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결말을 안다. 열일곱 어린 왕이 공생의 활끈에 목이 졸려 숨을 거둔다는 것을. 그런데도 책장을 넘기는 손은 여전히 떨린다. 춘원 이광수의 ‘단종애사’는 그런 소설이다.
1928년 한 일간지에 연재를 시작한 춘원은 용상에서 끌려내려온 단종을 한 인간으로 다시 세운다. 태어난 지 하루 만에 어머니를 잃고, 열두 살에 부왕 문종마저 잃은 아이. 왕관은 씌워졌으나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던 소년의 내면을, 춘원은 서정적이면서도 비장한 문체로 복원한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의 폭발적 흥행 이후 춘원의 ‘단종애사’를 다듬은 책들이 출간 붐이다. 고전의 장벽을 낮추면서도 특유의 리듬과 온도를 살려냈다는 점이 돋보인다. 실록과 야사가 뒤섞인 역사의 빈틈은 문학적 상상력으로 채우되, 상상의 한계는 결코 역사를 넘어서지 않는다.
다만 춘원 소설의 문체 그대로는 아니다. 대부분의 소설이 원형을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상당 부분의 문장을 현대의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다듬었다.
소설은 단종의 유배 여정을 따라 천천히 고도를 높인다. 한양을 떠나 영월 청령포에 이르는 길목마다 지명들이 슬픔을 증언한다. 임금이 오르다 지쳐 이름을 물었다는 군등치, 서산에 지는 해를 보며 절을 했다는 배일치. 지명 하나하나가 어린 왕의 탄식으로 새겨진 비문처럼 읽힌다. 삼면이 강으로 막히고 한쪽은 험준한 육육봉에 가로막힌 청령포, 그 고립무원의 공간에서 단종의 내면은 더욱 깊어진다. 원망보다 체념이, 분노보다 고요가 먼저 다가오는 소년의 심리가 깊은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최근 출간된 책들에서 주목할 점은 원전에 없던 엄흥도 이야기를 새롭게 덧붙였다는 데 있다. 강물에 버려진 단종의 시신을 거둬 산기슭에 묻은 영월 호장(지금의 읍장) 엄흥도. 그의 어깨에는 죽은 소년의 무게와 세조의 서슬 퍼런 눈초리가 동시에 실렸을 것이다. 사약을 들고도 차마 내밀지 못한 왕방연의 죄책감 역시 소설 속에서 씁쓸한 여운을 남긴다.
인간의 의리와 절개는 어디까지 지켜질 수 있을까. 사후 240여 년이 지나서야 복위된 단종처럼, 500년의 시간을 건너 다시 호명된 그의 삶과 죽음은 여전히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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