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시티브展’ 오팔카 작품 선보여
무한의 숫자를 캔버스에 그리는 세계적인 작가 로만 오팔카(77)의 작품을 서울에서 볼 수 있다. 서울 소격동 학고재 화랑이 개관 20주년 기념전으로 진행중인 ‘센시티브 시스템’(Sensitive Systems)전에 그의 작품들이 걸렸다.
오팔카는 폴란드에서 태어나 프랑스에서 활동해온 현대 작가.1965년 ‘1’에서 시작해 지금까지 40년 넘게 무한의 숫자를 차례대로 그려오고 있는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400만대 숫자 시리즈를 보여주고 있다. 작품 설치를 위해 서울을 찾은 그는 “현재 555만대 숫자를 그리고 있으며, 내가 늙어가듯 시간이 흐르면 작품도 따라 변한다는 의미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작품 그 자체로 시간과 세월의 변화를 은유했다는 것이다.
그의 작품은 가까이 다가가 들여다보지 않으면 그저 특별한 정보가 없는 모노톤의 화면으로만 보인다. 그러나 유심히 살펴보면 작가정신이 얼마나 신랄하게 캔버스를 메우고 있는지 놀랍다. 왼쪽 상단에서부터 0호 붓으로 첫 숫자를 쓴 다음 깨알 같은 숫자를 꾸준히 1씩 더해 배열하는 것이 화법의 전부이다. 맨 처음 검정 바탕 위에 흰색으로 숫자를 쓰기 시작했고, 이후 작품을 거듭할 때마다 바탕색을 조금씩 밝게 해왔다. 작업을 시작한 지 40여년 만에 캔버스는 지금 거의 회색에 가까워졌다.“언젠가는 흰색 캔버스 위에 흰색 숫자를 쓰게 될 것”이라는 작가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숫자를 읽는 목소리도 녹음해 왔다.”고 했다. 흐르는 시간 속에 점진적으로 변화하는 삶의 형태를 목소리 작업으로도 구현하고자 했음이다. 매일 흰색 셔츠를 입고 똑같은 조명과 배경에 같은 포즈로 자신의 얼굴을 사진으로 찍어온 ‘실존적’ 기록작업도 병행해 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시간 속에서 변화해온 숫자 그림과 그의 모습, 목소리를 한꺼번에 감상할 수 있다.
전시는 그의 작품을 비롯해 모두 4인의 작가 세계를 함께 조명하는 기획전 형식이다. 국내 작가 이우환(72)은 텅 빈 캔버스에 점 몇 개만 찍은 1990년대 근작 ‘조응’과 최신작 ‘다이알로그’ 시리즈 등 회화 5점과 조각 2점을 내놓았다. 지난해 베니스비엔날레 이탈리아관 내부를 나무껍질로 뒤덮어 화제였던 이탈리아 작가 주세페 페노네(61)의 작품도 왔다. 나무의 나이테를 그린 드로잉 등을 통해 자연과 인간의 교감을 보여준다. 못을 오브제로 동원하는 독일 작가 귄터 위커(78)도 작품을 냈다. 전시 기획은 프랑스 생 테티엔 미술관 관장이자 유명 큐레이터인 로랑 헤기가 맡았다. 그는 “네 명의 작가가 모두 인간 내면의 원시성에 주목한다는 공통점이 있다.”며 “이들의 단체전은 내용 면에서 보자면 뮤지엄급 전시”라고 설명했다.25일까지.(02)720-1524.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2008-04-01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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