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구사쓰 소동/황성기 논설위원

[씨줄날줄] 구사쓰 소동/황성기 논설위원

황성기 기자
황성기 기자
입력 2020-12-21 20:14
수정 2020-12-22 0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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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도쿄에서 200㎞ 떨어진 온천 마을, 군마현 구사쓰(草津)에서 일어난 소동이 세계적인 화제다. 12명 정원인 구사쓰 의회의 유일한 여성 의원(51)이 행정부 수장인 구사쓰 청장(73)에게 청장 사무실에서 성폭력을 당했다고 지난해 11월 폭로한 사건이 발단이다.

청장은 사실무근을 주장했고, 지난해 연말 의회는 “의회 품위를 손상시켰다”며 남성 의원 10명의 찬성으로 여성 의원을 제명했다. 군마현이 폭로 행위를 문제 삼아 제명한 것은 위법이라며 취소 결정을 내려 여성은 의회에 복귀한다. 그러나 지난 6일 남성 의원들 주도로 이뤄진 여성에 대한 주민소환 투표에서 90%를 넘는 찬성표가 나와 여성은 의원 자리를 내놓았다.

미국의 뉴욕타임스는 “일본에서 성폭력을 고발하는 여성이 직면하는 어려움을 드러냈다”면서 “이런 피해를 호소하는 일이 극히 적고 공개적인 논의조차 거의 없는 게 일본의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영국 가디언지는 “여성 의원의 고난은 일본 정치의 남성 지배를 부각시켰다”고 논평했다.

“주민들 뜻이 ‘노’(No)라고 분명히 나타난 투표 결과”라고 청장은 의기양양한 모습이고, 지난 14일 일본외국특파원협회의 기자회견까지 불려나온 이 시골의 단체장은 “폭로는 100% 거짓말”이라고 강변했다. 현재 양측의 고소로 재판이 진행 중이라 폭로의 사실 여부가 가려지지 않았는데도 소환투표를 강행한 것은 여성을 말살하려는 집단 폭거가 아닐 수 없다.

일본의 1741개 기초자치단체 가운데 여성 의원이 한 명도 없는 곳이 311개(18%)다. 구사쓰는 인구 6000명의 조그마한 마을이다. 시골일수록 “여자는 집에 있어야 한다”는 시대착오적 관념이 뿌리 깊어 여성의 정치 참여가 어렵고 투표 결과에서 보듯 여성 유권자조차 소환 찬성에 표를 던졌다.

2020년 1월 국제의원연맹(IPU)이 집계한 국회의원 중 여성 비율에서도 일본은 9.9%로 199개 국가 중 바닥권인 보츠와나, 나우루, 사모아에 이은 165위였다. 한국도 여성 비율이 17.3%(21대 국회는 19%)로 124위를 차지해 하위권을 기기는 마찬가지다.

한국에도 알려져 있는 일본의 여성 언론인 이토 시오리의 성폭력 피해는 2015년 사건 발생 후 형사소송에서 혐의 불충분으로 불기소됐지만 4년 뒤 민사소송에서 승소를 거두면서 지지부진한 일본 미투 운동에 획을 그었다. 하지만 여전히 가해자가 큰소리를 치면서 2차 피해를 낳는 게 한일의 현실이다. 구사쓰 소동은 남성이 지배하는 일본 사회의 후진성과 더불어 미소지니(여성 혐오)의 위력을 다시 한번 확인시켰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 사건에서 보듯 구사쓰 일은 결코 남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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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ry04@seoul.co.kr
2020-12-22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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