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5일 쌀 협상 국회 비준에 반대하던 농민 1만여명은 서울 여의도에서 시위를 했다. 농민들은 국회로 진입하려 했고 경찰과 정면충돌했다. 경찰과 농민 부상자만 합해 200여명. 부상자 속에는 농민 전용철씨와 홍덕표씨가 있었다. 하지만 머리를 다친 전씨는 10일 만에 숨을 거뒀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홍씨의 ‘사망원인이 정지된 물체에 의한 것’이라며 경찰 진압이 직접적인 사인이 아니라고 밝혔지만 농민들은 부검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허 청장은 “전씨가 시위 현장에서 다친 것은 확실하지만 경찰의 폭행 여부는 조사 중”이라며 직접적인 책임 인정을 유보했다. 이후 전신마비 증세를 보인 홍씨마저 18일 사망하면서 농민들의 경찰에 대한 감정은 점점 격해졌다. 결국 진상조사에 나선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 26일 전씨와 홍씨의 사인으로 ‘경찰의 과잉진압’을 지목함에 따라 허 청장에 대한 사퇴 여론은 더 거세졌다. 서울청 기동단장이 직위해제되고 서울청장이 사퇴를 표명했지만 농민들은 경찰 최고책임자인 허 청장의 사퇴와 대통령 사과를 요구했다.
27일 노무현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사과를 하면서도 청장의 거취는 본인의 뜻에 맡기겠다고 했다. 허 청장은 ‘사퇴불가’ 입장을 고수했다. 폭력시위에 대한 공권력 행사 중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그의 소신 때문이었다. 그러나 농민단체와 야당, 심지어 여당까지 사퇴를 요구하고 나서자 결국 물러서지 않을 수 없었다. 일각에서는 허 청장의 ‘소신’을 지지했던 청와대가 국회 정상화를 위해 결단을 촉구한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한편으로 허 청장도 검찰과 수사권을 놓고 대립양상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경찰총수로서 자리를 고집하는 게 조직 전체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경찰청장이 중도 사퇴한 예는 전에도 있었다.1991년 경찰청 출범 이래 처음으로 자진 사퇴한 경찰 수장은 제3대 김효은 청장으로 이후 김세옥(7대)·김광식(8대) 청장도 중도하차했다. 최초의 임기제 경찰청장인 최기문 청장도 임기를 3개월 남기고 스스로 물러났다. 올 1월 취임한 허 청장마저 옷을 벗으면서 임기제 시행 이후 청장 2명이 모두 2년 임기를 채우지 못하게 됐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