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헌의 캔버스 세상] ‘종말과 시작의 공존’ 카키넨의 흰빛

[이주헌의 캔버스 세상] ‘종말과 시작의 공존’ 카키넨의 흰빛

입력 2008-07-29 00:00
수정 2008-07-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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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생각을 해 본다. 천국에 가는 길은 매우 밝을 것이다. 찬란한 빛이 비쳐 나올 것이고 나를 영접하는 천사는 밝디 밝은 흰 옷을 입고 있을 것이다. 그 천사의 인도를 받아 다다른 천성은 눈보다 더 흴 것이고, 그 성에서 나를 환영하는 사람들은 백옥같이 흰 피부를 갖고 있을 것이다. 천국은 이렇게 밝은 빛, 흰빛으로 우리 심안(心眼)에 각인되어 있다. 천국이 흰빛으로 가득 차 있다고 우리가 믿는 것은 흰빛이 부활을 상징하고, 새로움과 진리, 순결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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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에 가고자 하는 사람은 그러므로 이 흰빛의 가치를 따라 살아야 할 것이다. 늘 반성하고 정진하며 순결하게 살아야 할 것이다. 물론 이렇게 산다고 그대로 천국에 이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천국에 가기 위해 우리는 반드시 죽어야 한다.

죽음은 그러나 빛의 영역에 속해 있지 않다. 암흑의 영역에 속해 있다. 천국의 빛에 이르기 위해서는 이 육체의 암흑을 거쳐야 한다. 그런 점에서 흰빛은 궁극적으로 암흑의 검정과 분리될 수 없다. 죽음이 없이는 어떤 부활도, 천국도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아리 카키넨의 사진전(8월10일까지, 갤러리 뤼미에르)은 이 흰빛과 검정의 변증법에 대해 사유하게 하는 전시다. 카키넨의 작품은 대부분 흰색으로 덮여 있다. 미술관을 찍은 사진에서는 그림과 조각이 흰 천을 뒤집어쓰고 있고, 식당을 찍은 사진에서는 식탁과 벽이 흰 천으로 뒤덮여 있다. 계단을 찍은 사진에서도, 침실을 찍은 사진에서도 우리는 흰 천의 편재를 보게 된다.

이 흰 천의 편재는 속죄와 거듭남, 새로움을 향한 의지를 보여줌과 동시에 사멸과 사라짐, 부재를 지시하는 기호로도 기능한다. 주검을 덮은 천처럼 카키넨의 흰 천은 종말과 어둠, 검정에 대한 강한 환기력을 지닌 채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모두 3만 개의 흰 손수건을 쌓아놓고 찍은 ‘30,000’ 시리즈는 이런 ‘종말 의식’의 정점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지금은 40만 명이 넘어버렸지만, 이라크 전쟁의 희생자 숫자와 관련해 한때 부시 미국 대통령이 3만이라는 숫자를 빈번히 언급한 것을 의식해 만든 이 작품은 ‘오만과 군수산업의 결합을 위한 기념물’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물론 사람들이 그 숫자를 어떻게 기억하든 희생된 영혼들에게는 그게 그리 중요한 게 아닐 것이다. 그들을 뒤덮은 암흑을 우리 모두의 책임으로 통감하는 것, 그들의 부재에 대해 우리가 진정으로 아파할 줄 아는 것, 이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일 것이다. 부활과 새 날의 빛은 바로 거기에서부터 비쳐들기 시작한다.

카키넨의 흰빛은 그렇게 종말과 시작의 공존에 대해 이야기하는 빛이다.

핀란드 출신인 카키넨은 갤러리 뤼미에르가 제정한 국제 사진상 LIPA의 올 수상자로 선정되어 이번 전시를 갖고 있으며, 출품작들이 보여주듯 철학적인 깊이와 미학적인 표현의 조화가 탁월한 작가다.

<미술평론가>
2008-07-29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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