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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결합, 혼인 아닐지라도 사실혼과 본질 같은 생활공동체”

“동성결합, 혼인 아닐지라도 사실혼과 본질 같은 생활공동체”

신진호 기자
신진호 기자
입력 2023-02-21 14:01
업데이트 2023-02-21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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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심 법원, 동성커플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 인정
“건강보험 피부양자 제도는 경제적 의존도 고려해야”
“동성결합, 정서·경제적 생활공동체…사실혼과 동일”
“동성결합에만 피부양자 자격 인정않는 건 차별대우”
동성결합을 혼인관계로 인정하지 않은 건 1심과 동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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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5년차 소성욱(왼쪽)·김용민 ‘동성 부부’가 국민건강보험 피보험자 자격을 인정받은 21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 앞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소감을 말하고 있다. 뉴시스
결혼 5년차 소성욱(왼쪽)·김용민 ‘동성 부부’가 국민건강보험 피보험자 자격을 인정받은 21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 앞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소감을 말하고 있다.
뉴시스
함께 사는 동성 연인이 배우자의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해달라며 국민건강보험공단(건보공단)을 상대로 낸 행정소송 2심에서 승소했다.

‘혼인은 남녀 간의 결합’이라며 원고 패소했던 1심 판결이 2심에서 뒤집힌 것이다.

2심 역시 함께 사는 동성 연인에 대해 ‘혼인 관계’가 아니라고 판단했지만, 건강보험 피부양자 제도의 목적을 고려할 때 사실혼과 본질적으로 동일한 집단이라고 봤다.

서울고법 행정1-3부(부장 이승한 심준보 김종호)는 21일 소성욱씨가 건보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보험료 부과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동성 커플, 건보 직장가입 피부양자 등록 후 취소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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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부부 피부양자 자격 인정 소송 항소심 기자회견
동성부부 피부양자 자격 인정 소송 항소심 기자회견 동성부부 피부양자 자격 인정 소송 항소심에서 승소한 소성욱·김용민 씨 부부가 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법원종합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3.2.21
연합뉴스
이번 소송의 발단은 2019년 동성 연인 김용민씨와 결혼식을 올린 소씨가 2020년 2월 건강보험 직장가입자인 김씨의 피부양자로 등록하는 과정에서 비롯됐다.

현재 국내에서는 동성끼리의 혼인을 법적으로 인정하고 있지 않지만, 소씨와 김씨는 결혼식 당시 양가 가족과 친지들에게 자신들의 결혼 소식을 알릴 정도로 두 사람 간 결합을 공식화했다.

다음해 2월 건강보험 직장가입자인 김씨는 지역가입자인 소씨를 피부양자로 등록할 수 있는지 건보공단에 문의했다. 김씨는 두 사람이 동성이며 사실혼 관계에 있다고 설명했다.

당시 건보공단 직원은 ‘가능하다’는 답변을 내놨다. 건보공단은 이성 사실혼 부부에 대해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고 있는데, 김씨와 소씨에게도 사실혼 지위를 적용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해 10월 이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자 건보공단은 “업무 처리에 착오가 있었다”고 김씨에게 통보하고, 소씨를 다시 지역가입자로 전환해 보험료를 부과했다.

이에 소씨는 2021년 2월 “지역가입자 보험료를 부과한 처분을 취소하라”며 건보공단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1심 “동성 간 결합은 혼인 아니다”…원고 패소
2022년 1월 1심은 “현행법 체계상 동성인 두 사람의 관계를 사실혼 관계로 평가하기는 어렵다”면서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1심 재판부는 “민법과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판례, 우리 사회의 일반적 인식을 모두 모아보더라도 혼인은 여전히 남녀의 결합을 근본 요소로 한다고 판단된다”면서 “이를 동성 간 결합까지 확장해 해석할 근거가 없다”고 설명했다.

2심도 “혼인 관계는 현행법상 남녀만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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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부부 건보 피부양자 자격 인정받은 소성욱·김용민 씨 부부
동성부부 건보 피부양자 자격 인정받은 소성욱·김용민 씨 부부 결혼 5년차 동성부부 소성욱 씨와 김용민 씨가 21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국민건강보험공단 상대 보험료 부과 취소 처분 소송 항소심에서 원고 승소 후 입장을 말하고 있다. 서울고등법원은 소성욱 씨가 건보공단을 상대로 낸 소송의 항소심에서 1심을 뒤집고 동성부부의 건보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며 원고 승소를 판결했다. 2023.02.21.
뉴시스
2심 재판부도 일단 두 사람이 ‘사실혼 관계’, 즉 혼인 관계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2심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소씨가 김씨와 사실혼 관계가 될 수 있는지 살폈다. 재판부는 “원고(소씨)와 김용민은 서로를 반려자로 맞아 함께 생활하기로 합의하고 사회적으로 이를 선언하는 의식도 치렀으며 상당 기간 생활공동체를 형성해 동거하면서 서로 협조와 부양 책임을 지는 등 외견상 우리 사회에서 혼인 관계에 있는 자들의 공동생활과 유사한 관계를 유지했다”며 사실관계는 받아들였다.

그러면서도 “이와 같은 사정만으로 두 사람 사이에 사실혼이 성립했다고 인정하긴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 근거로 ▲헌법 제36조 제1항이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兩性)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되어야 하며 국가는 이를 보장한다’고 규정한 점 ▲민법도 혼인 당사자를 성별을 구분하는 부부(夫婦) 또는 부(夫), 처(妻)라는 용어로 지칭한 점 ▲과거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성별이 다른 남녀 간의 결합만을 혼인으로 인정하는 판례를 남긴 점을 들었다.

