손을 벌리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관성은 외부에서 힘이 주어지지 않으면 정지해 있는 물체는 계속 정지하려 하고, 움직이는 물체는 속도와 방향을 바꾸지 않고 계속 같은 속도와 방향으로 움직이려는 성질을 말한다. 관성 때문에 버스가 갑자기 출발하면 버스는 앞으로 나가지만, 정지해 있으려는 승객들은 뒤로 밀리는 것처럼 느낀다. 반대로 버스가 갑자기 정지하면 버스는 정지하지만 계속 움직이려는 승객들은 앞으로 밀리는 것처럼 느끼게 된다.

회전관성이라고 하면 회전하는 물체는 회전하고 싶어하고, 정지한 물체는 회전하기 싫어한다는 것이다. 긴 물체의 끝이 움직이는 것은 짧은 물체가 회전하는 것보다 어렵다. 회전 속도도 느려진다. 때문에 긴 물체를 들고 있으면 중심이 덜 흐트러지고, 행여 중심이 흔들려도 쉽게 다시 중심을 잡을 수 있게 된다.

가끔 줄타는 서커스 단원은 뭔가 다른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할 때도 있다. 우리 몸이 평형을 느끼고 중심을 잡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평형을 느끼는 감각은 의외로 귓속에 있다. 눈으로 상황을 보고, 귀 안에 있는 평형기관(전정기관과 반고리관)으로 몸의 감각을 느낀다. 평형 감각을 담당하는 곳은 소뇌라는 부분이다.

영화 마지막 부분에 장생이 눈이 멀어 줄을 볼 수는 없지만, 발바닥의 감각만으로 위태위태하게 줄타는 장면이 나온다. 눈으로 보면서도 하기 어려운 줄타기를 발바닥 감각만으로 할 수 있는 장생의 광대로서의 위대함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는 장면이 아닌가 싶다.

2006-01-27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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