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거한 ‘그’와 꼭 닮은 ‘그’

서거한 ‘그’와 꼭 닮은 ‘그’

정서린 기자
입력 2007-07-23 00:00
수정 2007-07-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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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은 내 밥이지. 밥은 하루에 세 번 먹고 거짓말은 하루에 스무 번 정도 하니까.”(‘오늘의 거짓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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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정이현
작가 정이현
작가 정이현의 두번째 소설집 ‘오늘의 거짓말’(문학과지성사)의 인물들은 거짓말에 능하다. 이들은 1970년대부터 현재까지의 기억을 내밀지만 모두 ‘오늘’로 수렴된다.

2004년 봄부터 2006년 가을까지 써온 10편의 단편. 그 안에 맴도는 거짓말들은 작가의 말처럼 “맨들맨들해 보이는 안전한 일상 뒤의 틈새”를 가리는 안전장치다.

“정이현을 위악적인 작가로 알고 있었다.”는 박완서는 이번 작품에서 따뜻하고 깊이 있는 시선을 봤다고 평했다. 그 평처럼 정이현은 그동안 멀찍이 떨어져 있던 인물 옆에 바짝 붙어 앉았다. 시대와 제도를 툭툭 냉소하던 태도도 달라졌다. 작가는 개인이 감내해낸 세월 속에 시대가 어떻게 침투했는지 밝혀낸다.“저는 역사의 사건을 막연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이 역사를 만들어간다고 봐요.” 그래서 연민의 시선이 느껴질 거라고 그는 추측했다.

‘삼풍백화점’이 그 한 예다.‘삼풍백화점’은 작가의 말을 빌리면 “지난 게 아니라 폭삭 무너져버린 청춘에 대한 얘기”다. 백화점이 무너지기 30분전에 빠져나온 경험이 있는 정이현은 “그 곳은 내게 개인적, 일상적 공간이었는데 무너지고 나니 사회의 문제가 집약된 공간으로 호명됐다.”고 회고했다.

‘오늘의 거짓말’의 주인공은 1979년이라는 출생연도를 통해 ‘박정희’라는 시대의 방점을 상징한다. 쿵쿵거리는 소음 때문에 윗집의 벨을 누른 주인공은 1979년에 서거한 ‘그’와 꼭 닮은 ‘그’를 보고 세상에 이 사실을 알려야하나 말아야 하나로 전전긍긍한다.

결혼이나 취직, 대학입학, 출산 등 정상인이라면 걸어야 할 삶의 코스들이 늘 궁금하다는 작가. 그게 개인의 문제인지 시스템의 문제인지, 왜 그렇게 됐는지를 캐묻는 게 그의 관심사다. 그 관심은 이번 소설에도 다양한 연령과 다른 성(性)의 화자를 통해 반복된다.

하지만 정이현은 여전히 ‘쿨한’작가로 남고 싶어한다.“그래도 냉정했으면 좋겠어요. 겉으로 보이는 건조함이나 차가움 속에서 작가의 물기나 흘리지 못하는 눈물을 읽어줬으면 하는 거죠.”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2007-07-23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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