재판부는 “입법론적으로는 몰라도 현행법령의 해석론적으로 원고와 김용민 사이에 사실혼 관계가 인정된다는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법이 개정되지 않는 한 동성을 부부로 인정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피부양자 자격, 관계의 합법성보다 경제적 의존도 우선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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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심 승소에 기뻐하는 동성부부 소성욱·김용민 씨
2심 승소에 기뻐하는 동성부부 소성욱·김용민 씨 결혼 5년차 동성부부 소성욱 씨와 김용민 씨가 21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국민건강보험공단 상대 보험료 부과 취소 처분 소송 항소심에서 원고 승소 후 입장을 말하며 기뻐하고 있다. 서울고등법원은 소성욱 씨가 건보공단을 상대로 낸 소송의 항소심에서 1심을 뒤집고 동성부부의 건보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며 원고 승소를 판결했다. 2023.02.21.
뉴시스
그러나 두 사람의 결합이 사실혼과 본질적으로 같은 ‘생활공동체’라면서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차별하는 것은 평등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소씨와 김씨를 두고 실질적으로 사실혼과 같은 생활공동체 관계에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에서 비교 대상으로 삼아야 하는 두 집단은 ‘사실혼 배우자’와 ‘동성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실질적으로 사실혼과 같은 생활공동체 관계에 있는 사람’”이라며 “후자를 ‘동성 배우자’로 표현하기도 하지만, 개념의 혼란을 일으킬 수 있어 ‘동성 결합 상대방’으로 부르겠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건강보험 피부양자 제도의 목적에 대해서도 살폈다.

재판부는 “건강보험은 소득이나 재산 없이 피보험자에 의해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을 피부양자로 인정해 수급권을 인정할 필요성이 있고 여기에 피부양자 제도의 존재 이유가 있다”고 지적했다.

건강보험의 피부양자 인정 여부를 가릴 때 부양자와 관계의 합법성보다는 경제적 의존도를 우선 고려해야 하며, 이런 기준이 피부양자 제도의 취지에 더 합치한다는 것이다.

“사실혼과 동성결합, 본질적으로 동일한 생활공동체”
또 사실혼 관계의 이성 배우자와 동성결합 상대방이 모두 법률적 의미의 가족관계나 부양의무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 정서적·경제적 생활공동체라는 점에서 다르다고 할 수 없다고 봤다.

그러면서 이성 배우자와 동성 결합 상대방이 같은지 판단할 기준을 ‘직장가입자와 혼인의 실질에 대응하는 합의 하에 밀접한 정서적·경제적 생활 공동체 관계에 있고 직장가입자에게 주로 생계를 의지하며 소득과 재산이 일정 기준 이하일 것’으로 정했다.

아울러 “이처럼 비교 기준을 정하면 사실혼 배우자와 동성 결합 상대방은 성적 지향에 따라 선택한 생활공동체 상대방이 이성인지 동성인지만 다를 뿐 본질적으로 동일한 집단”이라며 “동성 결합만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하는 차별대우”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피고(건보공단)는 양자(동성과 이성 배우자)를 달리 취급할 합리적 이유가 있는지 법원이 석명 준비를 명령했는데도 차별대우를 정당화하는 합리적으로 주장하거나 입정하지 않았다”면서 “이 사건 차별대우는 평등의 원칙을 위반하는 자의적 차별”이라고 평가했다.

“동성결합만 피부양자 인정않는 건 성적 지향 따른 차별”
재판부는 특히 “국민건강보험의 피부양자 제도는 경제적 능력이 없어 직장 가입자에게 생계를 의지하는 사람에게도 건강보험을 적용하기 위한 것”이라며 “시대 상황 변화에 따라 사회보장 차원에서 보호 대상이 돼야 할 생활공동체 개념이 기존의 가족 개념과 달라지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법률적 의미의 가족과 부양 의무는 피부양자 제도의 출발점일지언정, 그 한계점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도 설명했다.

아울러 “누구나 어떤 면에서는 소수자일 수 있다”며 “소수자에 속한다는 것은 다수자와 다르다는 것일 뿐, 그 자체로 틀리거나 잘못된 것일 수 없다”고 해석했다.

재판부는 “다수결의 원칙이 지배하는 사회일수록 소수자 권리에 대한 인식과 이를 보호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고, 이는 인권 최후 보루인 법원의 가장 큰 책무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원고 측 “동성 부부 법적 지위를 인정한 최초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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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에 동성부부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 인정받은 소성욱·김용민 씨 부부
법원에 동성부부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 인정받은 소성욱·김용민 씨 부부 결혼 5년차 동성부부 소성욱 씨와 김용민 씨가 21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국민건강보험공단 상대 보험료 부과 취소 처분 소송 항소심에서 원고 승소 후 법원을 나서고 있다. 서울고등법원은 소성욱 씨가 건보공단을 상대로 낸 소송의 항소심에서 1심을 뒤집고 동성부부의 건보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며 원고 승소를 판결했다. 2023.02.21.
뉴시스
소씨를 대리한 박한희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는 “오늘 판결은 동성 부부의 법적 지위를 법원이 인정한 최초 사례”라며 환영했다.

이날 2심 선고 후 김씨는 “오늘 사법체계 안에서 우리의 지위를 인정받게 됐다”면서 “동성 부부의 평등한 사회를 바라는 모든 사람의 승리”라고 말했다.

건보공단은 “아직 판결문을 확인하지 못해 구체적으로 언급하기 어렵다”면서도 “일단 대법원까지 지켜보려고 한다”며 상고 의사를 밝혔다.
신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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