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촨ㆍ두장옌ㆍ한왕(쓰촨성) 박홍환특파원┃하늘도 그날의 슬픔을 되새기려는 듯 낮은 구름을 잔뜩 깔아놓고 가는 비를 뿌리고 있었다. 쓰촨(四川)대지진 1년, 시간은 그대로 2008년 5월12일 오후 2시28분에 정지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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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그시간’을 절대 잊을 수 없다는 뜻일까. 몐주시 한왕진의 정지된 시계탑은 재앙의 순간을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다. 쓰촨성 박홍환 특파원 stinger@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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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그시간’을 절대 잊을 수 없다는 뜻일까. 몐주시 한왕진의 정지된 시계탑은 재앙의 순간을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다. 쓰촨성 박홍환 특파원 stinger@seoul.co.kr
#장면1. 멈춰선 시계탑의 증언 지난 9일 오후 쓰촨성 성도 청두(成都)에서 북쪽으로 100여㎞, 자동차로 1시간30여분 만에 도착한 몐주(綿竹)시한왕(漢旺)진의 둥치(東汽)시계탑 광장. 진앙지인 원촨(汶川)에서 동쪽으로 40여㎞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중학생 200여명 등 3000여명 이상이 몰사한 이곳의 시계는 비스듬하게 기운 채 ‘그날그시간’ 이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시계탑 주변과 북쪽 읍내는 온통 무너지고, 부서진 건물 잔해 투성이다.
대형 관광버스를 포함한 한 무리의 자동차들이 비상등을 켜고 도착했다. 쏟아져 나온 람들은 빗줄기에 아랑곳 않고 시계탑을 배경으로 연신 카메라셔터를 눌러댔다.주민 왕거거(王哥哥·37)는 “지난 1년간 반복되는 풍경”이라고 무표정하게 말했다. 왕씨는 “지난해원자바오(溫家寶) 총리가 3번, 후진타오(胡錦濤)주석이 1번씩 다녀갔지만 새 집에는 내년 말에나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고 힘없이 내뱉은 뒤 “시간을 1년 전으로 되돌릴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느냐.”고 헛웃음을 지었다.
돌이킬 수 없으면 맞설 수밖에. 생활전선은 더욱치열해졌다. 곧 무너질 것처럼 위태로운 가게 건물 앞에 짚 등을 엮어 임시가게를 마련한 상인들은 한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발버둥쳤다. 작은 잡화점을 운영하는 판위안(范媛·30·여)은 “하루 몇 십위안(몇 천원) 벌이지만 그래도 세 식구가 먹고 살아야 할 것 아니냐.”며 “가족들이 무사한 우리는 그나마 행복한 축에 속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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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수천명이 방문하는 한왕 시계탑 광장의 기념품 판매점에서는 구조기록 등을 담은 CD가 판매되고 있다. 쓰촨성 박홍환 특파원 stinger@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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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수천명이 방문하는 한왕 시계탑 광장의 기념품 판매점에서는 구조기록 등을 담은 CD가 판매되고 있다. 쓰촨성 박홍환 특파원 stinger@seoul.co.kr
#장면2. 짙은 향에 담긴 슬픔 피해 지역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베이촨(北川)현은 도시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무덤이었다. 3만여명의 주민 가운데 절반 넘는 사람들이 무너진 건물 더미에 아직도 그대로 묻혀있다. 새 학교를 짓기 위해 마련했던 부지는 어느새 공동묘지로 변해 있었다. 도시는 봉쇄된 채 무너진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산등성이 곳곳에 마련된 분향단에서 피어오르는 분향 냄새와 연기가 탕자산(唐家山) 아래 분지에 자리잡은 베이촨으로 낮게 깔리고 있 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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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촨현은 ‘그날’ 이후 그대로 잠들어 버렸다. 무너지고, 휩쓸리고, 묻혀 버린 베이촨과 베이촨 사람들은 산에서 내려오는 향내를 맡으며 영면했을까. 쓰촨성 박홍환 특파원 stinger@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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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촨현은 ‘그날’ 이후 그대로 잠들어 버렸다. 무너지고, 휩쓸리고, 묻혀 버린 베이촨과 베이촨 사람들은 산에서 내려오는 향내를 맡으며 영면했을까. 쓰촨성 박홍환 특파원 stinger@seoul.co.kr
베이촨 시내로 내려가는 고갯마루에 위치한 옛 베이촨 중학. 3000여명의 학생과 교사 가운데 1000여명이 희생된 이곳에 마련된 임시 분향단에서도 향은 그칠 줄 모르고 피어올랐다. 교사였던 남동생이자 처남을 잃었다는 노 부부는 향을 태우다가 결국 눈시울을 붉혔다. 청두에서 이른 새벽 떠나 도착했다는 가오쥔(高俊·23·여)은 “현장을 직접 보니 당시희생자들이 얼마나 큰 고통 속에 죽어갔을지 눈에 선하다.”며말을잇지 못했다.
