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일만특파원 베이징은 지금] ‘고구려사 왜곡’ 침묵하는 中언론

[오일만특파원 베이징은 지금] ‘고구려사 왜곡’ 침묵하는 中언론

입력 2004-08-26 00:00
수정 2004-08-26 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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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언론들이 한·중간 고구려사 왜곡 시정을 위한 구두합의 사실을 대서특필한 25일 아침,중국의 신문들은 일제히 침묵을 지켰다.

실시간으로 중국 대표단의 올림픽 승전보를 전하고 있는 관영 신화통신은 물론 당 기관지 인민일보,비교적 상업성이 짙은 베이징청년보 등 대부분 신문에서도 관련 기사를 한줄도 찾아볼 수 없었다.중국 외교부는 베이징 주재 한국 특파원들에게 이례적으로 팩스를 보내 고구려사 왜곡 시정과 관련,합의내용을 확인하는 편법을 동원했을 뿐이다.

중국 언론들이 고구려사 왜곡문제와 관련,한국민들의 격렬한 반중(反中) 정서는 물론 한국정부의 공식 항의 사실까지 묵살하며 ‘침묵 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중국의 언론체제에 비춰 이같은 상황은 당 중앙의 지시가 없으면 불가능하다.자국에 불리한 기사는 차단하고 유리한 기사는 대대적 홍보에 나서는 이런 관행은 사회주의 언론관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곰곰이 따져보면 중국 언론의 이중적 보도 태도는 중국의 국익에도 결코 보탬이 되지 않는,단견이다.지난해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파동 당시 당 중앙의 지시로 ‘쉬쉬’로 일관하던 언론 때문에 오히려 사태를 최악으로 몰아갔던 사실을 벌써 잊은 듯하다.

중국 언론들이 침묵 대신 고구려사 왜곡에 대한 한국민들의 격앙된 정서를 사실대로 보도했더라면 양국 관계가 수교 12년 만에 이처럼 최악의 위기로 치닫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도 해본다.

최근 중국 정치학계의 저명한 소장학자와 식사를 한 일이 있었다.자연스레 화제가 고구려 문제로 옮아갔고 한국민의 격앙된 반중 감정을 소개하자 상당히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그는 “‘동북공정’이나 고구려사 역사 분쟁에 대해선 알고 있지만 한국민의 반응을 한번도 중국 언론에서 본 적이 없다.”고 했다.

“한국내 중국의 대국적 문화를 사랑하는 모화주의자(募華主義者)나 중국 중시론을 펴는 친중파들마저 중국에 등을 돌리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라고 하자 그는 “어렵게 쌓아올린 양국의 협력 분위기가 훼손되면 안되는데…”라며 상당히 아쉬워 했다.식사 후 그는 당 중앙에 한국민의 감정을 솔직하게 전하고 ‘동북공정’ 자체를 전면 검토해야 한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쓰겠다며 총총히 사라졌다.

‘귀를 막고 종을 훔치고(掩耳盜鈴)’ ‘손바닥으로 해를 가리는’ 중국 언론들의 은폐·왜곡 보도는 향후 양국 관계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이번 고구려사 문제의 최대 교훈일 것이다.

oilman@seoul.co.kr
2004-08-26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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