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영어교육학 교수
이병민
서울대 영어교육학 교수
서울대 영어교육학 교수
사교육의 역사는 길며 생명력이 강하다. 해법이 쉬워 보이지 않는다. 단순히 공교육을 강화하는 것이 사교육을 억제하는 방안이라고 하지만, 무엇이 공교육을 강화하는 것인지 잘 모른다. 사교육과 공교육이 경쟁하지만, 사교육은 근본적으로 공교육에 기생하고 있으며 문제 풀기나 암기 위주의 일차원적 학습이 주종을 이루기는 매한가지다.
사교육이라는 생명체가 활개치고 다니는 조건은 여기저기 널려 있다. 지필고사 형식의 시험이 존재하고, 배움이 무엇을 탐구하고 알고 깨우치기 위한 과정이 아니라 문제를 풀고 한 점이라도 더 높은 점수를 따려는 경쟁이며, 시험이 삶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전국 학교에서 가르치는 내용은 물론 평가하는 방식이 동일한 조건에서 사교육은 창궐할 수밖에 없다.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그 조건을 없애는 것이다. 첫째, 중간고사나 기말고사와 같은 형식으로 이전에 배운 내용을 단기간에 외우고 그대로 토해내는 평가 방식은 지양해야 한다. 수시로 일상의 학습내용을 다양하고 촘촘하게 평가하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 한 학기 성적은 그러한 과정이 축적되어 나타난 결과물이어야 하며, 그렇게 하기 위해서 교사들에게 가르치는 일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둘째, 교육 문제의 해법은 ‘교실’과 ‘교사’에게서 찾아야 한다. 특히 ‘교사’가 문제 해결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교사에게 가르칠 내용을 독자적으로 결정하고 고유한 방식으로 평가할 수 있는 자율권이 인정되어야 한다.
교육청이나 학교의 자율뿐 아니라 개별교사의 자율이 중요하다. 개별교사가 평가하는 내용과 방식이 다양하고, 이를 사교육이 복제할 수 없고, 대학이 그 평가 결과를 선발 기준으로 사용해야만 사교육에 대한 유혹을 줄일 수 있다. 전국적으로 획일화된 교육 내용과 평가체제 하에서 사교육 기관이 이를 복제하고 새롭게 진화시킬 수 있는 방안은 수백, 수천가지가 넘는다.
셋째, 대학은 학생을 선발할 때 점수로 표시된 성적만이 아니라 그 학생이 가지고 있는 삶의 배경·흥미·열정, 좌절과 극복의 경험, 꿈·잠재력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어느 한 시기에 얼마나 많은 고기를 낚았는가 하는 양뿐만 아니라, 고기를 낚고 싶은 열정도 고려해야 한다. 점수와 더불어 학생의 능력을 평가하는 다른 완충장치는 매우 중요하다.
주관적이고 뜬구름 잡는 얘기라고 하겠지만 지필고사 역시 한 개인의 능력을 평가하는 데 주관적이기는 매한가지다.‘비슷한’ 능력을 가진 학생이 집중적인 사교육을 통해서 더 나은 점수를 올릴 가능성은 언제나 열려 있다. 어디 몇십점뿐이겠는가? 그것을 그대로 인정하고 그 점수가 선발의 중요한 기준이 되면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생들도 대학원 진학을 위해 학원 문턱을 기웃거린다고 하지 않는가?
지난달 중학교 1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한 진단평가 결과는 사교육이 얼마나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사교육을 받지 않은 영역에서 지역 간 격차는 크지 않았다. 유독 사교육이 집중적으로 이루어진 영어와 수학에서만 엄청난 차이를 보여주었다. 아이들의 잠재된 능력 차이가 아니라 부모의 부와 사교육의 결과였다. 사교육 문제는 더이상 방치할 수 없는, 언젠가 터져버릴 그 무엇이며 , 더 늦기 전에 사교육을 포함, 교육 문제 전반을 풀기 위한 여정을 시작해야 한다.
이병민 서울대 영어교육 교수
2008-04-15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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