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현희 기자의 술 이야기] 가을 머금은 오렌지와인
비노스앤 제공
오렌지와인은 화이트 품종의 포도로 만드는 100% 포도와인이지만, 껍질을 벗기지 않아 화이트와인 색보다 진한 오렌지 빛깔을 낸다. 사진은 오스트리아 스트로마이어의 오렌지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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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을 파는 레스토랑이나 바에서 메뉴판을 붙들고 위와 같은 고민을 해 보지 않은 성인은 거의 없을 겁니다. 물론 이 고민은 “짜장면이냐, 짬뽕이냐”같이 심오하진 않습니다. 함께하는 음식이 고기류라면 레드와인을, 생선이라면 화이트와인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는 정답을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까닭입니다. 하지만 때로는 산뜻한 화이트와인의 산미와 무게감 있는 레드와인의 탄닌을 함께 즐기고 싶은 날도 있습니다. 그럴 땐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두 와인을 모두 주문해 마셔 버리는 방법밖에는 없는 걸까요?
이럴 땐 ‘오렌지와인’이라는 멋진 선택지가 있답니다. 와인 이름에 ‘오렌지’가 붙어 오렌지즙으로 만든 과실주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텐데요. 오렌지와인은 ‘100% 포도와인’입니다. 와인의 색깔이 일반적인 화이트, 레드와인과 확연히 다른 오렌지 빛깔을 띠고, 오렌지 껍질 향이 난다고 해서 오렌지와인이라고 불리죠.
레드와 화이트 사이에서 갈등할 때 오렌지와인을 마셔 보라 추천하는 건 오렌지와인의 맛이 기존 화이트와 레드의 장점을 두루 갖추었기 때문입니다. 이 독특한 개성은 오렌지와인의 양조 방식에 기인합니다. 일반적으로 화이트와인은 청포도 껍질을 벗긴 포도알을 즙을 내 발효시켜 와인을 만듭니다. 레드와인은 붉은 빛깔을 띠는 포도를 껍질째 넣어 발효한 술입니다.
●화이트 품종 포도, 레드 방식 양조… 주황색·오렌지 향기
이와 달리 오렌지와인은 화이트 품종의 포도를 껍질째 넣어 발효시킨 와인입니다. 이를 전문 용어로 스킨 콘택트(skin contact)라고 합니다. 정리하면 오렌지와인은 화이트 와인을 만드는 포도 품종으로 레드 와인을 만들 듯 양조합니다. 덕분에 화이트와인 특유의 산미와 음용성을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으면서도 껍질에서 오는 탄닌 등으로 레드와인이 가진 풍미와 무게감이 더해져 복합적인 맛을 아우릅니다. 어울리는 음식도 한 종류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고기와 생선, 가벼운 샐러드까지 두루 잘 어울려 음식과의 궁합을 맞출 때도 매우 편리하죠. 물론 레드 품종의 포도 껍질을 벗겨 주스를 만들어 이를 발효시킨 로제 와인도 있지만 로제는 껍질에서 오는 풍미는 없어 전체적인 캐릭터가 화이트와인에 더 가까운 편입니다.
과거 일부 유럽 지역에서만 소규모로 생산되었던 오렌지와인은 최근 글로벌 식음료업계에 부는 ‘내추럴와인’ 트렌드를 타고 마니아층이 점점 넓어지고 있는 추세입니다. 사실 오렌지와인은 아주 오래전부터 조지아, 슬로베니아 등에서 행해져 온 전통 와인 양조 방식 가운데 하나랍니다.
● 산뜻함· 중후함 한데 섞여… 여러 음식에 어울려
하지만 197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와인 산업이 글로벌화되고 커지면서 업자들은 일정 수준의 똑같은 맛을 내는 대량 생산에 초점을 맞추게 됐습니다.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유럽에선 전통 방식으로 돌아가 와인을 만들자는 ‘자연주의 와인’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그 결과 오늘날 포도 재배부터 와인을 만드는 양조 과정까지 화학적 첨가물를 넣지 않는 내추럴와인이 인기를 얻었죠. 오렌지와인도 이와 같은 흐름에서 와인 마니아들 사이에서 인지도를 넓혔고요. 내추럴 방식으로 생산되는 오렌지와인이 많은 것도 이 때문입니다. 실제로 국내외에선 내추럴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오렌지 와인을 즐기고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매력적인 오렌지 와인 앞에서 “내추럴이냐, 아니냐”를 따지는 건 큰 의미가 없어 보입니다. 높고 푸른 하늘 아래 선선한 바람이 부는 주말, “레드냐, 화이트냐” 고민이 된다면 오렌지와인을 선택해 보세요. 새로운 선택지의 등장에 이번 가을은 좀더 풍요로울 것입니다.
macduck@seoul.co.kr
2019-10-04 3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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