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결론이 날 사안이 아니다. 선정성 논란에 대한 최종판단은 법원이 내릴 일이다. 그러려면 검찰의 기소가 선행돼야 한다. 하지만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검찰이 나서는 순간 논란은 언론 탄압 공방으로 비화된다. 권력이 그렇게 강수를 둘 이유가 없다.
절독 선언의 정당성에 대해서도 매듭을 짓기 힘들다. 문화일보는 ‘볼 의무’를 강조하면서 그 근거로 국민 세금을 강조하지만 그렇게 따지면 왜 종합지만 의무적으로 봐야 하냐는 반문에 봉착한다.
좀 더 들어가자.‘강안남자’가 표본은 될 지언정 전체가 될 수는 없다. 인터넷엔 포르노물이 범람하고 편의점엔 도색잡지가 진열돼 있다. 언론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모 신문사는 러브호텔의 신종 섹스보조기구를 소개하는 기사를 한 면을 털어 실은 적도 있다. 이런 마당에 ‘강안남자’의 선정성에만 매달리면 ‘오버’ 또는 ‘특정한 목적’ 의혹을 살 수 있다. 심의기구가 28번이나 제동을 거는 동안 가만히 있다가 왜 이제야 나서느냐는 지적도 피해갈 수 없다.
절독의 부당성을 강조할 이유도 없다. 특정 보도에 대한 제재 차원에서 해당 언론사 기자의 출입 또는 취재를 금지한 일도 여러 번 있었다. 이런 제재는 취재의 자유를 제한하는 일이다. 그래도 그 부당성이 필요 이상으로 강조되고, 정치문제화한 적은 별로 없다. 공세적인 취재금지 조치에 비하면 절독은 자기 방어적 조치에 지나지 않는다.
크게 떠들 일이 아닌데도 공방은 거세다. 왜일까? 밑질 게 없기 때문이다. 청와대와 문화일보의 공방은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 윈윈 게임이다.
문화일보는 인지도를 높일 수 있다. 광고비 한 푼 안 들이고 제호 노출도를 극대화하고 이것을 장사로 이어갈 수 있다. 권력과 각을 세우는 언론사란 이미지를 획득하기도 한다. 청와대는 우회 타격을 가할 수 있다. 논조가 아니라 선정성을 문제 삼음으로써 언론의 반발을 최소화하고 국민의 공감을 최대화할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그토록 강조하는 언론 개혁의 정당성을 축적하는 과정으로 삼을 수 있다.
일견 모순된다. 인지도를 높이는 것과 언론 비판여론을 끌어올리는 것은 양립할 수 없다. 이렇게 보면 지금 벌어지는 공방은 제로섬 게임에 가깝다.
하지만 아니다. 신문시장이든 여론시장이든, 더 나아가 일반 상품시장이든 100% 완전독점은 성립하지 않는다. 마케팅과 전략의 기본은 ‘조금 더’이다. 이렇게 보면 청와대나 문화일보의 공방은 여전히 윈윈 게임이다.
어차피 결론이 날 일도, 추가 조치가 강구될 일도 아니다. 그냥 이대로 흘러갈 것이다. 국민 스스로가 알아서 판단하면 된다. 자신의 가치관을 듬뿍 녹여 ‘시비’와 ‘호불호’를 스스로 가르면 될 일이다.
미디어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