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의 클뤼니 중세박물관에는 ‘여인과 일각수’라는 아름다운 태피스트리 연작이 걸려 있다.이 작품은 꽃무늬 바탕장식의 기교로 보아 브뤼셀의 장인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설이 유력하다.또 사용된 문장(紋章)을 근거로 파리의 귀족 장 르 비스트 가문의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촉각’‘시각’‘미각’‘후각’‘청각’‘나의 유일한 소망’이라는 소제목이 붙은 6점의 태피스트리에는 각각 여인과 일각수(一角獸)가 아로새겨져 있다.수많은 꽃과 나무,토끼에 둘러싸인 여인의 옆에는 일각수와 사자가 서있다.여인과 일각수가 어떻게 한 폭의 그림이 될 수 있을까.
미국의 여성작가 트레이시 슈발리에의 소설 ‘여인과 일각수’(권민정·허진 옮김,강 펴냄)는 바로 이 태피스트리 속의 여인과 일각수 전설을 매개로 이야기를 풀어간다.슈발리에는 1999년 17세기 네덜란드 화가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그림을 소재로 한 소설 ‘진주 귀고리 소녀’를 발표하며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오른 인물.소설은 직물을 짜는 일조차 여성에게 허용되지 않던,남성만이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던 중세를 배경으로 한다.하지만 이야기의 중심은 남성이 아니라 여성이다.여성의 숨겨진 욕망을 드러내는 데 이 소설의 묘미가 있다.
무대는 파리와 브뤼셀.이야기는 파리의 바람둥이 화가 니콜라를 둘러싼 네 여인의 욕망을 축으로 전개된다.주느비에브는 사막같은 결혼생활에서 벗어나 수도원에 들어가길 원하고,그의 딸 클로드는 꽉 짜인 귀족생활에 길들여지기를 거부한다.그런가 하면 크리스틴은 여자들한테는 허용되지 않는 태피스트리 짜기를 꿈꾸고,그의 눈먼 딸 알리에노르는 장인의 딸로서 작업장의 이해에 따라 결혼해야 하는 관습의 폐해에 맞선다.작가는 이처럼 태피스트리의 이면에 감춰진 여성들의 욕망을 새롭게 읽어낸다.그리고 각각 ‘시각’‘촉각’,‘미각’‘나의 유일한 소망’등 네 부류의 여인으로 묘사한다.
이 작품에서 또 하나 지나칠 수 없는 것은 일각수의 상징성이다.일각수라는 상상의 동물은 여러 문화권에서 나타난다.멀리 고대 아시리아나 그리스 로마시대의 문헌에도 일각수 이야기가 나오며,중국이나 일본에도 일각수 전설이 있다.일각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세상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나 영화 ‘블레이드 러너’에서 보듯 오늘날에도 널리 쓰이는 아이콘이다.그렇다면 일각수는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프로이트에 따르면 일각수의 뿔은 남성의 성기를 상징한다.때로는 그리스도와 성모 마리아를 나타내기도 한다.사냥꾼의 화살에 맞아 처녀의 무릎 위에 엎드려 있는 일각수의 모습은 마리아가 십자가에서 내려온 예수를 안고 있는 피에타의 전형적인 구도를 연상시킨다.
소설의 화자 니콜라는 일각수가 등장하는 가장 유명한 전설을 두가지로 나눠 들려준다.일각수는 원래 거칠고 난폭한 동물이지만 정결한 처녀 앞에선 양처럼 순해져 처녀의 무릎 위에 다소곳이 기댄다는 것.일각수 뿔에 독을 정화시키는 힘이 있다는 것 또한 잘 알려진 이야기다.‘여인과 일각수’는 하나의 예술 작품이 다른 장르의 예술 작품을 생산하는 촉매 구실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진주 귀고리 소녀’와 같은 맥락에서 읽힌다.1만원.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미국의 여성작가 트레이시 슈발리에의 소설 ‘여인과 일각수’(권민정·허진 옮김,강 펴냄)는 바로 이 태피스트리 속의 여인과 일각수 전설을 매개로 이야기를 풀어간다.슈발리에는 1999년 17세기 네덜란드 화가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그림을 소재로 한 소설 ‘진주 귀고리 소녀’를 발표하며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오른 인물.소설은 직물을 짜는 일조차 여성에게 허용되지 않던,남성만이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던 중세를 배경으로 한다.하지만 이야기의 중심은 남성이 아니라 여성이다.여성의 숨겨진 욕망을 드러내는 데 이 소설의 묘미가 있다.
무대는 파리와 브뤼셀.이야기는 파리의 바람둥이 화가 니콜라를 둘러싼 네 여인의 욕망을 축으로 전개된다.주느비에브는 사막같은 결혼생활에서 벗어나 수도원에 들어가길 원하고,그의 딸 클로드는 꽉 짜인 귀족생활에 길들여지기를 거부한다.그런가 하면 크리스틴은 여자들한테는 허용되지 않는 태피스트리 짜기를 꿈꾸고,그의 눈먼 딸 알리에노르는 장인의 딸로서 작업장의 이해에 따라 결혼해야 하는 관습의 폐해에 맞선다.작가는 이처럼 태피스트리의 이면에 감춰진 여성들의 욕망을 새롭게 읽어낸다.그리고 각각 ‘시각’‘촉각’,‘미각’‘나의 유일한 소망’등 네 부류의 여인으로 묘사한다.
이 작품에서 또 하나 지나칠 수 없는 것은 일각수의 상징성이다.일각수라는 상상의 동물은 여러 문화권에서 나타난다.멀리 고대 아시리아나 그리스 로마시대의 문헌에도 일각수 이야기가 나오며,중국이나 일본에도 일각수 전설이 있다.일각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세상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나 영화 ‘블레이드 러너’에서 보듯 오늘날에도 널리 쓰이는 아이콘이다.그렇다면 일각수는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프로이트에 따르면 일각수의 뿔은 남성의 성기를 상징한다.때로는 그리스도와 성모 마리아를 나타내기도 한다.사냥꾼의 화살에 맞아 처녀의 무릎 위에 엎드려 있는 일각수의 모습은 마리아가 십자가에서 내려온 예수를 안고 있는 피에타의 전형적인 구도를 연상시킨다.
소설의 화자 니콜라는 일각수가 등장하는 가장 유명한 전설을 두가지로 나눠 들려준다.일각수는 원래 거칠고 난폭한 동물이지만 정결한 처녀 앞에선 양처럼 순해져 처녀의 무릎 위에 다소곳이 기댄다는 것.일각수 뿔에 독을 정화시키는 힘이 있다는 것 또한 잘 알려진 이야기다.‘여인과 일각수’는 하나의 예술 작품이 다른 장르의 예술 작품을 생산하는 촉매 구실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진주 귀고리 소녀’와 같은 맥락에서 읽힌다.1만원.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2004-08-07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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