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당시 방파제 일부와 조각상 등 공개
튀르키예(터키) 남부의 고대 항구 ‘솔리’에서 발굴된 열주들. 방파제 진입로 건축물 등에 쓰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튀르키예 문화관광부 제공
솔리는 ‘지중해의 진주’라 불리는 튀르키예 남부 메르신에 있다. 로마 공화정 때의 장군이자 정치가였던 폼페이우스가 세운 항구 도시로, 당시 로마에서 교역이 가장 활발했던 곳으로 꼽힌다. 기원전 333년 알렉산더 대왕 시기에 헬레니즘의 지배를 받으며 전성기를 누리던 솔리는 이후 해적의 공격 등으로 쇠락을 거듭하다, 기원전 67년 폼페이우스가 해적을 정벌하며 옛 영화를 되찾았다. 525년 킬리키아 대지진으로 황폐화된 이후 19세기 유럽 여행자들이 쓴 기록 속에서만 목욕탕, 극장 등의 존재가 언급돼 왔다.
고대 항구 ‘솔리’에서 발굴된 열주와 조각상들. 튀르키예 문화관광부 제공
손원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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