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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도 갓갓도, n번방에서 감방으로… 법정최고형까지

박사도 갓갓도, n번방에서 감방으로… 법정최고형까지

손지민 기자
입력 2020-06-21 20:56
업데이트 2020-06-22 0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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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를 부탁해] ‘박사’ 조주빈 검거 100일… 텔레그램 속 그놈들은 지금

23일 텔레그램 내에서 일명 ‘박사방’을 만들어 성착취 영상을 제작·판매·유포한 조주빈(25)이 검거된 지 100일이 된다. 그저 소수의 일로 치부되던 디지털 성범죄는 지난 3월 16일 조씨가 경찰에 체포되면서 본격적으로 공론화됐다. 보통 사람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피해가 심각했기 때문이다. 경찰은 수사력을 집중하면서 공범들을 추적했고, 관련 성범죄자들을 소탕했다. 특히 지난달 11일 경찰이 ‘n번방’의 시초격이자 핵심 인물 가운데 마지막까지 잡히지 않았던 닉네임 ‘갓갓’ 문형욱(24)을 검거해 구속영장을 신청하면서 디지털 성범죄 사건은 마치 끝난 것 같았다. 그러나 서울신문이 21일 확인한 결과 디지털 공간에서 이뤄지는 성착취 범죄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 성착취 사건들을 막기 위해 이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이 어떤 최후를 맞는지 끝까지 지켜보며 경각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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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번방 주범들 ‘박사’ 조주빈(왼쪽 위), ‘부따’ 강훈(왼쪽 아래), ‘갓갓’ 문형욱(오른쪽)
n번방 주범들
‘박사’ 조주빈(왼쪽 위), ‘부따’ 강훈(왼쪽 아래), ‘갓갓’ 문형욱(오른쪽)
●“판사님, 죄송해요”…무늬만 반성

‘박사’ 조씨를 비롯한 텔레그램 성범죄 핵심 인물들은 재판부에 수차례 반성문을 제출했다. 어떻게든 형량을 줄여 보기 위해서다. 조씨는 지난달 19일부터 이달 19일까지 한 달 동안 매일 반성문을 제출했다. 지난달 1일부터 제출한 반성문은 21일 기준 총 29건이다. 조씨가 검찰에 송치되기 위해 종로경찰서를 나서면서 피해자에 대한 사죄에는 침묵한 것과 대비된다. 지난 11일 열린 조씨의 첫 공판기일에서 조씨 측 변호인은 강제추행, 강요 및 강요미수 등 일부 혐의에 대해 부인하기도 했다. 조씨의 다음 공판기일은 오는 25일이다.

공범들도 마찬가지다. 조씨의 ‘오프남’으로 알려진 공범 한모(26)씨는 56일간 반성문 64건을 제출했다. 오프남이란 제작자의 제안·지시를 받고 실제 성폭행에 가담한 사람을 의미한다. 거제시청 공무원이었던 공범 천모(29)씨는 21일 기준 반성문을 11차례 제출했다. 천씨는 지난 4월 10일 공무원 징계 중 가장 수위가 높은 파면 처분을 받았다. 조씨와 함께 재판을 받는 공범 ‘태평양’ 이모(16)군과 공익요원 강모(24)씨는 각각 5건, 3건의 반성문을 제출했다.

시민들은 이들을 엄벌해 달라는 탄원서를 적극적으로 제출하고 있다. 텔레그램 성착취 신고 프로젝트를 추진한 ‘프로젝트 리셋’(Project ReSET)과 ‘n번방 성착취 강력처벌 촉구시위’(eNd)는 온라인 법률 플랫폼 ‘화난사람들’에서 박사 조씨 등 15명에 대해 엄벌을 촉구하는 탄원서를 받고 있다. 21일 기준 조씨에 대한 탄원서를 낸 사람은 3만 9553명이다. 조씨의 공범 ‘부따’ 강훈(19)에 대해서는 1만 5608명, 조씨의 공범이자 군인 ‘이기야’ 이원호(19)에 대해서는 1만 3636명, 문씨에 대해서는 1만 1629명이 각각 엄벌을 처해 달라며 탄원서를 작성했다.

조씨의 공범들은 잇따라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신청하기도 했다. 강씨는 지난달 27일 신상공개 처분이 위헌이라며 위헌법률심판제청 신청을 냈다. 천씨는 외국에는 영상 촬영에 합의한 경우 처벌을 배제하는 규정이 있는데 우리나라는 아동·청소년 이용 음란물을 제작한 모든 경우를 처벌해 위헌이라고 주장하며 지난달 20일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신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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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량 과하다” 항소… 죄책감 못 느껴

n번방 사건 주범들은 하나둘씩 선고를 받고 있다. ‘제2n번방’을 운영하면서 미성년자 등을 협박해 성착취물을 제작·배포한 혐의를 받은 ‘로리대장태범’ 배모(19)군과 ‘슬픈고양이’ 류모(20)씨 등이 그 시작이다. n번방 사건이 공론화된 이후 실질적으로 내려진 첫 판결이라 볼 수 있다.

