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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고집하는 자리, 발 아래 토지까지 사랑해[강동삼의 벅차오름]

네가 고집하는 자리, 발 아래 토지까지 사랑해[강동삼의 벅차오름]

강동삼 기자
강동삼 기자
입력 2023-05-26 10:41
업데이트 2023-06-25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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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평리포구에서 바라본 군산오름. 제주 강동삼 기자
대평리포구에서 바라본 군산오름. 제주 강동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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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천년동안 마을을 지키는 사자산 ‘군산오름’
<6>천년동안 마을을 지키는 사자산 ‘군산오름’
내가 널 사랑한다면/결코 기어오르는 능소화나무처럼/너의 높은 가지를 타고 자신을 뽐내지는 않으련다/내가 널 사랑한다면/결코 짝사랑에 빠진 새를 흉내내/너의 푸르름을 위해 재차 단조한 가락을 노래하지는 않으련다(중략)

사랑은/단지 거룩하게 높은 네 몸집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네가 고집하는 자리, 발 아래 토지도 사랑하는 것이다

# 사랑은 높은 네 몸집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네가 고집하는 자리, 발 아래 토지까지 사랑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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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으멍 쉬멍 놀멍... 군산오름 정상에 설치된 스탬프 모양의 제주올레  파란벤치가 정상에 오르느라 힘들었을 탐방객들에게 쉼표를 준다. 제주 강동삼 기자
걸으멍 쉬멍 놀멍... 군산오름 정상에 설치된 스탬프 모양의 제주올레 파란벤치가 정상에 오르느라 힘들었을 탐방객들에게 쉼표를 준다. 제주 강동삼 기자
2년간 중학교에 다닌 것이 정규교육의 전부였던 중국 여류시인 수팅의 ‘상수리나무에게’란 시(詩)다. 마지막 싯구처럼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느꼈다. 네가 고집하는 자리, 그 발 아래 토지까지 너를 사랑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고향의 병풍같은 내 친구 군산오름을 만나러 가는 길도 참 오래 걸렸다. 돌고 돌고 돌아 지천명도 한참. 너에게 오래도록 가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끝까지 가고 싶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오래된 상처, 아물었을 거라 생각한 상처가 다시 덧날 지도 몰라 두려웠기 때문이다. 젊은 날 고향을 등지는 이유는 두가지다. 잊기 위해, 살기 위해.

하지만 언제나, 너에게 전송하고 싶었다. 감귤꽃 향기의 힘을 빌어서라도 사랑을 전송하고 싶었다. 지금 용기내 너에게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데면데면했던 수십년이 미안했다. 어릴 적 심심하면 올라갔던 능선, 무서워하면서도, 힘에 부치면서도, 오르락내리락하지 않았던가. 가끔씩 너는 꿈결에서도 나타나 현기증 나는 아찔한 모습으로 나를 괴롭혔지. 그런데 지금은 체육시설도 생기고 오르막에는 나무 계단이 생겨나 있더라. 지칠 때 쯤에는 나무벤치가 다리를 쉬게 하더라. 팔각정에서 바라본 서귀포 바다, 범섬의 아름다운 풍광도 명품선물처럼 다시 안겨주더라.

그리고 나이 들어 다시 고향을 찾는 이유도 두가지다. 살기 위해 그리고 기억하기 위해.

#사자가 오는 마을 예래동과 대평리를 품은 사자봉이 호령하는 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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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오름을 오르다가 만나는 사자암. 사자가 오는 마을이란 예래동은 사자 예(猊) 자를 쓴다. 제주 강동삼 기자
군산오름을 오르다가 만나는 사자암. 사자가 오는 마을이란 예래동은 사자 예(猊) 자를 쓴다. 제주 강동삼 기자
친구야, 네 생김새가 꼭 군막(軍幕)을 친 것 같다하여 군산, 산이 솟아날 때 굴메(그림자)같이 보였다 하여 굴메오름이라고 했어. 혹은 나중에 다시 솟아난 산이라 해서 군메오름이라고도 하지.

그런데 네가 품고 있는 마을 예래동(猊來洞)은 좀 어려운 한자야. 사람들이 예절 예(禮)로 으레껏 생각하지. 그러나 사자 예(猊) 자여서 ‘사자가 오는 마을’이라 불렀지. 상예동 쪽에서 오를 때 중간 오르막 쯤에서 진짜 사자같은 바위가 영험하게 있어 놀라지. 옆모습이 사자같은 얼굴이어서 정말 그럴싸해. 지금은 나무가 울창해 범섬이 제대로 바라다 보이지 않아. 앞에 소나무랑 나무들을 좀 정리해주면 좋을 듯 싶기도 해.

전설이겠지만, 한 고승이 지나다가 해뜨는 동녘바다에 우뚝 솟은 범섬이 범 형상이어서 마을의 재앙을 가져오기 때문에 예래 마을 서쪽에 있는 군산을 사자로 칭하여 사자가 온다는 뜻에서 예래라고 지어줘 평온을 되찾았다지.

군산오름은 고려 목종 7년인 1007년에 화산이 폭발해 상서로운 산이 솟아났다고 하여 서산이라고 부르기도 했다더라. 오래전부터 명당으로 알려져 네 주변에는 많은 묘지들이 시원한 풍광과 함께 하고 있어. 그만큼 명당이라는 것을 방증하고 있는 셈이야.

