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안에 재기에 성공할 것을 확신합니다.”
중소기업 사장에서 몰락한 파산자로 그리고 시의원 출마를 꿈꾸는 경영컨설턴트로 재기에 성공한 안병삼(48)씨. 그에게서 파산자의 그늘은 느낄 수 없다.
2004년 9월 파산 선고에 이어 완전면책을 받은 안씨는 지난 10년 동안 수억원의 빚에 짓눌리면서도 끊임없이 재기를 다짐해 왔다.
안씨는 사기와 보증 때문에 파산했다.1987년부터 안양에서 전자제조업체를 경영한 안씨는 한해 매출 30억원을 올린 중소기업의 사장이었다. 그러나 95년 물품대금으로 받은 어음 14억원이 가짜로 드러나면서 회사도 부도를 맞았다.
안양 비산동 60평 단독 주택은 경매로 날아갔고 안씨에게는 빚 4억원이 남았다.3년 동안 방황했던 안씨는 98년 연봉 3500만원을 받고 한국기계공업협동조합연합회 부장으로 변신했다. 그러나 안씨가 사업하면서 알게 된 지인에게 92년 보증을 서준 회사가 부도나면서 안씨는 첫 월급부터 절반을 압류당했다.
한달에 140만원 남짓한 월급으로 1남 3녀를 교육시키며 생활하기도 빠듯했다. 빚은 꾸준히 늘어났고 파산 직전에는 안씨와 아내의 빚이 모두 7억 5000만원에 달했다. 결국 지난해 9월 부부가 함께 파산했다.
파산자인 안씨는 현재 안양에서 경영컨설팅회사 대표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내년에는 지역 중소기업들을 돕기 위해 시의원 선거에 출마하려고 한다.
안씨가 파산 후 불과 2∼3년 만에 재기를 확신하는 이유는 빚에 허덕이던 10년 동안 꾸준히 재기에 필요한 발판을 닦아왔기 때문이다. 안씨는 ‘정면돌파’를 택했다. 순간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카드 돌려막기나 사채를 끌어들여 빚을 갚는 방법을 포기했다.
채권추심에도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받은 추심 우편물에는 자신의 상황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답장을 써서 돌려보냈다. 또 다시 우편물이 날아오면 채권기관을 직접 찾아갔다. 추심 전화도 피하지 않았다. 집으로 찾아와 상스러운 욕설을 내뱉는 추심원들에게 자신의 채무 상황을 설명하다 집 앞 포장마차에서 함께 소주잔을 기울이기도 했다. 그 마저도 추심원들이 안씨를 격려하며 소주를 샀다.
안씨는 파산하기 3년 전 지인 명의로 경영컨설팅 회사를 설립했다.10평 남짓한 사무실에 임대료만 내면 초기 투자비용 없이도 운영할 수 있는 장점을 최대한 살렸다. 안씨는 7년 동안 중소기업을 운영했던 노하우와 경영지도사 자격증이 있었다. 컨설팅 회사야말로 안씨의 재기를 위한 첫 발판으로 안성맞춤이었다.
안씨는 파산 후 파산 사실을 숨기지 않고 적극적으로 사회에 뛰어들었다. 지난 7월에는 모 정당의 정치대학원 10주 과정을 수료하는 등 시의원 출마를 위해 단계적으로 준비하고 있다.
안씨는 “대학생이 된 세 딸과 아들이 10대이던 때에 아버지가 늘 빚쟁이들에게 쫓기는 모습만 보여준 것이 제일 가슴 아프다.”면서 “중소기업을 경영하다 파산한 경험을 바탕으로 지역 중소기업을 위한 일을 하고 싶어 시의원 출마도 결심했다.”고 말했다.
이효연기자 belle@seoul.co.kr
중소기업 사장에서 몰락한 파산자로 그리고 시의원 출마를 꿈꾸는 경영컨설턴트로 재기에 성공한 안병삼(48)씨. 그에게서 파산자의 그늘은 느낄 수 없다.
2004년 9월 파산 선고에 이어 완전면책을 받은 안씨는 지난 10년 동안 수억원의 빚에 짓눌리면서도 끊임없이 재기를 다짐해 왔다.
안씨는 사기와 보증 때문에 파산했다.1987년부터 안양에서 전자제조업체를 경영한 안씨는 한해 매출 30억원을 올린 중소기업의 사장이었다. 그러나 95년 물품대금으로 받은 어음 14억원이 가짜로 드러나면서 회사도 부도를 맞았다.
안양 비산동 60평 단독 주택은 경매로 날아갔고 안씨에게는 빚 4억원이 남았다.3년 동안 방황했던 안씨는 98년 연봉 3500만원을 받고 한국기계공업협동조합연합회 부장으로 변신했다. 그러나 안씨가 사업하면서 알게 된 지인에게 92년 보증을 서준 회사가 부도나면서 안씨는 첫 월급부터 절반을 압류당했다.
한달에 140만원 남짓한 월급으로 1남 3녀를 교육시키며 생활하기도 빠듯했다. 빚은 꾸준히 늘어났고 파산 직전에는 안씨와 아내의 빚이 모두 7억 5000만원에 달했다. 결국 지난해 9월 부부가 함께 파산했다.
파산자인 안씨는 현재 안양에서 경영컨설팅회사 대표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내년에는 지역 중소기업들을 돕기 위해 시의원 선거에 출마하려고 한다.
안씨가 파산 후 불과 2∼3년 만에 재기를 확신하는 이유는 빚에 허덕이던 10년 동안 꾸준히 재기에 필요한 발판을 닦아왔기 때문이다. 안씨는 ‘정면돌파’를 택했다. 순간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카드 돌려막기나 사채를 끌어들여 빚을 갚는 방법을 포기했다.
채권추심에도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받은 추심 우편물에는 자신의 상황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답장을 써서 돌려보냈다. 또 다시 우편물이 날아오면 채권기관을 직접 찾아갔다. 추심 전화도 피하지 않았다. 집으로 찾아와 상스러운 욕설을 내뱉는 추심원들에게 자신의 채무 상황을 설명하다 집 앞 포장마차에서 함께 소주잔을 기울이기도 했다. 그 마저도 추심원들이 안씨를 격려하며 소주를 샀다.
안씨는 파산하기 3년 전 지인 명의로 경영컨설팅 회사를 설립했다.10평 남짓한 사무실에 임대료만 내면 초기 투자비용 없이도 운영할 수 있는 장점을 최대한 살렸다. 안씨는 7년 동안 중소기업을 운영했던 노하우와 경영지도사 자격증이 있었다. 컨설팅 회사야말로 안씨의 재기를 위한 첫 발판으로 안성맞춤이었다.
안씨는 파산 후 파산 사실을 숨기지 않고 적극적으로 사회에 뛰어들었다. 지난 7월에는 모 정당의 정치대학원 10주 과정을 수료하는 등 시의원 출마를 위해 단계적으로 준비하고 있다.
안씨는 “대학생이 된 세 딸과 아들이 10대이던 때에 아버지가 늘 빚쟁이들에게 쫓기는 모습만 보여준 것이 제일 가슴 아프다.”면서 “중소기업을 경영하다 파산한 경험을 바탕으로 지역 중소기업을 위한 일을 하고 싶어 시의원 출마도 결심했다.”고 말했다.
이효연기자 belle@seoul.co.kr
2005-11-18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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