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화제] 꽃사슴 ‘황제’의 첫 겨울

[주말화제] 꽃사슴 ‘황제’의 첫 겨울

이효연 기자
입력 2006-02-04 00:00
수정 2006-02-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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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황제. 나이 5세. 성별 ♂. 고향 서울대공원. 가족 조강지처 ‘미자’와 첩으로 꽃사슴 50마리를 둠’서울시의 꽃사슴 집단이주 정책에 따라 서울숲으로 이사한 지 7개월 만에 사슴계를 평정하고 최고의 자리에 오른 꽃사슴 ‘황제’의 프로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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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바람이 몰아친 3일 서울 성동구 성수동 서울숲내 사슴방목장. 기자가 황제에게 특별인터뷰를 요청했지만 좀처럼 응해주질 않았다. 황제는 건초로 지어진 자택 안에서 ‘아랫것’들이 노는 모습을 감상할 뿐이다. 낯선 환경에서 첫 겨울을 보내는 황제에게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암사슴 50마리 거느려

주치의와 요리사가 딸린 서울대공원에서 명문가 사슴들과 친분을 맺어온 황제가 낯선 땅으로 강제 이주한 것은 지난해 6월. 그와 함께 서울숲에 정착한 사슴은 모두 80마리에 달하나 90%는 전국의 사슴농장 출신. 녹용과 사슴피를 탐내는 인간들에 의해 마구 교배된 잡종들이 대부분이다.

새 땅에서 꽃사슴의 새 시대를 연 황제는 서울대공원 출신인 수놈에게 ‘넘버투’의 자리를 주고 왕국의 모든 암컷들이 자신과 넘버투의 혈통을 이어가야 한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지난해 10월 발정기가 찾아오면서 사슴왕국에 지방출신 일부 수컷들이 반기를 들었다. 호시탐탐 황제자리를 노리던 A가 조강지처인 ‘미자’에게 수작을 걸었다. 이에 열받은 황제는 A를 향해 돌진,1m 가까운 뿔로 A를 단숨에 받아버렸다.A는 급기야 엉덩이에 치명적인 부상을 입고 숲밖으로 격리조치됐다.

다른 농장출신 B는 정식으로 결투를 신청했다.‘쿵’소리와 함께 뿔과 뿔이 부딪치자 B의 뿔 하나가 ‘툭’ 떨어져 나갔다. 또 황제의 승리였다.

이로써 황제는 서울숲의 진정한 넘버원이 됐다. 이때부터 황제는 본격적으로 넘버투와 함께 2세 만들기 작업에 돌입, 현재 30마리의 암사슴이 이들의 순수 꽃사슴 혈통을 이을 새끼를 잉태한 것으로 알려졌다.

황제에게 팽당한 미자

‘이름 미자. 나이 4세. 성별 ♀. 고향 서울대공원. 가족 7개월된 딸 소녀’

황제의 아이를 임신한 채 이주해 지난해 8월 서울숲에서 딸을 낳은 ‘미자’. 미자는 황제가 서울숲의 모든 암사슴 50마리를 첩으로 삼은 뒤 잊혀졌다. 그래서 미자는 소녀를 잘 키우며 살자고 결심했다. 그러나 딸의 미모를 탐내는 인간 때문에 요즘 고민이 많다. 마약과도 같은 사탕과 과자로 자신은 물론 딸을 자꾸 유인하는 것이다. 모녀는 이를 먹고 여러차례 복통과 설사에 시달려야 했다.

봄엔 대가족 기대를

자유롭고 마음껏 뛰놀게 해주겠다던 서울시의 말을 철석같이 믿고 이사온 황제 가족은 실망스럽기만 하다. 여전히 동물원과 비슷한 생활을 하고 있다며 한숨을 쉰다. 가끔 나무껍질을 벗겨 먹으면 다음날 여지없이 그 나무에 대나무 보호대가 둘러쳐진다. 오후 3시에 식사하고 나면 살이 찔까봐 사육사가 사슴왕국의 온 사슴을 놀래키며 달리기를 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인간의 돌팔매질이다. 왕국의 영역 4만 5000평에 표시로 철망을 쳐준 것은 고마우나, 이 사이로 돌을 마구 던지거나 구름다리 위에서 이물질을 뿌리는 몇몇 인간 때문에 이주해온 것을 후회한 적이 많았다.

황제와 미자에겐 그래도 희망이 있다. 봄이 오는 새달이면 황제의 아이를 잉태한 암사슴들의 출산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황제에겐 순수 꽃사슴 혈통을 이어갈 자손이, 미자에겐 딸 소녀의 친구가 돼줄 형제자매가 생겨날 터이다. 요즘은 얼어붙은 호숫가에서 청둥오리는 물론 얼음속 잉어와 사귀고, 집에 놀러온 까치·참새 텃새들과도 친하게 지내 그럭저럭 추운 겨울을 보낼 만하단다. 황제 가족은 꽃피는 봄에 다시 만날 것을 윙크하며 겨울의 끝자락을 즐기고 있었다.

이효연기자 bell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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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2-04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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