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시대] 추미애 경기지사에게 바란다

[지방시대] 추미애 경기지사에게 바란다

한상봉 기자
한상봉 기자
입력 2026-09-04 01:10
수정 2026-09-04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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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그 열매로 안다.”

고대 그리스 격언이다. 가지가 얼마나 무성한지가 아니라 어떤 열매를 맺느냐로 그 나무를 안다는 뜻이다. 정치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추미애 경기지사가 취임한 지 두 달이 됐다. 열매를 따지기에는 이르다. 그래도 지금까지 행보를 보면 예상과 조금 다르다. ‘정치인 추미애’보다 ‘행정가 추미애’의 모습이 더 보인다. 눈에 띄는 것이 업무보고다. 취임 직후 실·국 업무보고를 받다가 열흘 만에 중단시켰다. 사업에 대한 냉정한 평가보다 성과와 장밋빛 전망이 앞선다는 이유였다. “업무보고는 지사의 눈과 귀를 가리는 자리가 아니다”라고 질타했다.

계획은 무엇이었는지, 예산은 얼마나 들었는지, 실제로 무엇을 했고 못 했는지 다시 따져 보라고 했다. 잘한 것은 잘한 대로 부족한 것은 부족한 대로 보고하라고 했다. 그렇게 다시 받은 업무보고 결과를 사업평가와 예산, 인사에 반영하겠다고 했다. 업무보고는 자칫 새 단체장에게 잘된 일을 설명하고 앞으로 잘될 일을 약속하는 자리가 되기 쉽다. 실패한 사업과 잘못된 판단을 스스로 꺼내 놓기는 쉽지 않다. 추 지사는 이런 관행에 제동을 걸었다.

재정을 대하는 태도 역시 같은 맥락이다. 경기도가 7조원의 채무를 안고 있다며 남아 있는 사업예산 1조 4000억원을 전면 재검토하고 불필요한 사업은 과감히 조정하라고 했다. 지사가 직접 결재하지 않은 연구용역도 잠정 중단시켰다. 새 단체장은 보통 자신의 공약을 펼칠 새 사업부터 궁리하기 마련이다. 추 지사는 일단 반대로 가고 있다. 새 사업에 앞서 벌여 놓은 것부터 들여다보고 있다. 급기야 내년 본예산에도 자신의 공약을 위한 신규 사업은 담지 않겠다고 했다. 곳간 사정이 어렵다면 씀씀이부터 살피는 게 당연하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이 자르느냐가 아니다. 오랫동안 관행처럼 이어 온 사업 가운데 효과가 떨어지는 것은 없는지, 특정 기관이나 단체의 몫처럼 굳어진 예산은 없는지 가려내는 일이다. 잘라내기 쉬운 곳부터 손대는 것이 아니라 필요 없는 곳부터 손대야 한다. 그래야 구조조정이 단순한 긴축이 아니라 도정의 체질을 바꾸는 일이 된다.

추 지사는 지난 1일 도의회에서 5500억원 규모의 세출 구조조정을 설명하면서 “지사를 보좌하는 정무직 인사도 불가피하게 최소화하고 있다”고 했다. 취임 초기 상당수 정무라인을 비워 뒀고 당선인 시절부터 재정 사정을 이유로 조직 신설에도 제동을 걸었다. 전직 국회의원과 정치권 인사들을 여러 정무라인에 기용했던 전임 도정 후반기와 비교하면 다른 모습이다. 추 지사는 당대표와 법무부 장관을 지낸 전국구 정치인이다. 차기 대권주자로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도 이상할 게 없다. 마음만 먹으면 여의도 인사들로 주변을 채우는 일도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의 절제가 더 눈에 들어온다.

이 기조가 임기 끝까지 이어졌으면 한다. 경기도청이 어느 순간 차기 대선 준비 캠프로 변하고 정치권 인사들이 하나둘 늘어나기 시작한다면 취임 초 보여 준 모습의 의미도 퇴색한다. 정치권 출신 인사가 행정조직 위에 서고 중앙정치를 향한 메시지가 도정에 앞서기 시작하면 공무원들은 정치의 눈치를 보고 도민들은 눈길을 거둘 것이다.

대권을 생각한다 해도 도정이 먼저다. 경기도정을 잘하는 것보다 좋은 대권 준비가 또 있을까. 불필요한 사업을 정리하고 산하기관을 제대로 관리하며 묵은 현안을 하나씩 해결하면 자연스레 여론이 부른다. 나무가 스스로 좋은 나무라고 말할 필요는 없다. 좋은 열매가 열리면 사람들이 먼저 알아본다.

한상봉 전국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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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봉 전국부 기자
한상봉 전국부 기자
2026-09-04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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