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前대통령 서거 이후 구심점 잃어… ‘親文’ 변화의 과도기

노 前대통령 서거 이후 구심점 잃어… ‘親文’ 변화의 과도기

황비웅 기자
황비웅 기자
입력 2015-05-17 23:44
수정 2015-05-18 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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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노의 변천사

친노의 역사적 변천 과정을 살펴보면서 친노가 ‘특정 정파’인지 아니면 일종의 ‘프레임’인지 흐름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친노 생성기-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입문기

친노의 효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정치에 입문하는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8년 정치에 입문, 부산 동구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된 노 전 대통령은 그해 ‘5공 청문회’ 스타로 떠올랐다. 당시 이호철 전 청와대 민정수석과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 천호선 정의당 대표 등이 보좌진이었고 이후 안희정 충남도지사, 서갑원 전 의원 등이 합류한다.

●친노 확장기-정치 팬클럽 ‘노사모’의 등장

1998년 서울 종로에서 당선된 노무현 전 대통령을 보좌하던 안희정 지사와 이광재 전 지사가 친노의 핵심으로 부상하기 시작한다. 이후 노 전 대통령은 2000년 종로를 마다하고 부산 북·강서을에 출마했다 낙선, ‘바보 노무현’이라는 별명을 얻는다. 이를 계기로 최초의 인터넷 정치팬클럽인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노사모)이 조직된다.

●친노 결집기-노무현 대선후보 시절

노 전 대통령이 대선후보가 되면서 친노들의 결집이 본격화한다. 2002년 3월 광주경선 1위로 ‘노풍’을 일으킨 노 전 대통령은 그해 6월 최종 대선후보가 된다. 하지만 같은 해 10월 지지율이 15%로 주저앉으면서 반노·비노들을 중심으로 ‘후보단일화추진협의회’(후단협)가 결성돼 민주당을 내홍의 극한으로 몰고 간다. 하지만 후단협에 반발한 의원들과 친노 세력들이 노무현 대선캠프로 몰려들게 된다.

●친노 중흥기·쇠퇴기-노무현 정부 시절

노무현 정부에서 안희정 지사는 불법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배제된 반면, 이광재 전 지사는 승승장구하며 주변인물들을 청와대 요직에 포진시킨다. 열린우리당이 창당되면서 친노는 중흥기를 맞는다. 특히 노 전 대통령의 탄핵 이후 문 대표는 17대 국회에 입성한 이광재 전 지사를 대신해 청와대 중심으로 부상했고, ‘부산친노’들은 문 대표를 중심으로 청와대에 입성한다. 하지만 2006년 대선이 다가오면서 친노는 분열한다. 2007년 대통합민주신당 대선후보로 출마한 정 전 의원의 대선 패배 이후 친노는 사실상 해체된다.

●친노 부활기-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몰락의 길을 걷던 친노는 2009년 노 전 대통령이 측근 비리로 검찰 조사 도중 서거하면서 다시 주목받는다. 19대 총선을 앞두고 친노 세력은 다시 결집한다. 이후 문 대표와 청와대에서 동고동락했던 양정철 전 홍보기획비서관·이호철 전 민정수석·전해철(전 청와대 민정수석) 의원 등 ‘3철’을 중심으로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가 진행되면서 문 대표가 친노의 중심이 된다. 2012년 대선 패배 이후 친노들은 구심점이 없어졌지만, 문 대표의 대선후보 당시 비서실장이었던 민주평화국민연대(민평련)계 노영민 의원이 문 대표의 최측근으로 부상하는 등 친노 개념은 사실상의 ‘친문’(친문재인)으로 변화되는 과도기를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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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2015-05-18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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