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은 인간이 도구를 만들기 위해 가장 먼저 사용한 재료 가운데 하나다.
녹슬거나 썩지 않고 주변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돌은 인류 문명의 동반자로 함께 출발했다.
이 땅에는 유난히 돌이 많다. 눈만 뜨면 돌과 바위가 보인다. 우리 민족은 단단하고 거친 돌을 떡 주무르듯 매만져 부드럽고 담백한 조형으로 빚어낼 줄 알았다. 전국의 많은 석탑·부도·석불 등의 섬세한 조각을 보면 선조들의 빼어난 돌 다듬는 솜씨를 알 수 있다. 특히 단단한 화강암으로 불상을 쪼고 탑을 세운 나라는 우리나라뿐이다. 한국을 석조미술의 나라로 부르는 것도 뛰어난 돌 문화 때문이다.
한국의 마애불은 산속 깊이 숨은 은자의 모습으로,때로는 하늘 가까이에서 삶터를 굽어보는 산신령 같은 하늘미륵으로,때로는 땅으로 내려앉아 사람과 눈높이를 맞추는 지킴이의 역할을 겸한 존재로 각자의 성격에 맞게 조성돼 왔다.(경주 남산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
석탑은 오랜 세월 인간의 희망과 슬픔,아픔과 고통을 함께해 왔다.불사리가 있는 부처의 무덤인 탑을 향한 인간의 정성과 간절함은 그 무엇과도 비견할 수 없었다.(국립중앙박물관 경천사지10층석탑)
근정전의 기단에 조각된 해태와 방위신상 등 석조 조각물들은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조각미술품들이다.(경복궁 근정전)
신라는 물론 우리나라 천문학사에 가장 위대한 유물인 ‘첨성대’는 선덕여왕 16년인 647년 백제의 석공 아비지에 의해 세워졌다.첨성대는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로 알려져 있다.(경주)
일반적으로 능묘조각이라고 하면 능묘를 옹위하기 위해 봉분 앞에 배치하는 문무석인(文武石人)과 석수(石獸),석등 그리고 호석(護石)에 장식된 부조상 등을 말한다.(국립민속박물관 소장 문무석인)
오석(烏石)으로 만든 금은입사향완(金銀入絲香香?).배방남 작
부도(浮屠)는 고승(高僧)의 사리(舍利)나 유골을 안치하는 묘탑(妙塔)으로 대부분 탑비에 의해서 그 건립연대를 알 수 있으므로 석조미술의 흐름 등 미술사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된다.(삼성동 봉은사)
옛 조상들은 돌에 강인한 생명이 깃들어 있다고 믿었다. 굳세고 신령스럽다고 여겼기 때문에 돌로 기념물을 만들어 복을 빌었다.
돌을 생각하는 정서가 무한한 예술로 승화된 대표적인 예가 석불(石佛)이다. 석불은 어찌 보면 하찮은 돌이지만 바위라는 초월적 존재에 신상(神像)을 조각한 것이다. 숭고한 부처의 모습이면서도 온화한 인간의 미소를 띠어 평안함을 준다. 불변의 진리를 담은 석불조각은 우리의 꿈과 희망이었다.
돌은 자연의 일부분이다. 소박한 우리의 ‘돌문화’에서 조상들의 자연과 인간에 대한 이해뿐 아니라, 미적 감성을 동시에 발견할 수 있다.
선조들은 충족되지 않은 삶의 부족한 부분을 돌과 바위를 통해 얻고자 했다. 그것은 자연과의 내밀한 대화다. 강인함과 영원성의 상징물인 돌의 마음을 읽으며 인간의 보편적 희망을 완벽한 조형미로 승화시키고자 했다.
생활속 소도구로, 거대한 정신세계를 구현하는 종교와 예술의 소재로 돌은 우리 민족 문화를 담아온 그릇인 것이다.
글 도준석기자 pado@seoul.co.kr
■ “돌 안에 숨은 부처 모셔오죠”
외길46년석공 배방남씨
한 점 한 점 정을 맞는 커다란 돌덩이에 부처님의 모습이 서서히 드러난다.17살 때 석공이던 할아버지에게 돌담 쌓기부터 배워 46년간 한우물을 파온 배방남(65)씨. 그는 바위 속에 부처님이 살아 있다고 믿는다.
“돌부처는 정으로 쪼아 모습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숨어 계신 돌 속의 부처님을 모셔오는 겁니다.”
배씨에게는 돌속에 들어 있는 따뜻한 숨결이 느껴진다.“돌에 열을 가하면 따듯해지듯 석수장이의 손에 따라 돌도 숨을 쉬지요.” 그가 정을 쪼을 때마다 돌도 박자에 맞춰 대답을 하는 것 같았다.
우리나라 화강암은 매우 단단해 섬세한 작업이 어렵다.“기계로 대량 생산된 석물은 오래 버티지 못해요.”
정으로 쪼아서 섬세함을 살리는 자기만의 고도로 숙련된 기술이 있어야 석공으로서 끝까지 살아남는단다.
평생 돌에 매달려온 배씨지만 작품을 대하는 자세는 한결같이 겸손하다. 그는 또 삼국시대의 석불과 석탑이 여전히 아름다운 것처럼, 영겁의 세월을 버틸 수 있는 작품을 만든다는 생각으로 작업할 뿐이라고 말했다.
