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시절 노처녀 히스테리로 악명이 높았던 지리 선생님은 남자를 제대로 보려면 꼭 함께 힘든 여행을 하거나 술을 진탕 마셔봐야 한다고 강조했다.그렇게 잘 알면서 왜 본인은 결혼을 안하는지,이론이 현실을 못쫓아가는 선생님의 모습에 한 귀로 흘려버렸지만 지나고 보니 그것은 진리였다.
#1학교 앞에서
“도대체 왜 걔는 내가 싫다는 건데.내가 뭐가 그렇게 빠진다고….”
또 시작이다.‘이 녀석’의 ‘12시 그녀 증후군’.자정무렵이 되어 술이 꼭지까지 오르면 꼭 ‘그녀’를 부르며 절규한다.나는 녀석보다 술이 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꼬박 6년 동안 똑같은 주정을 받아주고 있다.
어이없는 건 만날 때마다 녀석이 부르는 ‘그녀’의 이름이 다르다는 것이다.녀석은 세상 시름을 다 짊어진 듯 비틀거리더니 곧 휴대전화를 들고 뽀르르 사라져 남은 술을 다 비우도록 오지 않는다.아마 ‘그녀’에게 술꼬장을 부리거나,‘새로운 그녀’에게 작업을 하고 있음이리라.
바람둥이면 욕이라도 하지,매번 차이는 녀석에게는 측은지심만 들 뿐이다.문득 녀석은 그저 솔직한 남자일 뿐이라는 생각도 든다.‘네가 그래서 안되는 거야.’.한 대 후려치고 싶은 걸 꾹 참고 “그 여자가 눈이 삐어서 그래.”하고 위로한다.
#2회사 앞에서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로 나와 연을 맺은 사람들과 술을 마시면서 종종 놀랄 때가 있다.그렇게 높은 평가를 받던 인품이 술만 마시면 누더기로 변해버리는 사람들.술에 대해 안 좋은 추억만을 남긴다.
존경하던 선배가 육두문자를 날리면서 함부로 내 팔을 잡아끌 때는 얼마나 허탈했는지.드라마에서나 봤던 “이 손 누구 거야?”라고 외칠 지경에서는 진심으로 거꾸로 매달아 태형(笞刑)을 체험하게 해주고픈 마음이었다.
고개를 돌리면 ‘선배에 대한 예의’를 강조하던 사람이 ‘선배에 대한 딸랑이’를 흔들고 있다.여자의 내숭보다 남자의 내숭이 더 훌륭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는 순간이다.그래,나는 내숭쟁이 신데렐라보다는 슈렉으로 변한 피오나 공주가 되련다.
#3‘사람들’과 함께
솔직히 취해서 해롱거리는 데 남자라고 더 추하고 여자라고 더 아름다울 것이 뭐 있을까.그래서 나는 남자도 말고,여자도 말고 ‘사람들’이랑 마시는 술이 좋다.앞에서 언급한 이들 가운데 일부는 술자리에서는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고 해석해도 무방하다는 뜻이다.
별 것도 아니다.내가 당해서 싫은 행동은 스스로도 하지 않는 것,초등학교 1학년 도덕시간에 배운 기본적인 예의이고 배려이다.그걸 아는 사람들과 함께 술을 마시면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도 재미있고,허풍인 줄 뻔히 아는 무용담도 흥이 난다.이런 사람들과 하는 자리가 있다는 것이 아마도 내가 술을 안 끊는 100가지 이유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1학교 앞에서
“도대체 왜 걔는 내가 싫다는 건데.내가 뭐가 그렇게 빠진다고….”
또 시작이다.‘이 녀석’의 ‘12시 그녀 증후군’.자정무렵이 되어 술이 꼭지까지 오르면 꼭 ‘그녀’를 부르며 절규한다.나는 녀석보다 술이 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꼬박 6년 동안 똑같은 주정을 받아주고 있다.
어이없는 건 만날 때마다 녀석이 부르는 ‘그녀’의 이름이 다르다는 것이다.녀석은 세상 시름을 다 짊어진 듯 비틀거리더니 곧 휴대전화를 들고 뽀르르 사라져 남은 술을 다 비우도록 오지 않는다.아마 ‘그녀’에게 술꼬장을 부리거나,‘새로운 그녀’에게 작업을 하고 있음이리라.
바람둥이면 욕이라도 하지,매번 차이는 녀석에게는 측은지심만 들 뿐이다.문득 녀석은 그저 솔직한 남자일 뿐이라는 생각도 든다.‘네가 그래서 안되는 거야.’.한 대 후려치고 싶은 걸 꾹 참고 “그 여자가 눈이 삐어서 그래.”하고 위로한다.
#2회사 앞에서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로 나와 연을 맺은 사람들과 술을 마시면서 종종 놀랄 때가 있다.그렇게 높은 평가를 받던 인품이 술만 마시면 누더기로 변해버리는 사람들.술에 대해 안 좋은 추억만을 남긴다.
존경하던 선배가 육두문자를 날리면서 함부로 내 팔을 잡아끌 때는 얼마나 허탈했는지.드라마에서나 봤던 “이 손 누구 거야?”라고 외칠 지경에서는 진심으로 거꾸로 매달아 태형(笞刑)을 체험하게 해주고픈 마음이었다.
고개를 돌리면 ‘선배에 대한 예의’를 강조하던 사람이 ‘선배에 대한 딸랑이’를 흔들고 있다.여자의 내숭보다 남자의 내숭이 더 훌륭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는 순간이다.그래,나는 내숭쟁이 신데렐라보다는 슈렉으로 변한 피오나 공주가 되련다.
#3‘사람들’과 함께
솔직히 취해서 해롱거리는 데 남자라고 더 추하고 여자라고 더 아름다울 것이 뭐 있을까.그래서 나는 남자도 말고,여자도 말고 ‘사람들’이랑 마시는 술이 좋다.앞에서 언급한 이들 가운데 일부는 술자리에서는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고 해석해도 무방하다는 뜻이다.
별 것도 아니다.내가 당해서 싫은 행동은 스스로도 하지 않는 것,초등학교 1학년 도덕시간에 배운 기본적인 예의이고 배려이다.그걸 아는 사람들과 함께 술을 마시면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도 재미있고,허풍인 줄 뻔히 아는 무용담도 흥이 난다.이런 사람들과 하는 자리가 있다는 것이 아마도 내가 술을 안 끊는 100가지 이유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2004-06-16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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