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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움직여야 세상이 움직인다

내가 움직여야 세상이 움직인다

입력 2010-08-01 00:00
업데이트 2010-08-01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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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최초로 국제기구 수장에 선출된 이종욱 박사님. 인생 선배이자 공중보건에 종사하는 의사들의 어른이기도 한 그분을 처음 만난 것은 1990년 김포국제공항에서였다. 그 후 복지부 공무원으로 근무하면서 수시로 부탁드릴 일이 있으면 세계보건기구 서태평양 지역사무처에 계신 이 박사님께 직접 전화를 드렸다. 황열 백신이 제때 구입되지 않아서 골머리를 앓았을 때도 박사님께 연락을 드려 해결할 수 있었다. 박사님을 더 가까이서 뵐 수 있었던 것은 2003년 9월에 세계보건기구 제네바 본부에 파견근무를 나가면서부터다. 당시 이종욱 박사님은 치열한 선거전 끝에 세계보건기구 사무총장으로 당선돼 7월부터 임기를 시작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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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네바 시내의 한국 식당에서 저녁을 같이 하면서, 이 박사님은 막 출범한 본인의 참모진들에게 들려주셨다는 말씀을 내게 해주셨다. 2005년까지 에이즈 감염자 300만 명에게 치료제를 공급한다는 ‘3 곱하기 5’라는 선거공약이 있었는데, 당시 이 공약은 현실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내외로 받고 있었다.

“9명의 사무차장을 비롯한 참모들에게 이렇게 얘기했어. 무슨 일을 해보기도 전에 이래서 안 되고 저래서 안 되고 하는 태도는 버리라고. 그 일이 옳다면 바로 행동에 옮기기만 하라고. 옳은 일을 하면 세상이 바뀐다고 말이야. 돈도 따라오고 사람들도 따라오고 결국 그 일이 성사될 거라고.”

평소 보아온 부드러운 모습과는 달리 결의에 찬 모습이었다. 그 후 수시로 저녁 자리에서 만나 이런저런 인생의 경험담, 본인이 만난 세계 각국의 지도자들에 대한 평, 한국 국내 상황에 대한 생각들을 피력하시곤 했다. 무엇보다 젊은이들의 꿈에 관심이 많으셨다.

“나는 젊은이들을 만나면 장차 뭐가 될지 물어보지. 대개 우리나라 젊은이들의 장래 설계는 추상적인 경우가 많아. 나는 구체적이고 당찬 꿈, 미래 설계를 가진 사람을 좋아한다네. 사실 세계에서 1등은 별거 아니야. 한국에서 1등 하라고. 그럼 세계에서는 두말없이 1등이야.”

실제로 세계보건기구에 근무하는 인턴이나 단기 수련과정으로 세계보건기구를 방문하는 한국인 젊은이들을 만나는 일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그들과 꼭 함께 식사를 하면서 장래희망을 물어보고 용기를 북돋워주셨다.

또한 기성세대들에게는 아랫사람이 실수를 하더라도 용서하고 다시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셨다. 세계보건기구 총회에 온 한국 복지부 장관과 그 수행원들이 참석한 저녁 자리에서 박사님은 비엔나 필하모닉 신년음악회에 초대를 받아 갔던 때의 일을 들려주셨다.

“연주 도중에 트럼펫 주자가 악보에 없는 소리를 냈어요. 천하의 비엔나 필에서 실수한 거지요. 나중에 연주가 끝나고 단장을 만난 자리에서 그 얘기를 했더니 그러더군요. 그런 실수가 있어도 그냥 넘어간다는 겁니다. 천하의 비엔나 필 단원도 실수할 수 있다, 그러나 다음에 열심히 이를 만회하면 된다 하면서요. 장관님, 직원들 중에 혹시 실수한 직원이 있어도 너무 나무라지 마시고 꼭 기회를 또 주시기 바랍니다.”

일을 잘해보려다가, 아니 새로운 일을 시도해보려다가 실수가 생기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용서하고 도리어 기회를 더 주어야 한다고 박사님은 항상 강조하셨다. 사회생활에서 실수를 용서받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낙인이 찍히기도 하고 경쟁자에게 이용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 박사님은 말씀하셨다. 용기를 가지고 이겨내야 하고 또 보란 듯이 다음번에 성공해야 한다고. 아직도 귀와 눈에 생생한 이 박사님의 모습과 말씀들은 등불과도 같은 추억이다.

권준욱_ 미국 미시간대학교 보건학 박사이며,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 전염병관리과장입니다. 2003년 9월부터 2006년 3월까지 이종욱 박사가 사무총장으로 있던 세계보건기구 제네바 본부에서 파견근무를 했습니다. 이종욱 박사의 평전 <옳다고 생각하면 행동하라>를 썼으며, 최근 출간된 어린이, 청소년을 위한 전기 <세계의 보건 대통령 이종욱>의 감수를 맡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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