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정(왼쪽)이 21일(한국시간) 이탈리아 밀라노 아이스스케이팅 아레나에서 열린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1500m 결선에서 우승하고 우는 김길리를 축하하고 있다. 밀라노 연합뉴스
닫기이미지 확대 보기
최민정(왼쪽)이 21일(한국시간) 이탈리아 밀라노 아이스스케이팅 아레나에서 열린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1500m 결선에서 우승하고 우는 김길리를 축하하고 있다. 밀라노 연합뉴스
유종의 미 거둔 한국 쇼트트랙 그런데김길리 금메달, 최민정 은메달, 남자 계주 은메달.
한국 쇼트트랙 대표팀이 21일(한국시간) 감동적으로 ‘유종의 미’를 거두며 이번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을 마쳤습니다. 최종 성적은 금메달 2개, 은메달 3개, 동메달 2개. 금메달 개수로는 네덜란드가 5개로 압도적이지만 전체 메달 수는 네덜란드(금5·은1·동1)와 한국이 똑같이 7개입니다.
초반 이어졌던 부진을 생각하면 ‘역시 대한민국’이란 생각이 들게 하는 성적입니다. 2010년 밴쿠버 대회(금2·은4·동2)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2014년 소치 대회(금2·은1·동2), 2022년 베이징 대회(금2·은3)보다도 더 좋은 성적입니다. 전체 메달 수로는 2018년 평창 대회(금3·은1·동2)보다 많습니다.
‘천하제일’로 알았던 한국 쇼트트랙은 첫 메달 종목이었던 혼성 계주에서 넘어지면서 베이징에 이어 2연속 탈락의 아픔을 겪었습니다. 초반에 기대했던 금메달이 나오지 않자 ‘이제 한국 쇼트트랙은 한물갔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이번 올림픽에서는 기회를 엿보다 막판 역전하기보다는 초반부터 레이스를 주도하며 마지막까지 버티는 전략이 대세가 됐기 때문입니다. 체력을 아낀 뒤 막판에 틈을 파고드는 한국의 전통적인 전략은 진작에 노출됐고 안타깝게도 대체로 통하지 않는 모습이었습니다.
네덜란드·이탈리아·캐나다까지 4파전
이미지 확대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1000m 시상식에 네덜란드, 캐나다, 한국의 국기가 올라가는 모습. 밀라노 류재민 기자
닫기이미지 확대 보기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1000m 시상식에 네덜란드, 캐나다, 한국의 국기가 올라가는 모습. 밀라노 류재민 기자
바뀐 트렌드 속에 타고난 체구가 상대적으로 우월한 서양 선수들의 약진이 두드러졌습니다. 스피드 스케이팅만 잘하는 줄 알았던 네덜란드가 이렇게 쇼트트랙 강국이었나 싶을 정도로 대단한 성적을 거뒀고, 캐나다와 이탈리아도 굉장한 선전을 했습니다.
이에 따라 쇼트트랙에 확실하게 찾아온 변화가 있습니다. 후한 말 천하의 주인이 되기 위해 패권을 다퉜던 위·촉·오의 ‘삼국지’가 있었다면 이번 올림픽을 기점으로 대한민국, 네덜란드, 캐나다, 이탈리아의 ‘사국지’가 완성됐다는 사실인데요.
2022년 베이징 대회 때까지만 해도 중국이 금메달 2개, 은메달 1개, 동메달 1개로 한국에 이어 두 번째로 좋은 성적을 거뒀지만 이번 대회에서는 확실히 밀렸습니다. 한국과 함께 아시아의 쇼트트랙 강국이었지만 기본적인 기량 면에서 밀린 것은 물론 바뀐 흐름에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은메달 1개로 대회를 마감하게 됐습니다.
결선 무대는 쇼트트랙의 현주소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자리였습니다. 남자 계주 결선을 다툰 나라가 바로 한국, 이탈리아, 네덜란드, 캐나다였고 여자 계주 결선도 마찬가지로 네 국가가 경쟁했기 때문입니다.
이미지 확대
쇼트트랙 경기를 보러 이동 중인 네덜란드 팬들. 밀라노 류재민 기자
닫기이미지 확대 보기
쇼트트랙 경기를 보러 이동 중인 네덜란드 팬들. 밀라노 류재민 기자
이미지 확대
쇼트트랙 경기를 보러 이동 중인 캐나다 팬들. 밀라노 류재민 기자
닫기이미지 확대 보기
쇼트트랙 경기를 보러 이동 중인 캐나다 팬들. 밀라노 류재민 기자
그래서 쇼트트랙을 누가 보느냐면 바로 이 네 나라의 팬들이 주로 봅니다. 방송 중계 화면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경기장에서는 더 생생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팬들은 자기 돈을 내고 경기장을 찾아야 하는 만큼 허투루 돈을 쓰지 않습니다. 자국 선수들이 잘하는 종목, 메달 가능성이 있는 종목을 보러 가기 마련이지요. 한국 팬들이 뜬금없이 크로스컨트리, 알파인 스키 같은 종목을 보러 가지 않으니까요. 쇼트트랙 경기장에서 중국, 일본 팬들이 극소수였던 것도 어쩌면 자국 선수들의 성적을 누구보다 잘 예감하고 있었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밀라노 시내에서 쇼트트랙 경기장이 있는 지하철역까지 가다 보면 결국 빨간색(캐나다), 주황색(네덜란드) 그리고 평상복을 입고 경기장을 찾은 이탈리아 사람들과 함께 같은 목적지를 향하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팬들끼리 묘한 신경전도 있어서 각자 국기를 몸에 두르고 자국 나라의 이름을 외치는 모습도 볼 수 있었습니다.
