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제를 하면서도 지금 내 마음은 문구점에 가 있어요. 학교 앞 문구점에서 연필이나 공책, 색종이 같은 문구만 파는 게 아니잖아요.
쫀쪼니, 쫀듸기, 달고나, 짱셔요…. 그리고 여러 가지 색색깔의 새콤달콤 맛있는 사탕들….
우리 엄마는 용돈을 절대로 안 주거든요. 나하고 같은 2학년 아이 중에 날마다 천 원씩 용돈을 받는 친구들도 있는데 말이에요.
‘나도 용돈을 받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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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얼마나 좋겠어요. 날마다 불량식품을 실컷 사 먹을 수 있잖아요.
이상하게 엄마가 사 주는 간식거리는 맛이 없어요. 어른들이 먹지 말라는 불량식품은 어떤 줄 알아요? 그야 뭐 무지무지 먹고 싶고, 엄청나게 달콤하고, 아주아주 맛나지요. 친구들이 불량식품을 사 먹을 때 조금씩 떼어 주어서 잘 알거든요.
숙제는 하기 싫고, 불량식품은 먹고 싶고….
나는 숙제를 하다 말고 발딱 일어섰어요. 엄마는 오랜만에 친구들 모임에 가고 아빠는 거실에서 티브이를 보고 있었어요.
거짓말을 하기로 마음먹고 나니까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어요. 그런데 하고 싶은 말 대신 엉뚱한 말이 툭 튀어 나왔어요.
“아빠, 티브이 보세요?”
“응?”
“헤헤, 티브이 보시냐고요?”
“이 녀석아, 알면서 왜 물어?”
“그냥.”
나는 상냥하게 말하며 아빠 어깨를 주물러 드렸어요.
“진희, 너 아빠한테 할 말 있지?”
“어떻게 알았어요?”
“갑자기 아빠한테 존댓말 하며 예쁜 척하는 거 보면 다 알아.”
나는 속으로 흠칫 놀랐어요. 아빠한테 거짓말 하려는 내 마음을 들켜 버린 것 같았어요.
나는 아빠 몰래 숨을 크게 들이 쉬었어요.
“아빠, 공책 사게 천 원만 주세요.”
공책 산다는 건 거짓말이고 그 돈으로 불량식품을 사 먹을 생각이에요. 한번 말문이 트이자 거짓말이 술술 나왔어요.
“국어 공책도 사야 하고, 알림장도 사야 돼. 공책 때문에 어제는 선생님한테 혼났어. 다 쓴 공책을 모르고 그냥 가지고 갔거든.”
“공책 때문에 선생님한테 혼났다고?”
아빠는 뭔가 생각에 잠겼어요. 무슨 말을 할 듯하다 말고 지갑에서 천 원짜리 한 장을 꺼내 주었어요.
“공책 사가지고 민지네 가서 숙제 하고 올게.”
나는 학교 갈 때처럼 가방을 챙겨 나왔어요. 나는 곧장 민지네 집으로 갔어요.
“민지야, 우리 문방구에 가서 맛있는 거 사 먹고 숙제 하자.”
내가 돈을 보여 주며 말하자 민지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어요.
“와, 신난다! 얼른 가자.”
“쉿! 조용히 해. 너네 엄마 다 듣겠다.”
“히히, 알았어.”
우리는 문방구에 가서 먹고 싶은 것을 몽땅 샀어요. 모두 다 100원짜리로만요. 그리고 그것을 가지고 학교 운동장 제일 구석진 곳으로 가서 맛있게 먹고 돌아와 얼른 숙제를 했어요.
집에 오자 아빠가 소리 없이 웃더니 말했어요.
“진희야, 아까 너 공책 때문에 선생님한테 혼났다고 했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어요. 거짓말한 것 때문에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어요.
갑자기 배가 아픈 것 같았어요. 불량식품이 잔뜩 들어가 있는 배가 빵빵하게 부풀어 오르는 것 같았요.
갑자기 아빠가 말했어요.
“진희야, 이야기 하나 해 줄까?”
“무슨 이야기?”
