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부모 “피임법만 알았어도…” 5억짜리 성교육 헛바퀴

청소년 부모 “피임법만 알았어도…” 5억짜리 성교육 헛바퀴

김정화 기자
입력 2019-05-12 22:38
수정 2021-06-23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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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덟 부모, 벼랑에 서다] <2> 어린 부모 100명의 속마음

뜬구름 잡는 성교육에 잦은 ‘임신 사고’

청소년 부모 임신 계획한 성관계 거의 없어
10대부터 생활용품으로 피임기구 인식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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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 전까지 한 번도 콘돔을 써 본 적이 없어요. 남자친구가 싫다고 해서 그랬는데 이렇게 쉽게 임신할 줄은 몰랐어요.”

한 살배기 아이를 키우는 김아연(18·가명)양은 학교에서 성교육을 제대로 받아본 적이 없다. 김양은 “콘돔을 어디서 사는지도 몰랐고, 질외사정만으로 임신을 막을 수 있을 줄 알았다”면서 “학교 성교육은 남녀 신체가 어떻게 생겼다는 것만 알려주고 실제 성관계에서 필요한 내용은 가르쳐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서울신문·초록우산어린이재단이 청소년기에 임신·출산한 부모 100명을 대상으로 생활 실태 심층조사를 진행해보니 임신한 이유에 대해 ‘피임에 실패해서’, ‘피임 방법을 몰라서’ ‘상대방의 강제에 의해서’라고 응답한 사람이 각각 41%, 24%, 16%(복수 응답)였다. 피임만 제대로 했다면 준비 안 된 임신을 막을 수 있었다는 뜻이다.

적지 않은 청소년은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다. 학교에서 임신·피임 등 실질적인 성교육은 아직도 터부시 되기 때문이다. 지난해 교육부·보건복지부·질병관리본부가 중고교생 청소년 6만 4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청소년 건강행태조사 통계’에 따르면 성관계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전체의 5.7%였지만, 이 가운데 피임 실천율은 59.3%에 그쳤다. 청소년의 성관계 경험률을 2016년 4.6%, 2017년 5.2%으로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통계청의 해당 연령(만 13~18세) 주민등록인구가 총 309만 6947명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 성관계 경험이 있는 청소년은 17만명 이상이라고 추산할 수 있다.

그런데도 교실 내 성교육의 내실이 떨어진다는 지적은 끊이지 않고 있다. 2015년 교육부에서는 약 5억원을 들여 ‘학교 성교육 표준안’을 발표했지만, ‘여자는 무드에 약하고 남자는 누드에 약하다’ 등 성차별적인 내용을 담고 있으며, 여성의 몸을 출산의 도구로 본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논란이 커지자 교육부는 해당 내용을 홈페이지에서 삭제하고 개편하겠다고 밝혔다.

어릴 때부터 제대로 성교육을 받지 못하면 성인이 돼서도 피임 등에 어려움을 겪는다. 2014년 박주현 서울대학교 보라매병원 비뇨기과 교수팀이 20~59세 여성을 대상으로 조사한 ‘한국 여성의 성생활과 태도에 대한 10년 간격의 연구’에 따르면 여성이 주로 하는 피임법(복수 응답)은 질외사정(61.2%), 생리주기 조절(20%), 남성 콘돔 착용(11%), 피임약 복용(10.1%) 순이었다. 특히 남성 콘돔 사용률은 10년 만에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 2004년 조사에서는 질외사정(42.7%), 남성 콘돔 착용(35.2%), 생리주기 조절(26.7%), 피임약 복용(9.1%) 순이었다.

윤정원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여성위원장(산부인과 전문의)은 “청소년 성 행태조사 등에 따르면 청소년은 성인과 달리 임신 12주 이후인 후기에 낙태 수술받는 비율이 훨씬 높다”며 “이는 성인보다 관련 지식이나 자원이 훨씬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질외사정이나 생리주기 조절은 피임실패율이 아주 높아서 피임법으로 볼 수 없는데도 이를 알지 못하는 청소년이 많다”며 “임신중절보다는 원치 않는 임신이 줄어야 하기에 지역사회 청소년과 성교육 활동가들에게도 피임 교육과 성교육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청소년을 위해 ‘100원 콘돔 자판기’를 국내 최초로 설치한 박진아 인스팅터스 대표는 “청소년기에 성교육만 제대로 받아도 불필요한 실수를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저 역시 학창시절 남들처럼 큰 도움이 안 되는 성교육만 받고 성관계는 ‘나쁜 것’처럼 여겨왔는데 막상 성인이 된 이후엔 아무런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성생활을 마주하게 됐다”면서 “콘돔을 사는 게 민망한 일이 아니고, 애인이 ‘불편하다’며 콘돔을 쓰지 말자고 하는 게 잘못됐다는 걸 아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고 말했다. 이어 “10대 초반부터 포르노그라피에 노출돼 성관계가 뭔지 다 아는 상황에서 쉬쉬하기만 하면 오히려 그릇된 인식만 심을 수 있다”면서 “청소년기부터 콘돔이 ‘성인용품’이 아닌 ‘생활용품’이고, 불이 나든 안 나든 항상 그 자리에 있는 ‘소화기’라고 인식하도록 성교육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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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13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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