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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장, 피고인석에 서다-63회] 강제징용 사건 외교부 입장 반영하려 규칙 개정… “필요한 제도 단초 됐을 뿐”

[대법원장, 피고인석에 서다-63회] 강제징용 사건 외교부 입장 반영하려 규칙 개정… “필요한 제도 단초 됐을 뿐”

허백윤 기자
허백윤 기자
입력 2020-04-18 14:00
업데이트 2020-04-18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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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전 대법원장 62차 재판 지상중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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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대 전 대법관. 연합뉴스
박병대 전 대법관.
연합뉴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외교부가 대법원 재판부에 의견을 낼 수 있도록 한 것이 ‘재판개입’이 아니라 필요한 절차를 도입하게 된 ‘단초’가 된 것이라고 전직 고위 법관이 주장했다.

17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부장 박남천) 심리로 열린 양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법원행정처장)의 62회 재판에 증인으로 나온 한승 전 법원행정처 사법정책실장은 “참고인 의견서 제출제도는 필요한 제도라 생각돼 외교부가 말하는 것은 하나의 단초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대법원에 계류된 일제 강제징용 재상고 사건에 외교부 의견을 반영하는 방법을 검토해 참고인 의견 제출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재판의 공정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안 했느냐”는 검찰의 질문에 대한 답이다. 한 전 실장은 전주지방법원장을 지내다 지난 2월 사직했다.

●외교부 의견 반영 위해 ‘참고인 의견서 제출제도’ 도입… “필요한 제도”

2014년 2월부터 2016년 2월까지 사법정책실장을 지낸 한 전 실장은 2014년 12월 당시 법원행정처장이던 박 전 대법관의 지시를 받아 강제징용 사건에 대한 외교부의 의견이 대법원 재판부에 전달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하도록 김종복 사법정책심의관에게 지시했다. 지난해 10월 25일 증인으로 나온 김 전 심의관은 “참고인 의견서 제출제도를 대법관회의(2015년 1월)에 의결할 수 있도록 신속하게 마련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증언했다.

한 전 실장은 “2014년 12월 초 박 전 대법관이 직접 처장실로 불러 외교부가 강제징용 사건 관련 의견을 내고싶어 하니 반영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해달라고 얘기했느냐”는 검찰의 질문에 “어떤 자리에서 지시했는지 정확히는 기억 못하지만 지시를 받았다”고 답했다. 이후 김 전 심의관에게 자료 수집과 검토 문건을 작성하도록 지시했는데 박 전 대법관에게 들은 것을 전달한 것이라고도 말했다. 김 전 심의관은 그해 12월 13일자 ‘강제징용 사건 외교부 의견 반영 방안 검토’ 보고서를 작성했다. 보고서에는 민사소송법에 따라 대법원 전원합의체나 소부에서 공개변론을 열어 참고인 자격으로 출석하면 의견을 진술할 수 있고 소송대리인을 통한 의견 제출 또는 재판부가 소송지휘권 행사의 방식으로 외교부에 의견서를 제출하도록 요청하는 등의 방안들이 적혔다.

다만 공개변론을 열어 외교부가 참고인 자격으로 참석해 의견을 내는 것에 대해 ‘이미 대법원이 결론을 낸 사안에 대해 부담이 있을 수 있음(외부에 잘못된 사인을 제공할 우려)’이라는 지적이 덧붙여졌다. 한 전 실장은 이런 부작용을 김 전 심의관에게 언급했느냐는 검찰의 물음에 “세부 내용까진 기억 못하고 있다”고 했다. 보고서에 적힌 여러 방안과 내용들에 대해서도 거듭 “세부적인 내용을 당시에 어떻게 이해했는지 기억 못한다”고 반복했다. 특히 당시 강제징용 재상고 사건에 대한 외교부의 입장조차 “당시에 어떻게 인식했는지 기억에 없다”고 말했다. 2014년 11월 이른바 ‘소인수회의’에 다녀온 뒤 박 전 대법관이 외교부가 강제징용 사건에 대한 의견을 내고 싶어한다며 검토를 했다는 것이 검찰의 공소사실의 배경이 됐는데 한 전 실장은 소인수회의 등 청와대나 정부 측에서 박 전 대법관에게 어떠한 의견을 전달했는지도 알지 못한다고 했다.