졸지에 현사무소에서 잡부로 일하던 남편을 잃은 류(劉·53)모씨는 집 입구 정중앙에 남편 영정을 세워둔 채 연신 주문같은 독백을 외워댔다. 시체도 찾지 못해마지막길도배웅못했다고 글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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몐주~한왕 도로의 다리 복구가 한창이다. 중국 정부의 발표와는달리 아직 복구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고 있는 곳도 많다. 쓰촨성 박홍환 특파원 stinger@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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몐주~한왕 도로의 다리 복구가 한창이다. 중국 정부의 발표와는달리 아직 복구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고 있는 곳도 많다. 쓰촨성 박홍환 특파원 stinger@seoul.co.kr
#장면3. 크레인으로 길어올리는 희망 류씨를 비롯, 베이촨에서 간신히 살아남은주민6000여명은 새로 건설될 도시로 이주하게 된다. 이웃 안(安)현의 안창(安昌)진에 ‘신(新) 베이촨’을 세우는 공정은 벌써 시작됐다. 산으로 둘러싸인 옛 베이촨과는 달리 탁 트인 평지다. 아직 터닦기 공사에 불과했지만 진도 6~7의 강진에도 견딜 수 있 는튼튼한 건물을 짓겠다는 게 중국 정부의 다짐이다.
고대 수리시설로 유명한 두장옌(都江堰) 역시 몐양(綿陽) 등과 마찬가지로 곳곳이 신도시 건설현장처럼 활기찼다. 3100가구를 수용할 수 있 는 아파트 건설 계획인 ‘행복한 가정’(幸福家園) 공정은 이미 절반 정도 완성됐다. 내년 2주기때는 파란색 지붕의 판팡(板房·이재민용 임시가옥)을 전부 철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시 간부는 전했다.
아파트 건설 현장 옆 판팡에 거주하는 후자이룽(胡再蓉·41·여)은 “지난 1년은 정말 악몽같았다.”며 “이런재앙은 두번 다시 있어선 안 된다.”고 말했다.
┃두장옌ㆍ몐양ㆍ몐주(쓰촨성) 박홍환특파원┃쓰촨(四川)성 정부가 설명하고, 보여주는 ‘복구 및 신설현장’은대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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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두장옌(都江堰)시의 경우, 상하이시의 지원을 받아 ‘속도전’양상으로 건물이 올라가고 있었다. 지상 11층, 지하 1층에 600병상을 갖춘 초현대식 의료센터는 벌써 8층까지시공이끝났다. 올 9월이면 완공된다.
6억 7000만 위안(약 1300억원)을 투입해 짓고 있 는3000여가구의 영구임대주택 공사도 내년 이맘때면 입주가 모두 끝날 것이라고 시 간부는 설명했다. 지난해 지진당시 신축 중이던 두장옌 고등학교는 보강공사를 거쳐 진도6의 강진에도 끄떡없는 새 학교로 재탄생했다. 3000여명의 전교생을 기숙사에 수용하고 있다.
