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한·배고픔에 韓人 1000여명 목숨 잃어”

“혹한·배고픔에 韓人 1000여명 목숨 잃어”

입력 2005-04-27 00:00
수정 2005-04-27 0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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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토(凍土)의 땅에서 떠도는 동료들의 원한을 이제야 풀려나….”

일본 중의원 외무위원회에서 시베리아 억류자 문제를 전향적으로 검토하겠다는 마치무라 외무상의 대답을 전해들은 ‘한국 시베리아 삭풍회(朔風會)’ 이병주(81·인천 계양구 오류동) 회장의 첫마디였다. 삭풍회는 1945년 8월 일본 관동군 소속으로 강제징용됐다가 종전과 동시에 구소련군에 의해 전쟁포로로 억류된 뒤 시베리아 지역에서 강제노역에 동원된 피해자들의 모임이다.

이병주 회장
이병주 회장 이병주 회장
대부분 80대 고령자들로 1990년 창립 당시 60여명에 이르던 회원이 지금은 30여명에 불과하다.

이 회장은 26일 “1944년 일본은 태평양전쟁에서 패색이 짙어지자 부족한 병력을 보충한다는 명분으로 조선인 청년을 강제징집해 최전방에 배치했지.”라며 당시를 회고했다.

관동군에 편입된 사람들은 소련군 공격수로 배치된 뒤 1945년 8월9일 소련군의 침공으로 일본이 항복선언을 하면서 60여만명이 무장해제당했다. 이 회장은 “소련 점령군의 전쟁포로가 돼서 극동·중부 시베리아와 중앙아시아 등 시베리아 전역에 걸쳐 분산수용돼 노역에 시달려야 했다.”고 말했다. 조선인은 약 3500명에 이른다는 것이 이 회장의 설명이다.

이 회장은 중부시베리아의 ‘크라스노야르스크’의 탈곡기 공장에 배당됐다.‘노르마(책임할당제)’ 100% 달성이라는 미명하에 벽돌·시멘트공장과 벌목작업장 등에서 중노동에 시달렸던 피해자들은 영하 50도나 되는 추위와 극심한 배고픔을 이기지 못한 채 억류 첫해인 1945년 6만여명이나 이국땅에서 죽음을 맞았다. 이 회장은 “여름에 끌려온 바람에 반팔 옷으로 그 매서운 추위를 당해야 했고 죽과 귀리빵으로 연명했으니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지.”라며 말끝을 흐렸다.

1948년말, 전후 복구공사를 끝낸 소련군의 송환조치가 시작돼 2300여명의 조선인들도 악몽 같던 소련땅을 벗어났다. 그러나 정착금과 노역의 대가는 한푼도 없었다고 한다.1990년 소련과 국교를 맺을 때까지 시베리아 억류자들은 “우리는 억울한 피해자”라는 말도 떳떳하게 할 수 없었다고 이 회장은 하소연했다.

현재 일본 정부는 시베리아 억류 피해자 보상을 위한 법안을 심의하고 있고 매년 시베리아 현지 묘지 참배비와 위령비 건립을 위해 지원하고 있지만 똑같은 아픔을 겪었던 한국인 피해자들에게는 국적이 다르다는 이유로 번번이 거절해 왔다. 지난해 6월에는 도쿄지방재판소에 일본 정부를 상대로 사죄와 보상을 촉구하는 소송을 벌여놓고 있다.

이 회장은 “조국에서도, 가해국에서도 버림받았던 우리의 청춘을 위해서라도 죽은 동료들의 묘비라도 세워줬으면 좋겠다.”며 간절한 바람을 전했다. 이 회장은 다음달 일본 도쿄에서 열리는 ‘일본의 과거청산 촉구를 위한 국제협의회’에 참가해 마치무라 외상을 만나 과거청산의 진정한 의지를 보여달라고 촉구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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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2005-04-27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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