오렌지 군단의 약진…한국도 바뀔 시간
이미지 확대
경기장에서 응원의 조직력을 보여준 네덜란드 팬들의 선명한 주황색. 밀라노 류재민 기자
닫기이미지 확대 보기
경기장에서 응원의 조직력을 보여준 네덜란드 팬들의 선명한 주황색. 밀라노 류재민 기자
경기장에 들어서면 색으로 더 선명하게 구별이 됩니다. 아무래도 인접 국가이다 보니 빨간색보다는 주황색이 더 압도적으로 많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네덜란드 국민들에게는 찾아온 보람이 있게도 이번 대회에서 네덜란드는 무려 5개의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요.
네덜란드는 기존에 롱트랙(스피드 스케이팅) 강국이었는데 이제는 확실히 쇼트트랙까지 강국이 된 분위기입니다. 한겨울에 스케이트를 타는 게 일상인 네덜란드에서는 어렸을 때부터 많은 사람이 스케이트를 타며 기본기를 다지게 되고, 이를 바탕으로 우수한 선수들이 배출되는 구조입니다. 모든 스포츠의 기본인 저변 확대와 탄탄한 인프라, 유소년 발굴이 저절로 선순환하는 셈이지요.
과거에는 스피드 스케이팅 경쟁에서 밀린 선수들이 쇼트트랙으로 넘어오는 경우가 많았다면 이제는 아예 처음부터 쇼트트랙을 타는 선수들도 많아졌습니다. 철저한 시스템 속에 체계적인 선수 관리 여기에 공기 저항을 최소화하는 경기복 개발과 데이터 분석 등의 과학적인 측면에 대한 투자도 아끼지 않은 결과 2018년 평창 대회에서 첫 금메달을 딴 뒤로 계속해서 선전하고 있습니다.
이미지 확대
김길리가 21일(한국시간) 이탈리아 밀라노 아이스스케이팅 아레나에서 열린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1500m를 우승한 뒤 태극기를 들고 트랙을 돌고 있다. 밀라노 연합뉴스
닫기이미지 확대 보기
김길리가 21일(한국시간) 이탈리아 밀라노 아이스스케이팅 아레나에서 열린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1500m를 우승한 뒤 태극기를 들고 트랙을 돌고 있다. 밀라노 연합뉴스
한국은 다행히 여자 계주와 김길리 선수가 금메달을 목에 걸며 4대 강국 중 유일한 아시아 국가로서의 자존심을 지켰습니다. 여기에 ‘깜짝 스타’로 떠오른 임종언 선수도 계주 은메달과 1000m 동메달을 목에 걸며 미래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했고요.
그러나 언제까지 특정 선수에게 ‘하드 캐리’하는 성적을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이번 올림픽은 위기감을 갖고 대응해야 한다는 것을 확실히 일깨우는 기점이 된 대회였으니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이미지 확대
자국 선수의 선전에 환호하는 네덜란드 선수단. 밀라노 류재민 기자
닫기이미지 확대 보기
자국 선수의 선전에 환호하는 네덜란드 선수단. 밀라노 류재민 기자
이재명 대통령도 김길리 선수의 금메달이 나온 후 “정부는 우리 선수들이 안정적이고 체계적인 환경에서 훈련하며 역량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적극 뒷받침할 것입니다. 국제 무대에서 자신 있게 경쟁할 수 있는 기반을 더욱 강화해 나가겠습니다”라고 약속한 만큼 정부의 체계적인 지원과 이를 바탕으로 한 치열한 고민과 발전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올림픽 때마다 ‘메달 편중이 심하다’는 평가가 있지만 쇼트트랙을 버릴 수 있나요. 올림픽 때가 되면 결국 TV 앞에 모여드는 경기, 현장에서 티켓을 사게 하는 경기는 쇼트트랙인데요. 다음 올림픽에도 쇼트트랙에 거는 기대가 클 것이고, 쇼트트랙을 보러 가는 사람 중에는 한국인이 분명 많이 있을 테고요.
그러려면 당연히 선수들이 치열한 경쟁 속에서도 살아남아야 하겠지요. 이번에도 후회 없이 수고하고 좋은 결과를 보여준 선수들이 다음 올림픽에서는 더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도록, 4대 강국 중에서도 가장 많은 팬이 경기장을 찾을 수 있도록 쇼트트랙의 앞날을 힘차게 응원하겠습니다.
밀라노 류재민 기자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