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용산시대/서동철 논설위원

[씨줄날줄] 용산시대/서동철 논설위원

서동철 기자
서동철 기자
입력 2022-05-09 20:32
수정 2022-05-10 02:04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화성에 화성 없고, 동대문에 동대문 없다’는 우스개가 있다. 정조의 숨결이 어린 화성은 수원시에 있으니 화성시에 있지 않고 흥인지문(興仁之門), 곧 서울도성의 동대문은 동대문구가 아닌 종로구에 있다는 뜻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집무실로 점찍은 용산 역시 용산구에만 있지 않다.

국토지리정보원이 펴낸 ‘한국지명유래집’에서는 용산(龍山)을 ‘서울특별시의 용산구와 마포구에 걸쳐 있는 높이 80m의 산’이라고 했다. 이어 ‘한강에 임박한 산세가 머리를 들고 있어 이를 용의 머리로 보아 용산이라 이름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곧 용두봉(龍頭峰)이다.

서울특별시 용산구는 조선시대 서울도성 밖의 한성부 용산방(龍山方)에서 비롯됐다. 한성부의 행정력은 도성 내부뿐 아니라 도성 밖의 성저십리(城底十里)에도 미쳤다. 성밖 4㎞ 이내 지역은 한성부가 관할했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4㎞ 거리를 기계적으로 적용한 것은 아니었다. 이를테면 용산방의 경우에도 한강의 북쪽 지역은 대개 한성부 관할에 포함됐다.

조선시대 용산방은 오늘날의 용산구 일대는 물론 마포구의 도화동ㆍ용강동ㆍ대흥동ㆍ염리동 일대를 포괄하고 있었다. 용산을 경계로 동쪽의 용산구 지역은 물론 서쪽 마포구의 상당 부분도 용산방이었다. 마포구는 일제강점기인 1944년 서대문구에서 공덕동ㆍ아현동ㆍ신수동ㆍ서교동ㆍ동교동ㆍ합정동ㆍ망원동, 용산구에서 도화동 등을 분리하여 신설한 것이다.

‘대동여지도’로 유명한 고산자 김정호(1804?~1866?)가 그린 서울 지도 ‘경조오부도’(京兆五部圖)에는 용산의 위치가 분명하게 나타나 있다. 도성 서쪽 안산에서 서부역 앞 약현과 효창공원을 거쳐 마포 서울가든호텔 뒤편에서 한강 쪽으로 뻗은 산자락이다. 그 클라이맥스라고 할 수 있는 용두봉에는 지금 산 정상까지 아파트가 가득 들어차 있다. 오늘날 용산은 정확히 용산구와 마포구의 경계일 듯하다.

노성철 서울시의원, 동작구 시비 투자사업 간담회 참석

서울시의회 노성철 의원(더불어민주당·동작3)이 지난 22일 동작구청이 주관한 ‘동작구 시비 투자사업 주요현황 간담회’에 자리를 함께하고, 구의 핵심 사업 추진 현황과 2027년도 서울시 예산 확보 방안을 머리 맞대어 논의했다. 동작구 지역구 서울시의원 4명을 초청해 진행된 이번 간담회 자리에는 동작구청장을 비롯해 관련 국·과장급 간부들이 다수 참석하여 주요 현안의 경과를 공유하고 서울시 차원의 재정 지원 필요성을 집중 설명했다. 특히 동작구청 측이 관내 시의원들을 일제히 초청하여 시비 지원이 시급한 사업들을 총망라해 브리핑하고 협조를 공식 요청한 것은, 지난 민선 8기 지방정부 체제에서는 쉽게 접하기 힘들었던 매우 이례적인 행보다. 이는 산적한 지역 현안을 속도감 있게 해결하고 서울시 예산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 구청 차원에서 전향적이고 적극적인 협치를 도모하겠다는 명확한 의지를 보여준 것으로 풀이된다. 이날 노 의원은 동작구청이 서울시에 시비 지원을 요청한 사업 가운데 상도1동과 사당3·4·5동 관련 사업을 중심으로 추진 상황과 예산 확보 가능성을 점검했다. 주요 사업은 ▲상현중학교 옹벽 정비 및 도로 개선 10억원 ▲까치산 무장애숲길 2단계 조성 18
thumbnail - 노성철 서울시의원, 동작구 시비 투자사업 간담회 참석

하지만 국방부 안팎에는 미군이 자리잡았던 용산공원 내부의 작은 봉우리가 용산이라는 믿음이 전해지고 있다. 용(龍)은 다양한 능력을 가졌지만 우리 역사에서는 호국(護國)의 상징이다. 대통령 집무실이 자리한 용산이 새로운 호국의 성지(聖地)로 자리잡기를 기대한다.
2022-05-10 31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 2026 아이치 나고야 아시안게임
  • 1 / 3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