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원 “74년전 대한민국 이름조차 안 정해져” 언급 논란

입력 : ㅣ 수정 : 2019-08-16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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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임시정부가 정한 국호 인정 안 하나” 지적
독립 후 국호는 1948년 정해
제2의 건국절 논란 비화 될까
대한민국 임시정부청사 방문한 나경원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제74주년 광복절인 15일 중국 충칭에 있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청사를 방문해 김 구 선생 흉상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19.8.15  자유한국당 제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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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임시정부청사 방문한 나경원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제74주년 광복절인 15일 중국 충칭에 있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청사를 방문해 김 구 선생 흉상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19.8.15
자유한국당 제공 연합뉴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광복을 맞이 한 1945년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이름조차 아직 정해지지 않은 시점이었다”고 언급해 논란이다.

임시정부가 ‘대한민국 임시헌장’을 제정해 반포한 1919년에 이미 대한민국이라는 국호가 정해졌다고 봐야한다는 지적 때문이다.

반면 독립국가로서 대한민국의 국호가 정해진 것은 1948년 제헌국회였으므로 나 원내대표의 발언이 틀린 것은 아니라는 반론도 나온다.

나 의원은 광복절인 지난 15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발자취를 찾아 중국 충칭에 왔다며 사진과 함께 장문의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나 의원은 “74년 전 오늘 우리 민족은 일제 식민강탈로부터의 해방이라는 기쁨을 맞이함과 동시에 어떤 대한민국을 만들 것인가라는 고민도 함께 맞이했다”며 “아니, 사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이름조차도 아직 정해지지 않은 시점이었다”고 적었다.

1945년 8월 15일 당시 대한민국의 국호가 없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광복절 중국 충칭 찾은 한국당 원내지도부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를 비롯한 원내지도부가 15일 제74주년 광복절을 맞아 중국 충칭(중경)을 방문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와 한국광복군 총사령부를 찾았다. 나 원내대표는 사진과 함께 페이스북에 “문재인 대통령, 그리고 이 정권에서 벌어지는 여러 일들은 대한민국의 시계를 ‘해방 정국’으로 되돌린다는 느낌이 들었다”며 “호시탐탐 한반도 적화를 노리는 악의 세력 앞에서 여전히 낭만적 꿈에 젖은 이들이 불러대는 ‘가짜’ 평화 노래들이 흘러나온다”고 적었다.(나경원 원내대표 페이스북) 2019.8.15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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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복절 중국 충칭 찾은 한국당 원내지도부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를 비롯한 원내지도부가 15일 제74주년 광복절을 맞아 중국 충칭(중경)을 방문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와 한국광복군 총사령부를 찾았다. 나 원내대표는 사진과 함께 페이스북에 “문재인 대통령, 그리고 이 정권에서 벌어지는 여러 일들은 대한민국의 시계를 ‘해방 정국’으로 되돌린다는 느낌이 들었다”며 “호시탐탐 한반도 적화를 노리는 악의 세력 앞에서 여전히 낭만적 꿈에 젖은 이들이 불러대는 ‘가짜’ 평화 노래들이 흘러나온다”고 적었다.(나경원 원내대표 페이스북) 2019.8.15
뉴스1

이에 대해 임시정부의 뿌리를 부정하는 것이냐는 반박이 제기됐다.

김성회 정치연구소 ‘싱크와이’ 소장(전 손혜원 의원 보좌관)은 페이스북을 통해 “1919년 4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선포한 최초의 헌법인 임시헌장에서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칭하고 정치체제는 민주공화제로 정했다”며 “임시 정부가 선포한 최초 헌법을 인정하는지 나 의원은 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 임시정부는 1919년 4월 11일 대한민국 임시헌장을 반포해 대한민국을 국호로 정했다.

한인섭 서울대 법과대학 교수의 책 ‘100년의 헌법’을 보면 독립운동가들은 중국 상하이에 모여 임시정부의 국호를 정하는 문제를 논의했다.

‘신한민국’, ‘한양정부’, ‘대한민국’, ‘조선공화국’ 등의 후보가 1919년 4월 10일 제출됐고 격론 끝에 이튿날인 11일 새벽 ‘대한민국’이 공식 채택됐다.

국명을 실제 제안한 사람은 조소앙이었고 여운형 등 일부는 “‘대한’(제국) 때문에 우리가 망했다”며 대한이라는 말을 쓰는 데 크게 반대했다고 한다.

그러나 대한이라는 이름이 국민 정서에 깊숙이 스며들었고 “일본에게 빼앗긴 국호이니 다시 찾아 독립했다는 의의를 살리는 게 좋겠다”는 주장에 최종적으로 힘이 실렸다.
국가기록원 부산기록정보센터의 지하창고에서 보관중인 제헌헌법 사본. 2005.10.27  연합뉴스 자료사진

▲ 국가기록원 부산기록정보센터의 지하창고에서 보관중인 제헌헌법 사본. 2005.10.27
연합뉴스 자료사진

독립국가로서 대한민국의 국호가 정해진 것은 1948년이다. 1948년 5월 제헌국회 개원된 직후 구성된 헌법기초위원회는 가장 먼저 국호 문제를 논의했다.

제헌의원 대부분이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계승한다’고 생각했기에 무난하게 ‘대한민국’을 국호로 채택하리라 예상됐다.

그러나 ‘고려공화국’, ‘조선공화국’ 등으로 나라 이름을 부르자는 주장도 제기돼 투표를 거쳐 ‘대한민국’이라는 국호가 결정됐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나경원 원내대표는 1948년에 대한민국 국호가 정해졌다고 봤다는 짐작이 가능하다.

김성회 소장은 “1948년 국호가 정해진 것은 맞다. 나 의원이 광복절에 임시정부에 가서 1945년은 국호도 안 정해진 혼란한 상태였다는 말을 하는 이유가 뭘까?“라며 ”36년 일제치하에 대한민국의 이름을 걸고 싸우다 산화한 호국영령을 무시하는 말“이라고 비판했다.
1일 오전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에서 열린 제 99주년 3.1절 기념식 후 독립문까지 행진한  문재인 대통령내외가 참석자들과 만세를 부르고 있다. . 2018.03.01   청와대 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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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일 오전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에서 열린 제 99주년 3.1절 기념식 후 독립문까지 행진한 문재인 대통령내외가 참석자들과 만세를 부르고 있다. . 2018.03.01
청와대 사진기자단

대한민국 국호가 정해진 시점에 대한 논란은 뉴라이트 계열에서 제기한 ‘건국절 논란’과 닮았다. 이영훈 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등은 임시정부가 세워진 1919년이 아닌 독립국가로서 정부가 출범한 1948년을 건국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명박 정부는 2008년 건국 60년 기념식을 여는 등 이런 주장에 힘을 실어줬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2016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건국 68주년’이라고 언급했다.

반면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삼일절 경축사에서 ‘건국 100주년’이라고 여러 차례 언급해 임시정부를 계승했음을 분명히 했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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