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눈이 안 보일 뿐 아니라 귀도 안 들린다. 귀가 안 들려서 생기는 문제는 눈이 안 보여서 생기는 것보다 훨씬 깊고 복잡하다. 귀가 들리지 않는 것이 훨씬 더 지독한 불행이다. 왜냐하면 생각을 불러일으켜 우리를 지적인 인간집단 속에 있게 해주는 목소리의 상실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나는 귀가 들리지 않는 것이 눈이 안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장애임을 발견했다.”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3중의 장애를 겪은 헬렌 켈러가 청각의 중요성을 함축한 말이다.
최순길(61) 한국청각장애인돕기회장은 청각장애인들에게 9년째 희망의 소리를 찾아주고 있다.“청각 장애인들에겐 새의 지저귐, 스치는 바람소리, 심지어 소음처럼 느껴지는 자동차의 경적조차도 구원의 소리로 들려옵니다.”
●카페·와인하우스 운영하며 기금 충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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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길 회장은 암흑같은 침묵의 세계에 갇힌… 최순길 회장은 암흑같은 침묵의 세계에 갇힌 청각 장애인들에겐 자동차 소음도 구원의 소리로 들려온다고 강조했다.
오정식기자 oosing@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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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길 회장은 암흑같은 침묵의 세계에 갇힌…
최순길 회장은 암흑같은 침묵의 세계에 갇힌 청각 장애인들에겐 자동차 소음도 구원의 소리로 들려온다고 강조했다.
오정식기자 oosing@seoul.co.kr
1998년 신동아그룹 부회장을 지낸 그는 케이크와 커피가 맛있기로 소문난 ‘카페 라리’ 신사점과 분당점, 국내 최대 규모의 와인바인 ‘라비뒤뱅’의 대표다. 이만하면 이순(耳順)을 넘긴 그가 애호하는 차와 와인을 즐기면서 인생을 관조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같은 연말이면 그는 더욱 바쁘다. 사무실을 겸한 카페의 한 구석에서 청각장애인돕기 행사 장소를 알아보고, 소요 경비를 추산하는 전화를 받느라 분주하다. 그러면서도 걱정이 앞선다.“기금이 많이 모여야 할 텐데.‘IMF한파’때보다 더한 불황이어서….”라며 이맛살을 찌푸렸다.
최 회장 자신도 청각 장애를 겪고 있다. 고향인 황해도에서 어렸을 때 중이염을 앓은 후유증으로 나이가 들면서 잘 들리지 않아 오른쪽 귀에 보청기를 끼고 지낸다.20년째 낀 보청기가 몸의 일부분처럼 자연스럽다.
겉모습으로는 아무리 봐도 구별되지 않는다.“커피잔 너머로 흐르는 음악의 농암도 다 들을 수 있지요. 안경을 끼고도 명화를 감상할 수 있는 것처럼요.”
●청각장애인 100여명에 보청기 제공
그는 청각장애인돕기회를 설립한 지난 1996년 이후 해마다 청각장애인 10∼20명에게 보청기를 맞춰 줬다. 청력검사를 거친 뒤 귀본을 떠 보청기 1대를 주문 제작하는 데 드는 비용은 100만원선. 가정 형편이 어려운 이들에겐 결코 적지 않은 액수다. 청각 장애 수술을 하려면 3000만원 이상이 든다. 재활교육비까지 합치면 더 늘어난다. 그래서 보청기를 사 주는 것으로 대신하고 있다.
“회원들의 성금이 제일 큰 힘이지요. 초창기엔 노인들에게 보청기를 해줬는데, 사실 노인들은 인생을 살 만큼 살았잖아요. 그래서 이젠 가정 형편이 어려운 어린이들을 찾아 보청기를 해줍니다.”
암흑 같은 침묵의 세계에 빠진 청각 장애 어린이들에게 희망의 소리를 전해줄 때마다 가슴 벅찬 희열을 맛본다고 했다.
안경을 끼는 것을 더 이상 장애로 보지 않듯이 보청기를 끼는 것도 허물은 아니란 것이 그의 생각이다.“보청기만 있으면 들을 수도 있고, 말할 수도 있게 되는 거죠. 말이 어눌한 어린이들도 보청기를 끼고 나면 금방 정상적인 어린이로 돌아오죠.”
●회원들 성금이 제일 큰 힘
청각 장애에 대한 식견도 이젠 전문가 수준이다. 우리나라 인구의 15% 정도가 청각 장애인이며, 해마다 7%씩 늘고 있다고 한다.2000명 가운데 1명은 선천적 청각 장애인이라는 통계도 나와 있다. 또 65세 이상 노인층의 10%는 청각 장애를 겪고 있다.
이렇게 흔한 청각 장애가 오면 많은 문제가 발생한다. 먼저 우울증이 생겨 일에 대한 의욕을 잃고, 소외감을 느끼며, 사람들과 대화를 꺼리는 경향이 있다.“청각 장애에 대한 예방과 치료는 물론이고, 장애에 노출된 이들을 돕는 사회적 지원이 절실한 셈이지요.”
회원들이 모금한다고는 하지만 항상 기금은 빠듯하다. 돈줄은 운영하는 카페의 수익금. 운영비와 직원 월급을 뺀 금액 대부분이 청각장애인돕기회로 들어간다. 커피잔을 들던 그는 “카페에서 마시는 한 잔의 차엔 청각 장애인을 돕는 사랑의 마음이 들어 있다.”며 은근슬쩍 카페 ‘선전’을 끼워 넣는다.
그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는 아내 윤명숙씨.“카페에 출근하자마자 화장실 청소부터 하는 아내에게 늘 미안하고, 고맙지요. 수익금도 고스란히 내어주고.”
●얼굴기형 450여명에도 시술 선행
그의 장애인 사랑은 유별나다. 그가 다니던 회사의 집무실에는 늘 그를 찾는 장애인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다고 한다. 장애인 돕기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로터리클럽에 가입하면서부터다.
지난 91년 뜻이 맞는 로터리클럽 회원들과 함께 얼굴기형(언청이) 돕기회를 조직했다.“우연히 접한 언청이 환자가 바깥 생활을 못해 열등감과 정서 장애에 시달리는 것을 봤지요.” 즉시 언청이 환자를 돕기 시작했다. 자신이 직접 회원들을 모아 회비를 거두었다.95년까지 8억여원을 모아 450여명에게 시술, 해맑은 얼굴로 거듭날 수 있도록 했다. 얼굴기형 돕기가 어느 정도 뿌리 내리자 그는 지친 마음을 가라앉히려 1년가량 쉬었다.“봉사활동을 하다가 안 하니 많이 허전했어요. 그래서 청각 장애인을 돕는 쪽으로 관심을 돌렸죠.”
얼굴기형 돕기 활동을 함께 한 옛 회원들을 다시 모아 동분서주하고 있는 그는 요즘 ‘보람’이라는 말을 새삼스럽게 곱씹고 있다.
■ 청각장애인돕기 후원 문의 (02)3443-9247.
이기철기자 chuli@seoul.co.kr
2004-12-17 3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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