배군과 류씨, 또 다른 공범 ‘서머스비’ 김모(20)씨는 지난 5일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범행 전 과정을 주도한 배군에게 소년법상 유기 징역형의 법정 최고형인 징역 장기 10년·단기 5년을, 류씨와 김씨에게는 각각 징역 7년과 8년을 선고했다. 과거와 달리 법원은 이들에 대해 중형을 선고했다. 조직적이고 치밀하게 범행을 저지르면서 피해자들의 고통을 즐긴 이들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그러나 이들은 판결에 불복하며 항소장을 제출했다. 배군과 류씨는 양형 부당을 이유로, 김씨는 미성년자 성착취 영상 제작에는 가담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항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n번방 이후 내려진 실질적 첫 판결은 2라운드를 맞게 됐다.

한편 n번방 사건이 공론화되기 이전 아동·청소년 음란물을 유포한 혐의로 이미 재판을 받고 있었던 주범들은 조용히 사건을 끝내기 어려워졌다. 문씨로부터 n번방을 물려받은 것으로 알려진 ‘켈리’ 신모(32)씨는 지난해 11월 1심에서 선고받은 징역 1년형이 부당하다며 항소했지만 n번방 사건이 불거지자 항소를 취소했다. 신씨 사건은 검찰이 항소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대로 1년형이 확정된 채 끝나 ‘꼼수 항소 취하’라는 비판을 받았다.

보강 수사를 마친 검찰이 이달 4일 신씨를 추가 기소하면서 신씨는 다시 법정에 서게 됐다. n번방으로 이어지는 링크를 공유하는 ‘고담방’ 운영자 ‘와치맨’ 전모(38)씨에게 징역 3년 6개월을 구형했던 검찰은 n번방 공론화 이후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비난을 받자 부랴부랴 변론 재개를 신청해 재판이 이어지고 있다.

●n번방 사건, 아직 끝나지 않았다

n번방 사건 연루자들에 대한 경찰 수사는 계속되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달 27일 기준 총 594건에 연루된 664명이 검거되고 86명은 구속됐다. 경찰은 이 가운데 16건 258명을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고, 나머지에 대한 수사는 이어 가는 중이다. 경찰 관계자는 “연말까지 디지털 성범죄 특별수사본부를 운영하면서 온라인에서 이뤄지는 성착취 범죄를 계속 수사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검거된 피의자의 70% 이상은 10대·20대였다. 피의자 664명 가운데 10대는 221명(33%), 20대는 274명(41%)으로 드러났다. 30대 117명, 40대 38명, 50대 이상이 14명 등이다. 피해자도 마찬가지로 10대·20대가 많았다. 신분이 특정된 피해자 482명 중 10대가 301명(62%), 20대가 124명(26%)이었고 차례대로 30대 39명, 40대 12명, 50대 이상 6명 등으로 나타났다.

박사, 갓갓만큼 유명세를 떨쳤지만, 아직 꼬리가 잡히지 않은 운영자들도 주목해야 한다. ‘완장방’을 운영한 닉네임 ‘체스터’, ‘똥집튀김네방’ 운영자 닉네임 ‘똥집튀김’, ‘한국인잡담방’ 운영자 닉네임 ‘강호동’이 대표적이다. 아직 경찰이 검거한 인원 중 체스터, 똥집튀김 등이 포함됐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특히 체스터가 운영했던 완장방은 조씨의 박사방이 파생됐던 텔레그램 비밀대화방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검거 전 조씨와 문씨 등이 “나는 잡히지 않을 것”이라며 호언장담했듯이 당당하게 일상을 살아가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텔레그램 비밀대화방뿐 아니라 트위터, 페이스북 등 모두에게 공개된 SNS 계정에서도 성착취 범죄는 여전히 활개치고 있다. 트위터 일부 계정에는 “노예녀 분양합니다”라며 성착취를 종용하거나 스스로를 성착취하는 여성의 영상이 버젓이 올라와 있기도 했다. 이날에도 해당 계정은 지난달 31일부터 매일 2개씩 성착취 영상을 올리고 있지만 3주가 지나도록 계정이 정지되지 않았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이번 사건처럼 공론화가 되면 주범들이 처벌받을 수 있지만 문제는 여전히 비밀대화방 등 성착취 범죄를 발견하기 쉽지 않다는 점”이라면서 “조주빈은 검거됐지만 이용자 1만 5000명에서 2만명가량은 플랫폼을 옮겨다니면서 성착취물을 사고팔고 있어 현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했다. 이어 “디지털 공간에서 이뤄지는 성착취 범죄를 근절하기 위해 잠입수사 등을 허용하고,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전달해 사회적인 경각심을 유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손지민 기자 sjm@seoul.co.kr
2020-06-22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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