“들어 보면 알아.”
너처럼 꼭 3학년 때 일이야. 어느 날 아침 나는 학교에 가다 말고 집으로 재빨리 뛰어갔어. 공책을 사야 하는데 깜빡하고 돈을 안 타 갔거든.
삽짝 문을 들어서며 소리 쳤지.
“공책 사게 돈 좀 주세요.”
설거지를 하던 엄마가 부엌문 밖으로 얼굴을 내밀었어.
“공책 한 권이 얼마냐?”
“20원요.”
엄마는 젖은 손으로 방에 들어가더니 이내 도로 나왔어. 지금 집에 돈이 한 푼도 없다는 거야. 내가 울상을 지으며 서 있자 엄마는 얼른 부엌에서 달걀 두 개를 가져왔어.
“달걀 하나에 10원이다. 이거 두 개 가지고 가서 공책하고 바꾸어 써라.”
아휴, 달걀하고 공책하고 바꾸어 쓰라니, 난 무척 창피했어. 달걀하고 공책을 바꾸는 걸 누가 보기라도 해봐. 얼마나 창피하겠어.
뭐? 달걀을 공책하고 바꾸고, 재미있을 것 같다고?
그거야 지금 네가 그렇게 생각하니까 그렇지. 네가 그때 나였다면 넌 아마 더 창피했을지도 몰라. 전에 우리 반 누가 달걀을 연필하고 바꾸어 쓰는 걸 보고 아이들이 막 놀려 먹었거든. 연필 살 돈도 없는 가난뱅이라고.
학교 정문 앞에 있는 문구점은 언제나 아이들로 붐볐어. 그러니까 아무도 몰래 공책하고 달걀하고 바꿀 수도 없잖아. 누구든 보기만 하면 금방 소문을 내고 말테니까.
달걀을 주머니에 하나씩 나누어 넣고 학교로 가는 발걸음이 무척이나 무거웠어.
느릿느릿 학교로 가던 나는 길에서 벗어나 개울가로 갔단다. 나뭇가지로 개울가 둑을 판 다음 달걀 두 개를 흙속에 묻어 두었어. 그리고 얼른 학교로 갔지.
선생님한테는 공책도 없이 공부하러 덜렁덜렁 왔다고 혼이 났단다. 대나무뿌리 회초리로 손바닥을 다섯 대나 맞았어.
무척 아팠지만 참았어. 친구들한테 놀림 당하는 것보다 선생님한테 회초리 맞는 것이 차라리 나았으니까.
그 달걀은 어떻게 한 줄 아니?
공부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친구하고 구워 먹었어. 어떻게 구워 먹었냐 하면, 먼저 진흙으로 달걀을 두툼하게 싸는 거야. 그래서 그걸 땅속에 묻고, 달걀 묻은 자리에 마른 나뭇가지를 모아 모닥불을 피우는 거지.
모닥불 열기 때문에 땅 속에 묻은 달걀이 맛있게 잘 익거든. 집에 돌아와서는 거짓말을 했어. 학교 가다가 넘어져서 달걀 두 개를 다 깨버렸다고.
다음날 나는 또 공책 사게 돈을 달라고 했지.
“돈 없다. 달걀하고 바꾸어 써라.”
그러면서 엄마는 또 달걀 두 개를 손에 쥐여 주시는 거야. 당연히 오늘은 돈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어쩔 수 없이 또 달걀 두 개를 가지고 가는 수밖에. 마당에서 모이를 쪼고 있는 닭들이 미워 보였어. 우리 집에 닭이 없으면 달걀도 없었을 테고, 그러면 이런 일도 없었을 텐데 하고.
어른들 몰래 나는 닭들한테 괜히 심술궂은 발길질을 했어. 지금 생각하면 그 닭들이 너무나 고마운데 말이야.
힘없이 터덜터덜 걷다가 나는 또 달걀을 땅속에 묻어 두고 학교로 갔어. 친구들한테 놀림 받는 것은 정말 싫었거든.
나는 선생님한테 또 매를 맞았지. 이번에는 열대나 맞았어. 얼마나 아프던지, 매를 맞고 돌아서는데 눈물이 뚝 떨어지더라.
