儒林(55)-제1부 王道 제3장 至治主義

儒林(55)-제1부 王道 제3장 至治主義

입력 2004-03-23 00:00
수정 2004-03-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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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王道

제3장 至治主義

조광조는 17세 되던 해 그의 부친 조원강이 어천도(魚川道)의 역참(驛站) 찰방의 관리로 임명받아 평안도로 부임하자 부친을 따라 그곳으로 갔다가 마침 그곳 희천에 정치적 이유로 유배와 있던 김굉필을 찾아가 스승으로 섬기고 사제의 인연을 맺었던 것이다.나란히 배를 올리고 나서 이자는 제단 위에 올렸던 술을 조광조에게 권하며 말하였다.

“오늘의 풍색이 이처럼 나쁘니 세월이 하수상하나이까.”

조광조는 이자가 따라주는 술을 음복하며 웃으며 말하였다.

“하오면 내가 잔을 들고 한바탕 춤이라도 추오리까.”

두 사람은 서로 술을 나누어 마시면서 크게 한바탕 웃었다.이 모습을 바라보던 나장들은 호방하게 웃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 어리둥절하였다.먼저 단숨에 술을 들이켠 이자가 이렇게 노래하였다.

“오늘의 풍색이 매우 나쁘다 해도/잔 들고 춤을 추니 그 또한 기쁘리라/무장한 사나이가 말을 지쳐 지나간다/족쳐서 묻지마라/제 어찌하건 오백년의 나라강상(綱常)이/내 한 몸에 맡겼구나.”

먼저 이자가 노래하자 조광조도 단숨에 잔을 비우고 질세라 노래하였다.

“백골이 진토된들 임향한 마음 변할쏘냐/상공의 한번 죽음 분수에 당연하나/저 녹사(錄事)는 누구 집 자제던가/살아서 상공 따랐고 죽어서도 상공 따랐네/그대는 보지 못하였는가/성조(이성계)가 개국하여 책봉한 공신들이 고려조에 녹을 먹던 사람들이로세.”

두 사람이 의기투합하여 읊은 노래는 정몽주의 문집인 ‘포은집(圃隱集)’에 나오는 노래로 그 유래는 다음과 같다.

“…그때 성조(이성계)의 공업(公業)이 날이 갈수록 성해감에 모든 관리들이 마음을 돌려 따라 붙었다.태종(이방원)이 태조께 고하기를 ‘정몽주가 어찌 우리 집을 배반하겠습니까’라고 하였다.그러자 태조가 말하였다.‘내가 애매한 참소를 만나면 정몽주가 죽기로써 나를 변명해 주었지만 만일 나라를 일으키려 한다면 그 마음을 알 수 없다.’

차츰 문충공의 심사가 알려지매 태종이 잔치를 차려 청하고서 술을 권하며 다음과 같이 노래하였다.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성황당 뒷담이야 무너진들 어떠하리/우리도 이렇게 해서 죽지 않은들 또 어떠하리.’

이 노래를 들은 문충공이 술을 보내며 노래를 지어 불렀다.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번 고쳐죽어/백골이 진토되어 넋이야 있든 없든/임향한 일편단심이야 변할 줄이 있으리오.’

문충공의 노래를 들은 태종이 그 마음이 변치 않을 것을 알고 드디어 없애기로 결심했다.문충공이 문병차 태조의 집에 가서 겸하여 기색을 살펴보았다.돌아오는 길에 옛 술친구의 집을 지나더니 주인은 출타하고 뜰에는 꽃만 만발했다.이내 옆길로 들어가서 술을 부르고 꽃 속에서 춤을 추며 노래하였다.

‘오늘 풍색이 나쁘구나.매우 나쁘구나.’

연거푸 술을 들이켜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활을 멘 무사(조영규)가 앞질러 지나갔다.낯빛을 변하면서 따라 오는 녹사를 돌아보고 문충공이 이르기를 ‘너는 뒤에 처지거라’하였다.그러나 녹사가 대답하기를 ‘쇤네가 대감을 모시고 왔는데 어찌 딴 곳으로 갈 수 있사옵니까’라고 하였다.두 번 세 번 꾸짖어도 듣지 않다가 마침내 문충공이 죽음을 당함에 함께 부둥켜안고 죽었다.그때의 일이 너무 갑작스러워 아무도 그 이름을 기억한 이가 없어서 뒷세상에 전하지 못하였다….”

‘포은집’에 실린 이 기록은 훗날 심광세(沈光世)에 의해서 정리되었으나 정몽주의 단심가와 정몽주를 위해 죽음을 바친 이름 없는 녹사에 관한 이야기는 이미 널리 회자되고 있었던 것이었다.그러므로 조광조와 이자 둘이서 읊은 이 노래는 이처럼 ‘임향한 일편단심은 백골이 진토되어도 변할 수 없다’는 정몽주의 충정을 통해 자신들의 단심을 표현하고 있었던 것이다.
2004-03-23 4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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