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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년만의 귀환’ 영연방 6·25참전 노병 유엔공원 참배

‘65년만의 귀환’ 영연방 6·25참전 노병 유엔공원 참배

입력 2016-04-23 16:12
업데이트 2016-04-23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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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개월 포로’ 영국군 칸 대령 유품 유엔평화기념관에 기증

23일 오후 2시 부산 남구 유엔기념공원.

6·25 전쟁에 참전한 영연방 4개국(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참전용사 50명과 유가족 등 120명이 유엔기념공원을 참배했다.

각국 대표와 참전용사들은 6·25전쟁에서 희생된 유엔군 전몰장병 묘역에 헌화했다.

참전용사들은 함께 전투를 벌이다 숨진 전우의 묘비를 찾아 기도하면서 고인의 넋을 기렸다.

6·25 전쟁 당시 유엔군이 중국군의 진격을 저지한 ‘임진강·가평 전투’에 참가했던 참전용사들은 묘역을 둘러보면서 과거를 회상했다.

임진강 전투는 1951년 4월 22∼25일 영국군 29여단 5천700여 명이 중국군 3만여 명에 맞서 벌인 전투다.

당시 중공군은 서울을 다시 점령하기 위해 임진강 일대에서 파상공세를 퍼부었다.

특히 영국 ‘글로스터 대대’는 중국군 2개 사단에 포위돼 사흘 밤낮 동안 전투를 벌였다.

글로스터 대대는 고립된 상태에서 보급품이 없어 항공기로 겨우 물자지원을 받으며 버텼다.

사흘간 치열한 전투에서 글로스터 대대 59명이 전사하고 69명만 겨우 살아나왔다.

530명(장교 21명 사병 509명)이 적에게 포로로 잡혔다. 포로 중 153명은 부상자였다.

포로 중에는 영국군 글로스터 연대 1대대장을 맡은 제임스 칸 대령(1906∼1986)도 있었다.

독방에 감금돼 혹독한 사상교육을 받는 등 19개월 동안 포로생활을 했다.

그는 돌로 십자가를 만들어 예배를 보는 등 신앙으로 포로생활을 견뎌냈다.

1953년 영국으로 돌아간 칸 대령은 전쟁영웅으로 대우받았다. 6·25전쟁에서의 공로로 빅토리아 십자훈장과 영연방 최고 무공훈장을 받았다.

가평 전투는 같은 달 23∼25일 영 연방 3개 대대가 5배를 넘는 중공군의 진격을 막은 전투였다.

임진강·가평 전투는 영연방 참전용사의 희생이 컸지만, 국군과 유엔군이 후방을 재정비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줬고 결국 중공군의 침공을 격퇴하는 계기가 됐다.

임진강·가평전투 65주년을 기념해 영국은 이날 부산 남구에 있는 유엔평화기념관에 칸 대령의 유품을 기증했다.

유품 기증식에는 얼 하우 영국 국방부 국무차관, 글로스터박물관장, 영국 육군참모총장, 박승춘 국가보훈처장, 전외숙 유엔평화기념관장 등이 참석했다.

칸 대령이 포로생활을 하면서 돌로 만든 십자가(복제품)와 글로스터 군인박물관이 소장한 권총, 칸 대령이 입었던 군복, 빅토리아 십자훈장 최고 무공훈장(복제품) 등이 유엔평화기념관에 전시된다.

하우 국무차관은 “칸 대령은 65년 전 임진강전투에서 수많은 적군에 포위되어 움직일 수 없는 아군을 지휘하면서 적군의 진격을 막았고 나라는 구했다는 기억을 우리가 잊지 않기를 바란다”고 유품 기증 이유를 말했다.

박승춘 처장은 “6·25 전쟁에 참가한 참전용사들과 함께 유품을 기증받아 하늘에 있는 칸 대령도 기뻐할 것 같다”며 “전쟁포로가 되어서도 꺾이지 않은 칸 대령은 진정한 전쟁영웅으로서 빛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21일 국립현충원과 전쟁기념관, 22일 임진강전투 기념식에 참석한 영연방 참전용사와 유가족들은 이날 유엔평화기념관에서 마련한 환영 오찬행사에 참가했고 26일 출국한다.

영연방 참전용사와 유가족들의 한국 방문은 1975년부터 국가보훈처 주관으로 시작됐고, 지금까지 모두 3만여 명이 한국을 찾았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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