몐양(綿陽)에서 베이촨(北川)으로 통하는 길목도 공사가 한창이었다. 특히 베이촨현 입구의 창(羌)족 거주지는 대부분 깨끗하게 복구가 끝나 있었다. 복구공사에
필요한 시멘트 등 건설자재를 현장에서 자급하기 위해서인지 대규모 시멘트 공장도 건설 중이다.
하지만 ‘시선’이 닿지 않는 곳은 여전히별진전이 없었다. 몐주(綿竹)에서 한왕(漢旺)에 이르는 도로는 패고 깨진 상태로 방치돼 건설장비 등이 제 속도를 내지 못했고, 무너진 다리도 이제야 복구가 시작됐다. 복구가 늦어지면서 판팡(板房·이재민용 임시가옥) 거주 이재민들의 불만도 속출하고 있다. 몐주에서 만난 셰(謝·45)모씨는 “정부는 관공서나 공장 먼저 복구작업을 하고있다.”면서 “도대체 언제까지 비만오면 질퍽거리는 판팡에서 살아야 하느냐.”고 하소연했다.
부모들의 지적을 받고, 보강공사만 했어도 우리 아이가 그렇게 비참하게 가진 않았을 거예요. 며칠만 지나면 졸업이었는데….” 지난해 지진당시두장옌(都江堰)시 쥐위안(聚源)중학 3학년에 재학 중이던 외동딸 장옌(張燕)을 잃은 우쿤췬(吳坤群·사진·38)은 1년이 지난지금까지 딸의 옷이며 학용품이며 인형 등을 소중하게 어루만지며 힘겹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쥐위안 중학에서는 지난해 지진으로 240여명의학생이 희생됐다. 철근을 빼먹은 부실공사 소문이 그치지 않아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교실 베란다에는 나가지 말라.”고 지시했고, 학부모회의에서도 보강공사 요구가 그치지 않았지만 결국 무시했다가 참사를 빚었다. 당국은 참사 이후 철저하게 피해 학부모들을 감시하고 있다. 한 두명이라도 모일라치면 금세 누군가 찾아왔다. 지난달 청명절때는 폐허가 된 학교에서 향을 피우려다 두들겨 맞기까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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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들이 무너져 5000명 넘는 학생들이 떼죽음 당했는데 아직도 부실공사 여부에 대한 조사결과는 나오지 않고 있다. 1주기를 앞두고 곳곳에는 집회금지 공고문이 나붙었다. 쓰촨성 박홍환 특파원 stinger@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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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들이 무너져 5000명 넘는 학생들이 떼죽음 당했는데 아직도 부실공사 여부에 대한 조사결과는 나오지 않고 있다. 1주기를 앞두고 곳곳에는 집회금지 공고문이 나붙었다. 쓰촨성 박홍환 특파원 stinger@seoul.co.kr
실제 폐허가 된 쥐위안 중학은 철저하게 봉쇄돼 있었다. 8일 오후 현장을 방문, 취재에 나서자 즉각 공안(경찰)이 나타나 저지했다. 그는 “당국의 지시”라고만 말했다. 몐주(綿竹)시한왕(漢旺)진 등 곳곳에는 집회금지를 알리는 공고문이 나붙어 있었다. 중국 정부가 공식 발표한 피해학생 규모는 5335명. 중국 주택건설부 고위간부는 9일 “학교 붕괴 원인은 매우 복잡해 결론내기 힘들다.”며 조사결과 발표가 늦어지는 이유를 밝혔다.
이재명 대통령이 보건복지부 업무보고에서 “탈모는 생존의 문제”라며 보건복지부에 탈모 치료제 건강보험 적용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대통령의 발언을 계기로 탈모를 질병으로 볼 것인지, 미용의 영역으로 볼 것인지를 둘러싼 논쟁이 정치권과 의료계, 온라인 커뮤니티로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당신의 생각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