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팬의 성장’ 즐거움만 있을까

‘피터팬의 성장’ 즐거움만 있을까

조태성 기자
입력 2006-04-07 00:00
수정 2006-04-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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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안식처를 뜻하는 자궁. 내 온 몸을 따뜻하게 감싸줬던 온기에 대한 기억 때문이다. 그래선지 흔히 자궁은 양수로, 양수는 물의 이미지로 표현된다.

성장영화 ‘피터팬의 공식’(감독 조창호·제작 LJ필름)은 자궁을 향하는 열아홉 청년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그래서 처음부터 끝까지 물의 이미지를 끌어다 쓴다. 직접 물을 못 쓴다면 팬터지풍의 장면을 넣어 화면을 마치 물처럼 일렁이게 해서라도 물의 이미지를 준다.

영화의 처음과 끝 장면은 사실 영화의 모든 것이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 저 멀리 빛나는 등대 아래 어디부터가 하늘이고 어디부터가 물인지 모르는 바닷가의 검푸른 물이 화면을 가득채운다. 차이가 있다면 마지막 장면에서는 주인공 한수(온주완)가 그 바다를 멋지게 가르고 나아간다는 것뿐. 이 어둠을 밝혀주는, 반짝이는 등대는 영화 중간에 한번 더 반복된다. 바로 한수가 자신을 이해해주는 옆집 아줌마 인희(김호정)와 교감할 때다. 낮은 담을 사이에 두고 서로의 집에서 바라보던 한수와 인희는 마치 등대처럼 현관 불을 껐다 켰다 하면서, 서로의 존재를 알려준다.

마침 한수가 수영선수로 설정됐다는 것도 그렇다. 영화 도입부에서 수영선수를 때려치우기 전, 기록 측정이 끝난 뒤 숨을 꾹 참고는 아주 오랫동안 자유롭게 유영하던 한수의 이미지는 자궁이나 양수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게 한다. 그러다, 숨을 꾹 참다 마침내 물 밖으로 나오는 순간, 한수는 더 이상 수영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영화는 그 뒤 한수의 우울한 일상을 쫓아간다. 홀어머니는 삶이 무상하다며 살충제를 들이키고는 식물인간이 되어버리고, 병원에서 만난 같은 처지의 대학생 누나는 몸을 팔고, 자신은 어느새 편의점을 턴다. 어머니가 알려준 아버지는 자식을 모른 체하고, 그나마 자신이 들어가게 해달라도 애원했던 인희는 불모(불임)의 몸이다.

단, 그렇게 우울하기만 한 영화는 아니니까 몇번쯤은 호쾌하게 웃어도 상관없겠다. 진짜 코미디는 우스꽝스러운 행동이나 외모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상황에서 오는 아이러니임을 정확히 보여준다. 선댄스·베를린영화제 등 많은 국제영화제에서 호평받았고, 프랑스 도빌 아시아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받았다. 국내에서는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였다.13일 개봉,18세 이상 관람가.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2006-04-07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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