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다리 아저씨’-아날로그식 짝사랑, 지금도 있어?

‘키다리 아저씨’-아날로그식 짝사랑, 지금도 있어?

입력 2005-01-07 00:00
수정 2005-01-07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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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곳에서 항상 나를 지켜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상상은 다분히 사춘기 소녀적인 취향이긴 해도 꽤나 근사한 일임에 틀림없다. 미국 여성작가 J 웹스터의 동명소설에서 모티브를 따온 영화 ‘키다리 아저씨’(감독 공정식·제작 유빈픽쳐스)는 이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헌신적인 사랑’이라는 아주 고전적인 사랑의 테마를 스크린위에 옮겨 놓는다.

일찍 부모를 여의었지만 밝고 씩씩하게 살아가는 라디오 방송작가 영미(하지원)에겐 대학 등록금을 대신 내주고, 힘들 때마다 격려의 손길을 보내주는 후원자가 있다. 영미는 그를 ‘키다리 아저씨’라고 부르며 애틋한 마음을 간직하는 한편 방송국 자료실 직원 준호(연정훈)와 가슴 설레는 첫사랑을 시작한다.

영화는 원작의 큰 틀을 그대로 빌려왔지만 영미가 우연히 발견한 메일속 커플의 사랑이야기가 액자식 구성으로 녹아들면서 원작과는 다른 길을 걷는다. 일견 영화의 전체적인 흐름과 무관한 듯 보였던 대목, 즉 영미가 메일속 그녀의 안타까운 짝사랑 상대를 찾아주려했던 과정이 액자밖 스토리와 교묘하게 포개지는 막판 반전은 이 영화에서 가장 빛나는 부분이다.

영미가 선물로 받은 대형 곰인형, 영미와 준호의 새벽 꽃시장 데이트 등 몇몇 장면의 아이디어도 반짝인다. 하지원, 연정훈의 자연스러운 연기와 코믹커플 정준하, 신이의 감초 연기도 무난한 편. 하지만 요즘 같은 광속의 시대에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홀로 가슴앓이하는 아날로그식 ‘짝사랑’을 스크린에서 바라보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마지막 10여분의 클라이막스에만 기댄 듯한 감독의 순진함, 혹은 우직함이 안쓰럽다.13일 개봉.12세 관람가.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2005-01-07 3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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