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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法 만들어도 잠자는 법원 앞에선 무용지물

장애인法 만들어도 잠자는 법원 앞에선 무용지물

입력 2016-04-19 08:51
업데이트 2016-04-19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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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학대사건 판결 분석…판사 인식이 더 문제

2010년 어느 여름 오후. 지적장애 3급인 여성 A(33)씨는 교회에서 알고 지내던 한 남성과 공원 벤치에 앉아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남성의 손이 A씨 어깨를 감싸더니 다른 한 손이 웃옷 안으로 들어왔다.

A씨가 당황하는 사이 손은 바지 속까지 넘봤다. A씨는 일주일 후 이 사실을 교회에 알렸고, 남성은 장애인인 A씨를 성추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하지만 법원은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남성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A씨의 사회성 지수가 8세 수준인 점은 인정되지만 사건 당시 그가 다리를 오므리는 등 소극적 저항을 했다며 ‘항거불능 상태는 아니었다’고 판단한 것이다.

검사는 항소했지만 2심도 ‘A씨가 반항을 할 수 있었음에도 충분히 하지 않았다’며 무죄로 봤다. 판결은 대법원에 가서야 “피해자가 정신적 장애인이란 사정을 충분히 살피지 않았다”는 이유로 파기됐다.

경기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장 최정규 변호사(사법연수원 32기)는 19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피해 장애인의 특성을 분석하는 대신 눈에 보이는 상황만으로 가해자 처벌을 면해주는 판결들이 아직도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1981년 장애인의 날이 제정된 지 30년 넘게 지났지만, 소수자 인권의 보루가 돼야 할 법원이 장애인 권익에 눈을 감은 판결을 내린다는 비판은 여전하다. 장애인 재판 당사자의 특성을 간과하고 법 규정만을 내세우며 장애인 보호·차별 시정에 소홀한 경우가 아직도 벌어지는 셈이다.

대표적 사례가 ‘염전노예’ 사건이다. 지적 장애인을 10년 넘게 노예처럼 착취한 염전주 일부가 최근 법원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범행을 뉘우치거나 피해자와 합의했다는 이유다. 최 변호사는 “법원이 염전노예 사건을 장애인 학대가 아니라 단순 임금체불 사건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학교 교사 등이 장애 학생을 장기간 성적으로 유린한 ‘도가니’ 사건도 마찬가지다. 피해자들이 지방자치단체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지만 법원은 ‘소멸시효가 지났다’며 패소 판결을 내렸다. “사건 배경 이해 없이 법을 단순·문리적으로 해석해 면죄부를 줬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최 변호사는 장애인의 법적 권리가 실질적으로 보장되기 위해선 장애인 보호법을 하나 더 만드는 것보다도 현행법을 적용하는 판사들의 인식이 먼저 개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 같은 내용을 보고서에 담아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가 21일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여는 ‘장애인학대와 인권침해 예방을 위한 실천연구대회’에서 발표한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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