#명당이 있어 유독 묘가 정상 언저리까지… 원나라 왕자들이 이주해 살던 왕자골도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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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오름 정상에서 동쪽바위로 가는 길. 제주 강동삼 기자
군산오름 정상에서 동쪽바위로 가는 길. 제주 강동삼 기자
풍수지리설에 따르면 군산 봉우리에는 쌍선망월형(雙仙望月形)이라 하는 명당 금장지(禁葬地)가 있는데 이곳에 묘를 쓰면 가뭄과 흉년이 든다고 해 무덤을 쓰지 못하게 했어. 과거 이 일대에 가뭄이 심해 농토에서 곡식들이 말라 죽어 마을 사람들이 군산 금지에 투장을 했다고 생각해 군산에 올라가 투장한 봉분을 찾으려 했으나, 찾지 못하고 내려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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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오름 정상에선 산방산을 비롯, 송악산, 형제섬, 비양도까지 한눈에 펼쳐진다. 제주 강동삼 기자
군산오름 정상에선 산방산을 비롯, 송악산, 형제섬, 비양도까지 한눈에 펼쳐진다. 제주 강동삼 기자
그러나 그날 저녁 한사람 꿈에 군산 금지에 무엇이 들어 있다는 꿈을 꾸고 마을 사람들과 다시 올라가 찾았더니 산봉우리에 잔디가 네모지게 갈라져 있었다는 거야. 사람의 눈에 띄지 않도록 봉분을 하지 않고 평장(平葬)을 해버린거야. 이를 이장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비바람이 크게 몰아쳐 말랐던 물통마다 물이 넘치고 가뭄이 끝났다는거야. 이 명당에 암장하면 가뭄이 든다는 것은 이곳이 풍수지리적으로 명당이지만 묘로는 적합하지 않다는 뜻이라는 거야.

더 놀라운 건 원나라 왕자들이 제주로 귀양 와 이곳에 무리지어 살았다는 설도 있어. 고려말 명에 정복된 원의 제후 운남 양왕의 태자와 왕손들이 제주에 이주했고, 이들은 이 왕자골에서 생을 마쳤다는거야. 아마도 상예동 왕자암 근처 야트막한 동산 위로 추정하고 있어. 실제 이곳에는 왕자무덤이라고 불리는 봉분 봉토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

정상에서 쉬다보니 대평리 마을과 예래동 마을이 한눈에 내다 보이고 형제섬, 송악산, 산방산까지 보여 발길이 안 떨어지더라. 풍광을 감상하기도 전에 요새이긴 요새라는 생각부터 들더라.

# 태평양이 펼쳐지는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요새… 진지동굴만 9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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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 있는 9번째 진지동굴의 모습. 제주 강동삼 기자
정상에 있는 9번째 진지동굴의 모습. 제주 강동삼 기자
실제로 가슴아픈 역사를 기억하는 진지동굴이 여러 군데에 있어. 요새였다는 증거지. 태평양전쟁이 막바지에 이른 1945년 제주도에 들어온 일본군에 의해 우리나라 민간인을 강제동원해 만들었지. 일본군 정예 병력 7만여명을 제주도에 주둔시키면서 해안기지와 비행장, 작전 수행을 위한 도로, 각종 군사시설을 하게 되는데 이때 만들어진 것이 진지동굴이지. 미국의 폭격기에 대비해 일본군들은 이 진지동굴들을 군수물자와 보급품 등을 숨기고 일본군의 대피장소로 사용하기도 했어. 무려 이곳엔 9개나 있어.

어릴 때 몰랐던 너의 아픔까지 이젠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아. 아무튼, 내곁엔 아무도 없는 고향이지만, 친구가 있어 다행이야. 이제라도 친구를 만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구나. 용서해줘. 이제야 찾아와서. 그리고 받아줘서 고마워.

아, 참. 애기를 업은 듯한 모양의 바위 ‘애기업개돌’을 보지 못한 건 조금 아쉽지만, 다음에 거기서 만나자.

#잠깐, 여기서 쉬었다 갈래… 대평리 박수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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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래동 서쪽 끝 난드르 대평리 마을에서 바라보는 깎아지른 듯한 절벽 박수기정의 모습. 제주 강동삼 기자
예래동 서쪽 끝 난드르 대평리 마을에서 바라보는 깎아지른 듯한 절벽 박수기정의 모습. 제주 강동삼 기자
용왕의 아들이 살았다는 넓은 들판 난드르마을, 대평리에 가면 절경과 마주한다. 바로 해안을 따라 펼쳐지는 기암절벽인 박수기정이다. 중문의 주상절리와는 또다른 깎아지른 듯한 높은 절벽이 압도한다. 바가지로 마실 샘물(박수)과 절벽을 뜻하는 기정(제주어)이 합쳐져 바가지로 마실 수 있는 깨끗한 샘물이 솟아나는 절벽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난드르마을 서쪽 끝에 자리 잡은 이곳은 제주 올레 9코스의 시작점이기도 하며 올레길은 박수기정의 윗 길로 오르게 되어있다. 소나무가 무성한 산길을 오르면 소녀 등대가 서 있는 한적한 대평포구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박수기정 위쪽 평야지대에서는 밭농사가 이루어지는 것 또한 볼 수 있다.

대평포구에서 바라보는 박수기정은 수직으로 꺾여있는 벼랑의 높이는 약 100m에 이른다. 마치 제주의 그리스 같은 느낌의 하얀카페와 노을을 감상하기 좋은 카페들이 바닷가를 끼고 즐비해 지친 다리를 좀 쉬게 하기에도 좋다. 한라산이 아니라 군산오름이 감싸주는 제주도의 유일한 마을이기도 하다.
글 사진 제주 강동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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