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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발레 콩쿠르선 펄펄 무대에선 벌벌 왜

한국발레 콩쿠르선 펄펄 무대에선 벌벌 왜

입력 2010-09-01 00:00
업데이트 2010-09-01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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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교에 올인… 예술성엔 신경 못 써

요즘 한국 무용수들이 국제 유명 발레 콩쿠르를 휩쓸다시피 하고 있다. 국위 선양을 톡톡히 해주고 있는 셈. 그런데 이상한 얘기가 들린다. 마냥 박수칠 일만은 아니라는 것. 도대체 왜? 민간 발레단을 처음 만든 제임스 전 서울발레시어터 상임안무가와 주연급 남자 무용수(발레리노), 전직 여자 무용수(발레리나) 3명에게서 한국 발레계 현실에 대한 ‘통렬한 뒷담화’를 들어봤다. 무용수들은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불이익을 감안해 익명으로 처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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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크렘린발레단의 지난해 내한공연 모습. 발레 선진국들은 콩쿠르 성적이 아닌 예술성에 큰 비중을 두고 조기 발레교육을 시킨다. 서울신문 포토라이브러리
러시아 크렘린발레단의 지난해 내한공연 모습. 발레 선진국들은 콩쿠르 성적이 아닌 예술성에 큰 비중을 두고 조기 발레교육을 시킨다.
서울신문 포토라이브러리
●심사위원 눈도장 위해 유학 가기도

외국 무용수들은 콩쿠르를 좋은 경험 정도로 이해하는 반면 한국 무용수들은 콩쿠르에 ‘올인’한다. 심지어 어떤 학생들은 눈도장을 찍기 위해 콩쿠르 심사위원이 있는 학교로 유학가기도 한다. 교육기관도 콩쿠르에 유리한 내용을 가르친다.(발레리노 A)

외국 무용수들은 우리처럼 콩쿠르에 목숨 걸지 않는다. 우리끼리 치열하게 경쟁하고, 상 타면 좋아하고, 언론도 박수쳐 주고…. 반복되는 모양새를 보며 결국 우리만의 잔치는 아닌지 회의가 들 때가 있다.(전직 발레리나 B)

한국 발레는 훈련이 혹독하기로 유명하다. 오로지 수상을 목표로 집중 훈련을 한다. 그러다 보니 예술성과 창의성은 상대적으로 퇴색된다. “기술적으로는 뛰어나지만 예술적으로 갈 길이 멀다.”는 평가는 대부분의 한국 발레 공연에 붙는 꼬리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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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쿠르는 기교만 평가… 실력 가늠 어려워

콩쿠르 성적이 한 국가의 발레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라고 보긴 어렵다. 콩쿠르 무대에서 발레리노는 기껏 1분, 발레리나는 2분 정도를 심사위원에게 보여준다. 작품이 아니라 기술을 평가받는 자리인 셈이다.(제임스 전)

단적으로 말하면 3바퀴 도는 사람보다 4바퀴 도는 사람이, 4바퀴 도는 사람보다 5바퀴 도는 사람이 유리한 게 콩쿠르다. 예술성은 그다지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기교, 이게 콩쿠르의 관건이다.(발레리나 B)

한국 발레는 아직도 주변부다. 이런 까닭에 발레의 본고장에서 인정받았다는 ‘보증서’가 필요하다. 한국이 유난히 콩쿠르에 집착하는 이유다. 예술을 등수로 서열화하는 게 맞느냐는 진부한 논란은 차치하고라도, 콩쿠르 의존도가 높다 보니 교육기관이 예술이 아닌 기교를 가르치는 곳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냉소가 나온다.

●군면제 노린 발레리노들도 한몫

발레리노에게 콩쿠르는 절대적이다. 병역 면제 혜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발레리노에게 군 입대는 무용 생명이 끝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하루라도 스트레칭을 거르면 근육이 굳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니 콩쿠르에 목을 매는 것이고, 좋은 성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발레리노 A)

병무청에 따르면 병역 혜택을 받는 남자 무용수는 해마다 10명 안팎이다. 국내 3대 발레단(국립·유니버설·서울발레씨어터)만 놓고 보더라도 발레리노는 100명이 넘는다. 한국 발레리노들이 콩쿠르에서 강한, 또 하나의 ‘씁쓸한’ 이유다. 계속 이어지는 A씨의 고백.

수상에 성공한 주연급 발레리노를 제외하면 대부분은 군 입대를 전후로 무대에서 사라져 간다. 세계적 수준의 조연급 발레리노 양성이 거의 불가능한 게 한국 현실이다.

●일본은?

10년 전만 해도 일본이 딱 우리 모습이었다. 주요 콩쿠르를 휩쓸었다. 하지만 이젠 콩쿠르에 집착하지 않는다. 우리도 콩쿠르 병을 극복해야 한다. 물론 콩쿠르를 통해 기량이 발전되는 측면도 있지만 발레의 핵심은 기술이 아니라 예술에 있다. 한국 발레도 이점을 유의해야 한다.(제임스 전)

러시아에는 ‘훌륭한 무용수는 5년이면 만들어지지만 훌륭한 군무(群舞)는 100년 넘게 걸린다.’는 말이 있다고 세 사람은 입을 모았다. 콩쿠르 천재 몇 명이 아니라 구성원 모두가 훌륭한 예술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는 발레 문화가 더 중요하고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2010-09-01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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