“와, 많이 아팠겠다. 그런데 땅에 묻은 두 번째 계란은 어떻게 했어?”
“어떻게 했을 것 같니?”
“또 구워 먹었을 것 같은데.”
“아니야. 이번에는 학교에서 멀리 떨어진 가게에 가서 군것질을 했단다. 계란하고 먹고 싶은 것하고 다 바꾸어 먹었지. 한 개에 5원씩 하는 풀빵하고도 바꾸어 먹고, 쫄쫄이하고 달고나 하고도 바꾸어 먹고….”
“어, 쫄쫄이하고 달고나는 지금도 있는데!”
“정말이야? 그런 불량식품이 지금도 있다니 놀랍구나.”
“달걀로 군것질하고, 집에 가서 안 혼났어?”
“네 할머니는 내가 당연히 공책하고 바꾼 줄 알았겠지.”
나는 사지 못한 공책은 어떻게 했냐고 물었어요.
“또 공책 없이 학교에 갈 수는 없잖아. 그래서 생각 끝에 달걀을 훔치기로 했어. 날마다 닭장에서 알을 꺼내오는 것이 내가 할 일이었거든. 그날 저물녘에 달걀을 꺼내면서 그 중 두 개를 아무도 몰래 숨겼지. 삽짝 밖 호두나무 아래 풀숲에.”
“정말?”
“다음날 아침, 숨겨 놓은 달걀을 가지고 아주 일찍 집을 나섰어. 아이들이 없을 때 문방구에 가서 공책하고 바꾸려고. 다행히 아이들 눈을 피해 무사히 공책하고 바꾸었단다.”
아빠가 머리를 긁적이며 나를 바라보았어요. 처음엔 배가 많이 아픈 것 같았는데 이상하게 아빠 말을 듣다 보니 배 아픈 것이 가라앉았어요.
그래도 아빠를 속이고 거짓말을 해서 돈을 타 내어 거짓말을 한 것이 마음에 걸렸어요.
‘아빠는 나보다도 더 했는데 뭘.’
우리 아빠는 거짓말을 하고 달걀까지 훔쳐 냈잖아요.
나는 마음이 조금 놓였어요. 아빠한테 거짓말한 것도 들키지 않았고, 불량식품을 먹었는데도 배가 안 아팠기 때문이죠.
‘불량식품 먹으면 배탈 난다고? 흥, 엄마는 거짓말쟁이. 히히, 난 이렇게 괜찮잖아.’
그래도 혹시 배 아프면 어떡하나 생각하며 배를 문질러 보았어요. 해가 지고 날이 어두워져도 나한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요.
하지만 그날 저녁, 민지네 집으로 전화를 했다가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어요. 민지 좀 바꾸어 달라니까, 민지 엄마가 숨넘어가는 소리로 이러는 거예요.
“진희야, 우리 민지 지금 막 토하고 난리 났다! 뭘 잘 못 먹어서 그런지, 배 아프다고 데굴데굴 구르고 토한다니까! 얘, 얼른 전화 끊자. 민지 데리고 응급실에라도 가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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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몇 년 전 북한강변으로 이사하고 봄부터 아이들하고 닭을 길러 보았습니다. 암탉이 알을 낳고, 그 알을 품어 병아리가 깨어나자 아이들이 무척 좋아했습니다. 이듬해가 되자 닭은 이십여 마리로 불어났답니다. 달걀을 많이 낳아 이웃집하고 나누어 먹었지요. 달걀을 보니, 어릴 적 문방구에 가서 달걀을 공책이나 연필하고 바꾸고, 불량식품하고도 바꾸어 먹던 기억이 났습니다.
●작가약력
▲1963년 충남 청양 출생.
▲1996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
▲200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동화 당선.
▲동화집으로 ‘여우는 어디로 갔을까?’, ‘잘가라, 산도깨비야’ 등이 있음.
▲지금은 경기도 양평 북한강변에서 가족과 텃밭을 가꾸며 살고 있음.
2009-04-06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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