●“대법원장께 보고는 기억 안 나”… “당시 상황 기억 안 나” 반복

이 보고서를 양 전 대법원장에게 보고했는지에 대해서도 한 전 실장은 “특별히 보고드렸을 것 같지는 않은데 기억이 정확하지 않다”고 했다. “양 전 대법원장의 결심이 필요한 사항인가“ 다시 묻자 “규칙을 개정할 때 대법원장에게도 보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 전 대법관은 대법원 규칙 개정을 통해 (외교부 의견 반영을) 진행하는 게 좋다는 의견을 준 건가”라는 물음에는 “기억이 정확치는 않은데 기본적으로 민사소송법상 규칙 개정을 염두에 두고 현행 제도를 점검해보고 그런 지시에 따라 하지 않았을까 추측한다”고 설명했다.

당시 사법정책실은 2015년 1월 ‘이해관계자 의견제출 도입 위한 대법원 규칙 개정안 검토’ 보고서와 ‘참고인 의견서 제출제도 등 일부 규칙 개정안 요청’ 공문을 각각 작성했다. 한 전 실장은 두 문건을 두고 “처장님께는 보고했을 것 같은데 대법원장님께까지 보고드렸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난다”고 말했다. 이후 대법원은 규칙을 개정해 국가기관 등이 재판부의 요청에 따라 사건 관련 의견을 낼 수 있도록 하는 참고인 의견서 제출제도를 도입했다. 검찰은 당시 강제징용 사건의 재상고심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지닌 외교부의 의견이 반영되도록 하기 위해 이 제도를 도입했고 결과적으로 재상고심에 법원행정처가 개입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양 전 대법원장과 박 전 대법관 측에선 재판에 개입하려는 의도가 없었다며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이날 박 전 대법관 측 변호인은 한 전 실장에 대한 반대신문을 통해 “참고인 의견서 제출제도는 처장의 지시가 있기 전인 2014년 9월 상고법원 공청회에서 한 전 실장이 필요하다고 발표한 적이 있고 그와 관련된 연구가 축적돼 있던 상태였다”면서 “처장이 처음 지시한 내용은 강제징용 재상고 사건에서 외교부가 의견을 제출하고 싶어하는데 가능한 방안이 있는지 검토해보라는 것이었고, 방안이 있지만 법적 효과에 한계가 있어 참고인 의견서 제출제도도 논의된 것이어서 도입된 것”이라는 취지로 주장했다. 한 전 실장도 “그랬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박 전 대법관 측은 또 “누구라도 대법원에 계속 중인 강제징용 재상고 사건의 실체 판단에 영향을 미치고자 하는 의도로 참고인 의견서 제출제도를 도입한다는 의문을 가진 적이 있느냐”, “이 사건 공소장에는 박 전 대법관이 증인을 통해 김 전 심의관에게 검토하도록 한 것은 일방 당사자를 배제한 채 다른 당사자에게 유리할 목적이라고 돼있는데 이 공소장에 기재된 바와 같이 일방 당사자에게 유리하게 할 목적이었느냐” 등의 질문을 한 전 실장에게 건넸다. 한 전 실장은 두 질문에 각각 “없다”, “아니다”라고 답하며 재판에 개입할 목적이 없었다고 강조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서울신문은 전직 대법원장이 법정에 피고인으로 선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를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2019년 5월 29일부터 매주 최소 두 차례 이상 열리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재판을 지면 제약에서 벗어난 온라인을 통해 글로 생생하게 중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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