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칸반도 미술 첫 한국나들이

발칸반도 미술 첫 한국나들이

입력 2004-12-08 00:00
수정 2004-12-08 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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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동숭동 마로니에미술관.‘세계의 화약고’ 발칸반도의 현대미술을 소개하는 이곳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면 흰 옷을 입은 여자가 피를 흘리며 서 있다. 그러나 비디오 작품 속의 이 여인은 끝까지 위엄을 잃지 않으며 64개 국어로 “나는 밀리카 토미치입니다.”라고 끊임없이 말한다. 주인공은 세르비아 출신 비디오 작가 밀리카 토미치(45). 작가는 자신이 발칸 분쟁의 가해자 입장인 세르비아인이라는 공적인 정체성을 부인하고 싶겠지만, 그 전쟁의 상처와 내면의 갈등을 남김없이 보여준다. 극한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는 모습이 감동으로 다가온다.

발칸 출신 작가 14명이 참여한 이번 전시는 비디오와 사진, 회화, 자수, 만화, 설치 등 각종 장르가 한데 어우러져 발칸의 현실과 이상을 웅변한다. 코소보의 독립 열망을 담은 알베르트 헤타의 사진, 신슬로베니아예술운동(NSK)을 이끌고 있는 어윈의 ‘레트로아방가르드’, 얼음 오브제를 이용해 반전 메시지를 전달하는 세르비아 출신 그룹 레드아트의 ‘아이스 아트-시간의 기록’, 파시즘을 상징하는 히틀러를 점묘기법으로 그린 마케도니아 출신 알렉산다르 스탄코프스키의 유화…. 발칸 국가들이 겪은 외침과 내전의 역사, 사회적인 억압과 저항운동, 전지구적 규모의 자본주의화와 세계화로 인한 경제 분배의 문제들에 대해 고민하는 발칸 작가들의 모습은 곧 우리 자신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초대 작가들이 속한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 코소보, 마케도니아 등은 과거 유고연방에 속했던 나라들이다.20세기 후반 독립을 성취하는 과정에서 인종청소의 현장으로 악명을 떨쳤던 곳이다. 그런 와중에서 발칸은 자연스레 야만과 광기로 얼룩진 문화 불모지로 여겨져왔다. 과연 그럴까.

이번 발칸 현대미술전은 이 지역 미술이 결코 만만치 않은 수준임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발칸 지역 작가들은 지역색이 강하면서도 현대미술의 어법에 뒤처지지 않는 ‘선진적인’ 모습을 보여왔다.”는 게 전시를 기획한 큐레이터 백지숙씨의 말이다. 참혹한 전쟁의 상흔을 가슴에 묻은 채 살아가면서도 ‘새로운 과거’를 이야기하는 작가들의 고뇌어린 작품은 ‘발칸’을 보다 밝은 눈으로 보게 한다. 한편 전시 기간 동안 매주 토요일에는 에밀 쿠스트리차의 ‘아빠는 출장중’, 고란 마르코빅의 ‘티토와 나’, 테오 앙겔로풀로스의 ‘율리시즈의 시선’, 스르잔 드라고제빅의 ‘더 운즈’, 아톰 에고얀의 ‘아라라트’ 등 영화도 상영돼 발칸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전시는 내년 2월 3일까지.(02)760-4603.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2004-12-08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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