사진 · 글 도준석기자 pado@seoul.co.kr
녹슬거나 썩지 않고 주변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돌은 인류 문명의 동반자로 함께 출발했다.
이 땅에는 유난히 돌이 많다. 눈만 뜨면 돌과 바위가 보인다. 우리 민족은 단단하고 거친 돌을 떡 주무르듯 매만져 부드럽고 담백한 조형으로 빚어낼 줄 알았다. 전국의 많은 석탑·부도·석불 등의 섬세한 조각을 보면 선조들의 빼어난 돌 다듬는 솜씨를 알 수 있다. 특히 단단한 화강암으로 불상을 쪼고 탑을 세운 나라는 우리나라뿐이다. 한국을 석조미술의 나라로 부르는 것도 뛰어난 돌 문화 때문이다.
한국의 마애불은 산속 깊이 숨은 은자의 모습으로,때로는 하늘 가까이에서 삶터를 굽어보는 산신령 같은 하늘미륵으로,때로는 땅으로 내려앉아 사람과 눈높이를 맞추는 지킴이의 역할을 겸한 존재로 각자의 성격에 맞게 조성돼 왔다.(경주 남산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
석탑은 오랜 세월 인간의 희망과 슬픔,아픔과 고통을 함께해 왔다.불사리가 있는 부처의 무덤인 탑을 향한 인간의 정성과 간절함은 그 무엇과도 비견할 수 없었다.(국립중앙박물관 경천사지10층석탑)
근정전의 기단에 조각된 해태와 방위신상 등 석조 조각물들은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조각미술품들이다.(경복궁 근정전)
신라는 물론 우리나라 천문학사에 가장 위대한 유물인 ‘첨성대’는 선덕여왕 16년인 647년 백제의 석공 아비지에 의해 세워졌다.첨성대는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로 알려져 있다.(경주)
일반적으로 능묘조각이라고 하면 능묘를 옹위하기 위해 봉분 앞에 배치하는 문무석인(文武石人)과 석수(石獸),석등 그리고 호석(護石)에 장식된 부조상 등을 말한다.(국립민속박물관 소장 문무석인)
오석(烏石)으로 만든 금은입사향완(金銀入絲香香?).배방남 작
부도(浮屠)는 고승(高僧)의 사리(舍利)나 유골을 안치하는 묘탑(妙塔)으로 대부분 탑비에 의해서 그 건립연대를 알 수 있으므로 석조미술의 흐름 등 미술사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된다.(삼성동 봉은사)
옛 조상들은 돌에 강인한 생명이 깃들어 있다고 믿었다. 굳세고 신령스럽다고 여겼기 때문에 돌로 기념물을 만들어 복을 빌었다.
돌을 생각하는 정서가 무한한 예술로 승화된 대표적인 예가 석불(石佛)이다. 석불은 어찌 보면 하찮은 돌이지만 바위라는 초월적 존재에 신상(神像)을 조각한 것이다. 숭고한 부처의 모습이면서도 온화한 인간의 미소를 띠어 평안함을 준다. 불변의 진리를 담은 석불조각은 우리의 꿈과 희망이었다.
돌은 자연의 일부분이다. 소박한 우리의 ‘돌문화’에서 조상들의 자연과 인간에 대한 이해뿐 아니라, 미적 감성을 동시에 발견할 수 있다.
선조들은 충족되지 않은 삶의 부족한 부분을 돌과 바위를 통해 얻고자 했다. 그것은 자연과의 내밀한 대화다. 강인함과 영원성의 상징물인 돌의 마음을 읽으며 인간의 보편적 희망을 완벽한 조형미로 승화시키고자 했다.
생활속 소도구로, 거대한 정신세계를 구현하는 종교와 예술의 소재로 돌은 우리 민족 문화를 담아온 그릇인 것이다.
글 도준석기자 pado@seoul.co.kr
■ “돌 안에 숨은 부처 모셔오죠”
외길46년석공 배방남씨
한 점 한 점 정을 맞는 커다란 돌덩이에 부처님의 모습이 서서히 드러난다.17살 때 석공이던 할아버지에게 돌담 쌓기부터 배워 46년간 한우물을 파온 배방남(65)씨. 그는 바위 속에 부처님이 살아 있다고 믿는다.
“돌부처는 정으로 쪼아 모습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숨어 계신 돌 속의 부처님을 모셔오는 겁니다.”
배씨에게는 돌속에 들어 있는 따뜻한 숨결이 느껴진다.“돌에 열을 가하면 따듯해지듯 석수장이의 손에 따라 돌도 숨을 쉬지요.” 그가 정을 쪼을 때마다 돌도 박자에 맞춰 대답을 하는 것 같았다.
우리나라 화강암은 매우 단단해 섬세한 작업이 어렵다.“기계로 대량 생산된 석물은 오래 버티지 못해요.”
정으로 쪼아서 섬세함을 살리는 자기만의 고도로 숙련된 기술이 있어야 석공으로서 끝까지 살아남는단다.
평생 돌에 매달려온 배씨지만 작품을 대하는 자세는 한결같이 겸손하다. 그는 또 삼국시대의 석불과 석탑이 여전히 아름다운 것처럼, 영겁의 세월을 버틸 수 있는 작품을 만든다는 생각으로 작업할 뿐이라고 말했다.
사진 · 글 도준석기자 pado@seoul.co.kr
2006-02-21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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