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훈 서울대교수 논문 발표
단원 김홍도의 연행도(燕行圖)는 수원 화성 건설용?
연행도의 산해관 동라성.
정재훈(43)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연구교수는 이 같은 내용의 ‘연행(燕行) 길에서 본 중화(中華)문명’이란 논문을 17일 서울대 신양인문학술정보관에서 열리는 인문연구 심포지엄에서 발표할 예정이다.
정 교수는 논문을 통해 “연행도가 김홍도의 작품일 뿐 아니라 그가 정조 13년(1789년) 연행사(조선이 청나라에 보낸 사신단)를 따라간 것 자체가 정조의 명령에 의해 수행되었고, 당시 최고 현안이었던 화성 건설과 직접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정 교수는 그 근거로 13폭짜리 연행도의 주된 소재가 명의 멸망, 청의 등장과 관련된 역사적 장소라는 점과 조선 사신들이 주로 방문한 곳에 대해 상세히 묘사하고 있는 점 등을 들었다. 그림에 나오는 조양문이나 산해관, 동라성, 정양문 등은 모두 성곽 제도와 관련된 장소다. 즉 화성 건축에 필요한 정보와 그에 관련된 곳을 상세하게 그렸다는 것이 정 교수의 주장이다.
정조 13년은 사도세자의 묘 ‘영우원’을 화성으로 옮기는 천장(天藏)이 결정된 해다. 김홍도가 동지사행에 포함되기 한달 전의 일이었다. 따라서 새로 읍성을 옮겨야 하는 시급한 상황에서 중국의 성곽 건축에 대한 관심이 높을 수밖에 없었다. 정 교수는 “실제 수원 화성은 김홍도가 그려온 산해관의 동라문이나 조양문과 매우 유사한 형태를 띠었고, 벽돌을 활용해 지은 것도 중국성의 특징을 받아들인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결국 김홍도의 중국행은 알려진 것처럼 서양화법에 대한 연구목적보다 화성 건설에 앞서 중국 베이징(북경)을 참고하기 위한 정조의 의도가 반영됐다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당시 김홍도가 정조의 특별화원으로 규장각(자비대령화원)에 속해 있으면서 정조가 요구하던 그림을 그린 사실을 염두에 두면 충분히 예측가능한 일이었다는 설명이다.
정 교수는 “동지사행에 참여하기 바로 전 해인 정조 12년 가을, 정조의 특명으로 금강산 등 관동지방을 유람하며 ‘금강사군첩’을 남긴 것은 동지사행의 사전 작업이었다고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2009-12-16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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